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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 | 칼럼·시평 [문화시평]
이데아를 일구는 농부
유휴열의 신명난 生/놀이 4. 25~6. 1
이상조 교수(2014-06-03 09:42:04)






미술을 정의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화가의 상상력을 매개로한 화가의 눈과 마음의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화가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에서 늘 그 화가의 내면 세계가 어떤 상태인지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림에서 보게 되는 것은 단순히 외부세계의 투영이나 사물의 묘사라고 이해해서는 안 되고 화가의 인지, 느낌이나 생각, 상상, 공포, 희망이나 꿈, 그리고 자아와 세계가 부대껴 얻은 체험의 총체이기에 우리는 하나의 작은 그림 앞에서도 그것을 만들어 낸 화가의 인간성을 마주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2013년 그의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하에 ‘예술은 칭송 받고 있지만 예술의 가치는 상식의 문제로 밀려난다’고 지적하며 ‘예술은 도구일 수 있고,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이 어떤 류의 도구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에 보다 명확히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을 열거하며 예술이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을 보완해 주며 예술이 관람자를 인도하고, 독려하고, 위로하여 보다 나은 존재 형태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 치유 매개’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가란 예술 활동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결함을 치유하는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의 역사 속에 선사시대의 미술 활동을 주술사가 주도했다는 미술사가들의 연구 결과가 있다. 예술의 존재 가치가 몇 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대와 유사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이러한 주장을  역으로 해석하면 예술가는 치유해야할 심리적 상처까지도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논리를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 작품에서 화가의 인간성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겠다.

 화가 유휴열. 그를 안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20여년 전 내가 낯선 이 곳 전주로 부임해 와서 모든 것이 생소할 때 많은 것을 챙겨 주며 나의 전주로의 정착을 도왔다. 그런 그가 고희를 바라보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의 이번 전시는 전북도립미술관이 기획하여 초대했고 미술평론가 이영욱 교수의 전시 책임하에 ‘붓으로 추는 춤, 신명난 생/ 놀이’ 라고 명명되었다. 전시는  ‘실험과 변화 | 수업시대’ ‘신명난 생/놀이’ ‘춤 추는 신명’ ‘추어나 푸돗던고’ ‘빛과 원형적 세계’라는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 되었다. 아울러 도립미술관 전관과 더불어 도립미술관 인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전시공간에서도 그의 최근작이 전시되고, 지극히 사적 공간인 작업실과 살림집 모두를 공개하여 관람자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유휴열의 예술적 성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82년 벨지움 국제회화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86년 예술평론가 협회 제정 최우수 작가상, ’97 마니프 서울 국제아트페어 대상, ‘99년 목정문화상을 수상한 후 2008년 전북사람 최고의 영예인 전북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36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15회의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500여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공공미술관과 더불어 일본 오사카를 위시한 국내외의 많은 곳에 소장되어 있다. 

 나는 이번에 그의 대규모 전시를 몇차례 둘러보며 그의 예술적 성과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고 그의 작품 속에서 읽혀지는 그의 질박한 인간적 모습을 새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이 글에서 그의 작품에 관한 조형 이론이나 미학적인 해석은 다른 이들의 몫으로 미루고 그의 작품 속에 깃든 그의 모습 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학이란 예술에 대한 미적 성찰이며 인간 삶의 해석학 이기에 결국은 인간 유휴열에 관한 탐구이니 어쩌면 같은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10년 가까이 시골의 작은 농촌에서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도 우리나라의 여느 농촌과 같이 형님과 형수들(나는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적으므로 마을 주민 모두를 그렇게 부른다)은 모두 연세가 7,80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들은 새벽 동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텅텅거리는 경운기 소리와 함께 바삐 일터로 향한다. 가끔은 비닐봉지에 싸인 마늘쫑이나 오이며 가지와 같이 갖가지 채소들과 혹은 김치가 가득 담긴 커다란 통이 문앞에 놓여 있다. 그 것을 놓고간 이는 며칠이 지난 후에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에 이제는 처음과 달리 누가 가져다 주었는지 굳이 먼저 알려고 속을 끓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 속에 감사한 마음을 담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이 일군 땅을 바라보고, 그 땅에서 자라고 피어나는 온갖 생명체들의 부침을 느끼며 아침 저녁을 그들과 함께 보내기에 그 땅이 어떤 과정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를 안다. 나는 질박하지만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땅, 이 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삶의 환희로 느껴진다.


유휴열의 작품은 땅을 닮았다


 유휴열의 작품은 그런 땅을 닮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북북 그어내린 활달한 필치는 화폭에서 물감을 흠뻑 머금고 흐르다, 마침내 마른 흔적으로 변한다. 그위에 나무가지로 낸 흔적과 흡사한 자국들이 쌓인다. 커다랗게 흩 뿌린 물감이나 농먹이 그 위로 배어든다. 손가락으로 그어진 것과 비슷한 형태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내곤 또 다시 물감 혹은 물감 대용으로 사용하는 황토를 곁들인 안료로 지워진다.  긁고 칠하고 또 지워진다. 마침내 화폭 위에  남은 것은 긋고 지우고, 칠하고 지우고, 그위에 덧칠한 흔적, 흔적들과 자연스레 남겨진 여백이다. 몸짓이다. 이러한 연속적인 과정 속에 드러난 중화된 이미지가 그의 작품의 기본 구조이다. 그리고 나는 이 구조가 작업 과정에서 계획적으로 얻어진 결과라기 보다 그의 지난한 삶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된 삶의 방법에서 쌓인 결과라 생각한다. 

