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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 | 칼럼·시평 [이십대의 편지]
백수를 권장합니다
양열매(2014-06-03 09:36:29)

취업은커녕 열심히 일해도 될까 말까한 시대에 백수 권장이라니. 어이없이 헛웃음 칠 수도 있겠다. 또 멀쩡히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이가 백수 예찬론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러나 이 글은 직장이 있는 자의 유세도 아니고 막연히 백수에 대한 허황된 판타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쓰는 글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 백수였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 한창 백수를 만끽(?)하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전하는 ‘우리 존재 파이팅’의 의미라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백수(白手). 흰 손, 즉 맨손으로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사람을 일컫는 이 꿈만 같은 단어는 현재 우리 20대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굳이 통계자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주위에는 백수가 참 많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기약 없는 계약직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퇴사한 친구부터 저렇게까지 일해야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몸 바쳐 일하다가 ‘이게 사는 건가’라며 깨달음을 얻고 과감히 퇴사하여 놀고 있는 친구들까지, 한창 이 나라의 기둥이 되어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할 젊은 나이에 놀고먹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나 역시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던 기간이 있었다. 모두는 그 놀고먹는 행위 자체에 크나큰 근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마련이다. 나이도 찰 만큼 찬 아이들이 자기 밥벌이 하나 못해 먹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애들을 싸잡아 욕하기도 한다. 패기가 없다니, 열정이 없다니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을 통해 행복을 얻는 중이냐고. 하루 하루 사는 게 재밌냐고 말이다. 이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백수라 불리는 내 친구들과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NO’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내가 행복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게 맞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백수가 되었다. 한낱 돈을 좇거나 남들과 같이 가는 길을 좇았을 거였다면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그 누구보다 용기 있는 이들의 선택에 온갖 근심걱정을 쏟아 붙는 일은 서로에게 이익 될 게 없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의 백수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 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기 위한 마인드가 되어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보면 모든 불안의 근원은 비교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수많은 백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남과 나를 비교하여 그 발걸음을 좇아가고자 아등바등 살고 있는 모습이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백수의 가장 큰 위기라면 이 비교 심리를 얼마나 잘 헤쳐나가고 있는지 정도 일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기에도 모자란 인생인데 굳이 하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삶이 과연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어줄지는 모르겠다. 어딘가에 노예처럼 속박되어 먼 미래에 저당 잡혀서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어차피 우리 시대에 평생직장 따위는 없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꿈꾸고 원하는 곳을 찾아 계속 고민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백수라는 기간은 너무나 필요한 시간이다. 그 고민의 씨앗을 틔울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터전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취업,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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