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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 | 칼럼·시평 [문화칼럼]
지역 문화자산을 있는 그대로 보기
송석기 교수(2014-09-01 18:18:54)

지역 문화자산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얼마 전 전라남도의 어떤 군에서 지역 문화자산을 활용한 도심재생 사업을 기획 중에 있는데, 지역 문화자산에 포함된 근대건축물의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해당 군의 사업 계획이 아직 초기 단계였고 근대 건축유산이 많지 않아 구체적인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해당 군에서는 무척 진지한 고민과 함께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도심재생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근대 건축유산을 포함한 지역의 문화자산을 활용하는데 관심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근대 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지자체의 이러한 변화가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다소 우려스러운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느 지자체나 별 다른 차이 없이 대부분 유사한 방식으로 근대 건축유산을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치 여러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지역의 문화예술축제가 대부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에서 판매하는 지역 특산품도 비슷하고, 토속 음식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처럼 지역 마다 근대 건축유산의 활용 프로그램도 유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토의 넓이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미국만큼 넓은 땅을 가진 나라였다면, 분명하게 구별되는 기후나 민족과 같은 여러 요인이 갖는 다양성으로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이 지금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기초 자치단체가 지역의 독특한 색깔을 찾아내고 이를 성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도일 뿐만 아니라 출발에서부터 분명한 한계를 갖는 시도인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과 한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조급증과 강박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매년 수많은 사업들이 이런 저런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든 사업은 공통적으로 시간의 한계와 성공의 압박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의 한계와 압박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과도해지면 조급증과 강박증 밖에 남지 않는다. 사업 초기에 진행되는 벤치마킹이라는 과정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 대부분의 경우, 적절하고 손쉬운 모방으로 귀결된다. 시간의 한계와 성공의 압박이 과도해지면서 벤치마킹은 사업을 수행하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된다. 벤치마킹을 통해 겉보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이 진행되고 지역의 특색은 겉보기나 포장 일부에서 겨우 드러날 뿐이다.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역을 있는 그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조급증과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지역만의 특색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근대 건축유산을 포함한 지역 문화자산의 차별화된 보존 및 활용 방안 역시 해당 문화자산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종종 지역의 문화자산이 과소평가되거나 과대평가되는 경우를 본다. 과소평가된 지역의 문화자산은 쉽사리 잊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멸실되고 만다. 과대평가된 지역의 문화자산은 과도한 예산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로인해 자칫 본래의 진정성을 잃게 될 수 있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있는 그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그 문화자산을 영영 잃게 될 수 있다.


군산시는 지난 2013년 말, 국토교통부가 주최하는 제1회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근대 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있어서 우리나라 어떤 지자체와 비교해도 가장 적극적이며 선도적인 노력을 해왔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음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또한 사업의 진행과정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은 수많은 관계자의 헌신이 이러한 결과로 이어졌음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간의 성과를 기반으로 군산시는 원도심을 중심으로 도심재생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인 지금이 군산의 근대 건축유산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낡고 오래된 지역의 문화자산을 수리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자칫 과거의 중요한 흔적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지는 않았는지... 문화자산이 갖고 있는 본래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새 것을 덧씌워 놓은 것은 아닌지... 지나친 정비로 옛 것과 새 것의 구별이 어려운 것은 아닌지... 특정 시대나 형식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그 이외의 시대나 형식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우리 삶의 유산이 홀대받지는 않았는지... 문화자산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오해가 진실인 것처럼 널리 알려진 부분은 없었는지... 조급증이나 강박증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자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송석기 군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한국 근대건축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형성・전개과정, 지역 근대 건축유산의 보존・활용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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