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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나르시시즘적 광기로 물든 사랑의 파국
김경태 영화평론가(2014-06-03 10:13:30)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의 영웅으로 금의환향한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은 공황장애와 환각증상이라는 전쟁 트라우마를 숨긴 채 군복무를 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출세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내조하는 아내 ‘이숙진(조여정)’이 있다. 어느 날 대위 ‘경우진(온주완)’과 그의 화교 아내 ‘종가흔(임지연)’이 진평과 숙진이 살고 있는 관사로 이사를 온다. 관사 내에서 유일하게 아이가 없던 그들 부부는 자연스레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이내 진평과 가흔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 광기어린 사랑은 미학적으로 박제된 시대의 특성과 어우러지며 이내 비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것은 이들의 사랑이 어떤 단서나 목격담으로 발각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추상적인 느낌으로 드러난다는 설정과 공명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의 사랑을 위기에 빠트리는 것은 제3자의 개입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 내부의 갈등과 진평의 광기 때문이다. 주변 인물들은 침묵하거나 심지어 그 사랑을 지지해주기까지(!)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며 가흔을 딸처럼 키워 온 시어머니가 대표적이다. 그녀 역시 가흔에게서 그 사랑을 ‘느끼게’ 된다. 놀랍게도 시어머니는 그 사랑을 지지하며 그녀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부족한 아들과 결혼해준 가흔에게 부채감을 느끼고 있던 터다. 그녀에게 법과도 같은 존재로부터 마음껏 즐기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마음의 짐을 던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욕망에서 눈을 돌려 보다 냉정하게 그 사랑을 직시한다. 그녀는 그 사랑이 진평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을 예견한다. 진평은 잃을 게 너무 많다. 그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멈춰야만 한다. 

진평은 장군으로의 진급과 아내의 임신이라는, 소위 가장 잘 나갈 때 가흔과의 사랑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태국으로 함께 떠나자는 진평의 제안에, 가흔은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진평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진평과 가흔이 느끼는 사랑의 온도 차이, 이것은 ‘맹목적 사랑’과 ‘성숙한 사랑’의 차이일까? 아니면 ‘헌신적 사랑’과 ‘세속적 사랑’의 차이일까? 어찌됐든 현실원칙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자신을 파멸로 몰고 상대방마저 위협적인 상황에 빠트리는 사랑에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 않다. 

진평에게 있어 ‘당신을 안 보면 숨을 쉴 수가 없어’라는 가흔을 향한 고백은 진부한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 아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숨을 쉬며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가 필요하다. 가흔에게 버림받는 순간, 그는 자신의 가슴을 향해 총을 쏜다. 그것은 산소 결핍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이 두려워 재빨리 숨을 끊기 위해 선택한 자구책이다. 따라서 내가 살기 위해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 그녀는 그와 하나의 몸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진평의 사랑은 다분히 나르시시즘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변인들의 지지라는 환상에 입각한 순간, 그 사랑은 이미 나르시시즘적 토대 위에 놓이게 된다. 진평이 가흔에게 매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그것은 군병원에서 그녀가 한쪽 다리를 잃은 퇴역군인에게 인질로 잡혔을 때 보여준 의연한 태도에 있다. 그녀는 그 사건으로 어깨에 총상을 입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잃어버린 귀고리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한 그녀의 태도는 과거 전장을 호령했던 진평의 거울 이미지이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그들은 서로의 몸에 난 총상을 어루만지며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의 나르시시즘적 광기는 바로 그 전쟁터에서의 깊은 상처에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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