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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 | 칼럼·시평 [이십대의 편지]
개인주의에 대한 짧은 고찰
박선우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4년 (2014-11-04 10:13:13)

중학생 때 우리 반에 수업하러 오신 선생님께서 잠깐 어디로 얘기가 샜었는지 나름의 인생관을 짧게 설파하신 적이 있었다. 그 말씀이 수년이 흐른 지금도 이따금씩 종종 생각이 난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달라.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야.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네가 할 거 열심히 하는 거야. 얼마나 좋니? 선생님은 개인주의자야."
대략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르는 기준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의 유무로 판단하셨던 것이다. 어렸을 때 들었던 선생님의 말씀은 그 당시 나에게는 적잖은 감명을 줬으리라. 이기적인 것은 나쁘게 느껴졌고, 이기적이고 싶진 않았지만, 이기적의 반대인 이타적인 것은 나로서는 어려울 따름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선생님이 던져주신 '개인주의'는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었던 것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기 할 일 하는 것' 선생님께서는 '열심히'라는 조건을 다시긴 하셨지만.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이러한 현상에는 우리 특유의 '오지랖'에 대한 반발심리가 한몫을 차지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아무도 물어보지도 않으려하고, 대답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이 너무 쉽게 오지랖으로 치부 돼버린다. 사실은 오지랖이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르는 기준점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요즈음 보이는 개인주의라 불리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넘어서 남에게 아예 무관심한 듯하다. '내 알 바 아니잖아' , '나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 '나만 아니면 돼'. 

나랑 상관이 없고 단편적으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이라면 남이 피해를 입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부당한 것, 부조리한 것에 대해서 침묵을 넘어 아예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목소리를 내야하고 응당 따지고 넘어가야 할 때에도 침묵하고 무관심으로 대응한다면 개인주의는 사회적 이기주의로 전락하고 만다. 책임을 두려워하며 회피하는데 급급하다. 침묵하고, 무관심하고, 나와 이해관계가 일치해야지만 움직인다. 이런 풍조가 만연한 사회는 얼마나 삭막하고 각박해지겠는가. 또한 그러한 사회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담론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그야말로 꽉 막혀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개인에 대한 자유와 권리가 사회 전체의 발전과 진보를 가로막고 사회를 오히려 더 권리침해 적이고 반자유적인 사회로 내몬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에 가장 합당한 것이 개인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나날이다.
왜 그럴까? 공동체의식의 결여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라는 숭고한 미명하에 공동체는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남이 못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러한 극심한 공동체의식의 결여는 곧 사회 전체의 가치를 실종시킨다. 지켜야 할 가치가 없다. 오로지 이해관계의 득실과 승자독식의 비정한 룰만이 사회를 지배한다. 누군가 부당한 피해를 입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한다. 더러는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냐며 따지고 부당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멱살을 잡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개인주의의 모든 것을 한정한다면 그러한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는 얼마나 비참한 사회일까?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개인주의는 결국 이기주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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