 오래 전의 일이다. 유휴열은 집세를 올리겠다는 집 주인의 요구에 전세 돈을 빼어 들고 부동산 중개인을 찾아가 그 돈 만큼의 땅을 사달라고 조른다. 어떤 땅이라도 상관 없다면서. 그래서 도심 밖 교도소를 한참 지나, 지금의 그의 터전이 된 척박했던 땅에 둥지를 틀었다. 그동안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제는 그 땅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차 풍요로운 숲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숲은 요즈음 새로운 그의 신작들의 소재가 되고 있으나 그 당시, 그 땅엔 다시는 셋집을 전전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결연히 잘 다니던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 화가로서의 삶에 승부를 걸었다. 이런 절박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화폭에는 그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반면에 그 시절 어려웠던 상황을 인내하던 그의 성품이 또 다른 기운으로 화폭에서의 그 욕망을 순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의 기저를 이루는 중화 된 몸짓은 그간 지나온 삶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발로이며 구현된 형국은 내 이웃 형님들의 땅과 다름 아니다.

 학생들과 함께 김제 금산사에 들렸을 때다. 금산사 보제루에는 누운 자세로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부재를 받치고 있는 한 쌍의 토끼 부조가 있다. 사찰 경내에서 불교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토끼의 출현은 학생들의 궁굼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 화살은 나에게로 쏠렸으나 나도 궁굼하기는 마찬가지였고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징적인 뜻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불교의 사찰 장식에는 상징 세계가 있다.  ‘허균’이 쓴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에는 토끼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여우와 원숭이와 토끼가 불심을 터득한 것을 자랑하러 제석천을 찾아 갔다.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제석천이 시장기가 돈다고 하자, 여우는 즉시 잉어를 물어 오고 원숭이는 도토리알을 들고 왔으나, 토끼만 어떻게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왔다. 토끼는 제석천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더니 불 속으로 뛰어들며, 내 고기가 익거든 잡수시라고 하였다. 제석천이 토끼의 진심을 가상하게 여겨, 중생들이 그 유해나마 길이 우러러보도록 토끼를 달에다 옮겨 놓았다. 이렇게 하여 토끼가 달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토끼는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고통은 타인에게 설명한다고 깨달을 수 없으며 나를 희생하여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 이라는 것을 설파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우리는 그림 속에 나타난 형상에서 외부 세계와의 관련성을 발견하든 찾지 못하든 상관 없다. 우리는 그림 속 형상을 보며 보이지 않는 작가의 메세지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금산사 보제루에 나타난 토끼의 상징 체계인 것이며 유휴열의 작품에 접근하는 우리의 화두라 생각 한다. 유휴열은 그의 고통을 축제라는 형식을 빌어 순화 된 그의 땅에 승화시켜 남의 고통을 대변하는 것이다.


 유휴열은 이데아를 일구는 농부


 화가 유휴열을 ‘농부다’ 라고 고집하는 것은  언뜻 보면 황당한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의 그림 속에 숨겨놓은 여러 장치들에 관한 그의 태도를 이해하고, 그의 낮고 느릿한 사투리와 투박한 어투, 또한 그의 화면에서 느껴지는 길고 깊은 호흡을 함께 생각하면 그가 농부일지 모른다는 나의 생각은 그렇게 틀린 생각이 아닌 일이다. 

 그의 그림은 모두 앞서 이야기한 중성화 된 기본 구조 속에 교묘하게, 또는 의식적으로 잘 알아 볼 수 없게 숨겨논 많은 형상이 있다. ‘생, 놀이”(1992)연작을 자세히 보면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이나 증심사 대웅전의 꽃살문 같은 형상이 보이며 그 뒤에 연필로 군상을 표현했고  다른 ‘생, 놀이’(1993)는 춤추는 군상을 뚜렷한 성격 없이 연필로 쉽게 드로잉하거나 긁어내는 기법으로 화면 가득하게 표현했다. 그 군상은 춤추는 형상을 갖췄으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게 말의 두상에 남성의 생식기를 드러낸 반인 반수를 비롯해  자유분방하게 널부러진 여성 형상의 누드 군상과 아울러 봉황, 뱀이거나 혹은 물고기로 보이는 민화적 요소가 다분한 형상도 보이고, 또 다른 ‘생, 놀이’(1995)에는 호랑이와 더불어 신선을 연상케하는 인물들이 폭포가 쏟아지는 자연 속에서 유희를 즐긴다. ‘산수도’(1996)에선 소나무와 폭포등을 배경으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고구려의수렵도를 연상케하는 장면을 등장시킨다. 

 이렇듯 유휴열의 시각 언어는 그의 지난했던 현실에 대한 대안을 꿈 꾼다. 즉  화면에 드러난 ‘생, 놀이’하는 형상의 이면에 불교라는 종교적 색채나, 길함과 만복을 비는 민화적 요소, 또는 도교적 의식 세계, 그리고 강성했던 역사의 재현 같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 이데아와의 합일을 수줍은 듯 감추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힘들여 일군 땅에서 수확한 마늘과 양파더미를 슬며시 내 집 문 앞에 놓아 두고 돌아서는 크고 투박한 손과 세월을 이긴 깊은 주름을 얼굴에 지닌, 모든 것을 가진 듯 넉넉한 내 옆집 형님의 모습을 본다.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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