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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 칼럼·시평 [이십대의편지]
아프니까 청춘이냐
정현 (2014-10-06 11:54:29)

아프니까 청춘이냐



아프니까 청춘이고 꿈이 있어 아름답다. 누군가는 열정을 불태우며 밤새 작품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보람찬 땀을 흘리며 손등으로 이마를 훔쳐낸다.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니, 가장 뜨겁게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그 이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은이들은 꿈을 위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고 또 내달린다. 마땅한 대가가 없더라도, 적절한 보상이 없더라도. 왜? 젊으니까, 꿈이 있으니까!


오늘도 청춘들은 이 불안한 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 잡스의 자서전을 읽고 칭기즈칸의 편지를 읽는다.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현실을 기어이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보다 더 불행한 환경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나는 그보다 낫지 않은가, 나도 꼭 해내고야 말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오늘도 열심히 했어,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대가는 적지만 난 더 성장 했을거야.” 뿌듯해 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적절한 보상,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그 적절에서 조금, 어쩌면 많이 부족할 수도 있는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멀리 갈 것 없지. 나의 보람과 경륜에 남아지지 않겠는가. 아니, 그보다 더 가시적인 것 말이다. 물리적인 것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돈’ 말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대우’ 말이다.


한국은 근로자의 연공에 따른 임금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뿐인가. 초년생은 눈치 보느라 노동부에서 지정한 법 내 최소한의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어쩌다가 소리를 내면 사회성 없는 자요, 눈치 없는 자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러다 상사에게 밉보이면 그나마도 길게 머물지 못한다. 그렇게 헐값에 청춘의 시간과 인격을 판다. 실무를 모르는 상사의 지시에 숨이 막히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선배의 호통에 눈물을 삼킨다.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가치 없는 일인 것일까. 한 달을 겨우 버틸 수 있는 월급을 기다리며 사고를 정지해야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대우를 견뎌야 할 만큼.


“나 때는 더 했어, 아파야 할 청춘인데 네가 아직 덜 아파봤구나.” 청춘의 열정, 간절함, 절박함을 이용해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결과물을 원하는 몇몇 선배들은 지나간 80~90년대 이야기를 하며 오늘날의 청춘들도 여직 그 틀 안에 머물 것을 종용한다. 물론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본인에겐 그것이 당연한 것이므로. 분명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달려 왔을 텐데 사고방식은 정지돼 있는듯하다. 그 입은 진보를 논하고 민주주의를 논하지만 그것은 정치권에만 한정된 이야기이지 자기 삶의 영역에선 상관없는 주제이다.


헐값에 배웠지만 그들의 행동이 나에게 큰 교훈이 되어주기도 했다. 난 내 후배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적절한 보상을 해 줄 것이고 인격적인 대우를 해줄 것이다. 어려도, 몰라도 사람은 ‘사람’이고 ‘인격’이 있는 존재이다. 권위로 누르고 나이·경험으로 무시해도 될 존재가 아니다. 상대가 어쩌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힘을 남용하고 갑질을 해대는 건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싫은 것, 틀린 것은 최소한 나의 영역에서만은 바로 잡고 말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또 내 꿈과 열정을 팔며 착취당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만든 공식을 조금도 긍정할 생각은 없다.


정현 독립출판물제작자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알음알음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 중. 청년구직자의 찌질함을 주변에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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