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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 | 칼럼·시평 [문화시평]
해학과 예술성이 돋보인 한마당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갈라라’
최동현 군산대 교수(2014-08-01 16:35:16)






판소리는 서양식 장르 이론으로 포괄할 수 없는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 어찌 보면 연극 같기도 하고, 음악 같기도 하고, 문학 같기도 하다. 어떤 장르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판소리의 이런 특징은 판소리의 약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큰 이점이기도 하다. 어느 한 장르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판소리 파생 장르가 발생하여 판소리 관련 예술을 풍요롭게 해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올해 전주문화재단에서 제작 공연하고 있는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 또한 다양한 판소리 파생 장르 중의 하나이다. ‘마당창극’란 말은 ‘마당놀이’와 ‘창극’이 합쳐진 말이다. 마당놀이는 1981년 MBC문화방송창사20주년기념으로 문화체육관에서 공연된 마당놀이 <허생전>으로부터 출발한 한국적 코미디 공연물의 새로운 양식으로 일종의 뮤지컬이다. ‘창극’은 근대 들어 판소리에서 파생한 우리 전통 극장르이다.


마당창극은 아무래도 창극의 파생 장르, 또는 판소리의 파생 장르가 되고자 했던 것 같다. 어차피 마당놀이도 판소리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주문화재단에서 제작한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갈라라’>는 판소리로부터 새로운 파생 장르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원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마당창극은 올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12년에 공연했던 <해 같은 마패를 달같이 들어 매고>와 2013년에 공연했던 <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에 이어 세 번째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전주문화재단이 시작했던 새로운 장르 개척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때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장르 개척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름만 새롭게 붙인다고 해서 되는 것은 물론 아니요, 이름을 새롭게 붙일 만한 내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무래도 이름에 걸맞는 새로운 장르 탄생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당놀이는 세태 풍자에 묘미가 있다. 풍자가 고전적인 해학과 어우러져 재미를 배가시킨다. 판소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국악 창작곡이나 민요 등이 등장한다. 창극은 판소리의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판소리라는 음악성에 크게 의존한다. 그래서 판소리를 음악극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무대에서도 차이가 난다. 마당놀이에는 무대가 따로 없다. 그냥 마당이 무대이다. 그러나 창극은 닫힌 공간에서 전통적인 서양식 무대를 사용한다.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는 마당놀이와 창극 사이에 위치한다. 무대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열린 공간에 있다. 그래서 관중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다. 판소리가 등장하지만 많지는 않다. 창작곡이나 유행가까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마당놀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놀이도 남사당패의 전통 놀이인 버나돌리기와 풍물에 현대적인 비보이까지 등장한다. 여러 가지로 다채롭게 꾸며 새롭기는 한데 이것이 새로운 장르 창조에까지 이르렀는가 하면 꼭 그렇다고 하기도 어렵다. 창극과 마당놀이로 대표되는 전통과 현대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무래도 마당놀이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는 네 개나 되는 팀이 약간씩 다른 버전(version)으로 공연을 한다는 점도 특별하다. 네 가지 버전을 다 보지는 않았으나, 안숙선, 조통달, 김영자, 왕기석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소리꾼들이 출연하는 것은 ‘명창 버전’이라고 한다면, 정민영, 조희정, 김공주가 출연하는 것은 ‘신인 버전’이라고 이름붙일 만하다. 명창 버전에서는 명창들의 판소리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창극에 보다 가까이 가려한 흔적이 보인다. 반면에 신진 버전에서는 재밌는 세태 풍자와 과감한 마당놀이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보면 아무래도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 아직 정형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색깔의 버전들을 가지고 모색 중인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목표를 ‘대중성’에 놓고 보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사실 판소리는 흥행을 할 수 없는 죽은 예술이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면 일단 현재 남아 있는 대중들의 감수성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판소리 위주로 간다면 많은 관중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제작하면서 판소리를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다. 


이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공연을 본 관중들의 평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떨까? 원래 이 공연이 새로운 장르 개척을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고, 전주시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문화 자원을 어떻게 관광들에게 선보일 것이냐를 위해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당창극 ‘아나 옜다 배 갈라라’>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 내내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비가 약간 내리기도 했는데, 관객들은 공연장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기꺼이 비옷을 챙겨 입는 모습에서 이 작품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정형을 창조한다는 목표를 버려서는 안 된다. 대중의 인기에만 매몰된 나머지 예술성을 소홀히 하다가는 실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 때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던 여성국극이 끝내 실패하고 만 것은 대중적 인기에만 의존했지 예술성을 담보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마당창극’은 2012년에 시작된 후 연 3년째 거의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되고 있다고 한다. 어떻든 출발은 괜찮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엄밀하게 예술적인 견지에서 평가한다면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관중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예술성의 핵심은 판소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지역의 문화를 되살린다는 대의에 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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