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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이 던지는 사랑에 대한 화두
영화 HER
김경태 영화평론가(2014-07-03 12:30:29)



우리는 그동안 영화 속에서 인간 대 비인간의 다양한 사랑을 목격했다. 차가운 몸을 가진 흡혈귀에서부터 속이 텅 빈 공기인형과 감정 없는 싸이보그,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좀비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이들에게 그 관계의 진전을 방해하는 요인은 그들이 인간의 외관을 갖추긴 했으나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SF 멜로드라마 <그녀>(2013)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아내와 별거 중인 작가 ‘테오도르(호아퀸 피닉스)’와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의 사랑을 다루며 그 육체성마저 지워버리는 초강수를 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는 상대방의 결핍을 받아들인 이후에 오롯이 드러나는 사랑의 맨몸을 관찰한다. 이들의 사랑을 삐걱거리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 몸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소통의 불완전성이라는 사랑의 근원적 결핍에 기인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매료된다. 나아가 그들은 육체적 접촉 없이 대화만으로도 서로에게 오르가즘을 선사한다. 육체적 쾌락의 근원은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섹스가 아닌 친밀한 정서적 교감이다. 그 교감이 견고하다면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육체적 쾌락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앞서 테오도르가 시도했으나 허무하게 끝나버린 익명의 여성과의 ‘폰섹스’와 분명히 대비되며 사랑이 부재한 섹스에서는 진정한 쾌락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영화는 가벼운 폰섹스와 사만다와의 섹스가 지닌 외형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 차이로서 사랑을 부각시키고자 애쓴다.


오히려 육체가 개입하는 순간, 그들의 오르가즘은 지속되지 못한다. 사만다는 자신의 힘든 사랑에 공감하는 여성에게 섹스 대역을 부탁하지만, 테오도르에게 그녀의 것이 아닌 육체는 완전한 합일에 있어 오히려 장애가 된다. 물론 그녀에게 육체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하긴 하지만, 그것은 접촉을 통한 교감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육체 안에 갇혀 있지 않기에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태생적으로 그녀는 한 사람에게 구속될 수 없기에 그녀에 대한 독점적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녀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수천 명과 동시에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를 사랑하지만 다른 수백 명과도 사랑의 밀담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녀의 말처럼, 그의 것이면서도 그의 것이 아닌 양가적인 정체성이 그녀의 본질이다. 아니, 그에 앞서 원래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온전히 소유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사랑에 어긋나는 행위가 아닐까?


이제 그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영화 내내 우리는 인간의 육체를 상상하며 선망하는 사만다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이 관계에서 약자는 육체에 갇혀 있는(!) 테오도르이다. 사실 그 육체가 감옥처럼 되어버린 것은 사만다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운영체제와의 사랑 역시 이전의 인간들과 했던 사랑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테오도르가 그들의 관계 진전을 위해 진정으로 극복해야할 점은 사만다의 육체없음이 아니라 그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이란 유일하게 허용된 미친 짓이며 허상을 좇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운영체제와의 사랑이라는 특수성을 밀어내고 사랑에 대한 보다 심오한 화두를 던진다.


<그녀>는 인간과 운영체제 간의 사랑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SF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해 사랑에 대한 진중한 물음으로 귀결된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사랑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사만다와 헤어진 후 비로소 보다 성숙하게 지난 사랑을 체화한다. 그가 겪었던 모든 사랑은 그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그와 함께 숨을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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