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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 | 칼럼·시평 [문화칼럼]
문화분권과 자치, 문화평등을 꿈꾸다
지역문화진흥법 시행에 대한 소회
김기봉(2014-08-01 16:21:10)

2014년 7월29일부터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됐습니다. 처음 이 법의 제정을 위한 추진위원장을 맡았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감회가 새로울 텐데 솔직히 덤덤합니다. 2003년 가을부터 참여정부 지역문화분권TF에서 논의를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법 제정 추진을 시도한 것은 2004년도부터이니까, 거의 10년 만에 제정되는 법안입니다. 시간이 흘러간 만큼 내용도 많이 변했습니다. 서울연구원의 라도삼 박사는 ‘지방자치의 미래를 무시한 법’이라며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10년 전에 지역문화진흥법(안)의 목적과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안의 목적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법은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한 시책을 통하여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와 “이 법은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입니다. ‘지역별로 특색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내용 하나 추가된 것입니다. 지역문화진흥을 통해 지역 간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문화국가를 실현한다는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아하, 3조 ‘지역문화진흥의 기본원칙’에 차이가 있습니다. 10년 전의 (안)에는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의 이념,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실질적 문화평등, 지역주민의 주체적 문화참여로 지역문화의 자율성과 독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제정된 안에는 지역 간의 문화격차 해소, 지역문화 다양성의 균형있는 조화 추구,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 추구, 생활문화 여건 조성, 지역문화의 고유한 원형 우선적 보존의 내용입니다. 초안의 문화분권, 문화혁신, 문화평등, 문화참여의 원칙이 실종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본원칙이라기보다는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문화격차 해소, 다양성, 삶의 질, 생활문화, 고유한 원형 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곧 법안의 주요 내용에도 영향을 줍니다. 지역문화위원회는 지역문화재단으로, 지역문화진흥재정이란 독립된 장은 지역문화기금이라는 하나의 조항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지역문화진흥원, 문화복지사 등의 조항도 사라졌습니다.


6조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의 수립 주체도 초안에서는 시·군·구의 기초자치단체였습니다. 제정된 안에서는 문화부가 수립·시행·평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조항을 두고 지역에서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 스스로 지역에 맞는 문화기본계획을 수립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기본계획을 집행하는 단위로 지방자치단체의 위상이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재정에 대한 내용도 구체적이질 못합니다. 지역현실에 맞게 지역문화재정을 확충하거나 필요하면 지역문화진흥기금을 조성할 수 있게 해 놓은 게 전부입니다. 사실 이 법을 제정 추진할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재정문제였습니다. 재정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 놓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게 당시 문화부와 저희 추진위원회의 공통된 입장이었습니다.


7월29일부터 시행되는 법안에 대해서 여러 시행착오가 이뤄질 것이고, 이는 법 개정 운동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역문화진흥의 기본원칙입니다. 문화분권, 문화자치 없는 지역문화진흥은 실현될 수가 없습니다. 도로 지방문화입니다. 문화정책전달체계로서의 문화재단과 지역문화진흥기금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규모와 경제력이 지역문화재단이나 지역문화기금 조성에 그대로 반영될 겁니다. 문화분산이 아니라 문화집중이 더 심화될 겁니다. 지역의 우수 문화전문인력도 수도권으로 다시 몰려갈 겁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일단은 지역문화가 문화정책의 의제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전에는 지방문화였고, 전통문화였으며, 민족문화의 보존지역이었습니다. 당대의 문화가치가 실현되는 공간으로서 당당한 문화의 주체로 떠올랐다는 것 자체로 일단 긍정적 평가를 해주고 싶습니다. 제대로 고쳐나가는 것은 이제 지역문화 현장의 몫입니다. 다시 백가쟁명, 백화제방으로 지역문화의 춘추전국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문제들이 발생되겠지만 지역문화진흥을 통해 문화국가 실현이라는 지역문화의 궁극적 닻은 올렸습니다. 문화참여를 통한 문화분권과 문화자치가 바로 지역문화를 융성케 하는 길이며, 문화국가를 세우는 길입니다. 법안에 뭐라고 써있던 우리는 문화참여, 문화분권, 문화자치, 고유한 지역문화(문화평등)라고 읽고 다시 문화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김기봉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추진위원장 활동을 했다. 현재는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로 있으며, 부산대·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문화예술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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