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4.11 | 칼럼·시평 [서평]
경제용어를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
『영화 속 경제학』
원용찬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2014-11-04 10:19:51)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던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Thomas Piketty)는 서문에서 경제학자를 이렇게 비꼰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수학이나 계량모델을 갖고 놀아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매우 유치한(childish) 사람”들이다. 오늘 한국에서 배우는 미국식 경제학도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수학과 계량모델로 간단히 풀 수 있으리라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주류 경제학의 기본 명제는 모든 사람은 최소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고, 개인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으로 가정된다. 이를 경제적 인간(economic man) 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 부른다. 

우리도 항상 느끼지만 현실의 인간 행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너무 다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자기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이타적 행동을 서슴없이 보여준다. 내가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여 시간과 돈을 쏟아 넣기도 한다. 요즘 말로 영양가 없이 손해 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일주일 전에 5천원을 주고 산 머그컵을 6천원에 팔라고 해도 나는 손사래를 칠 수 있다. 낡은 컵을 팔아 버리고 더구나 1천원을 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엊그제 애인과 커피를 나누며 사랑을 고백했던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이다. 현재의 이득과 합리성만을 따지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입장에서는 돈만 생긴다면 아버지가 물려준 가보도 팔아 버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보유효과는 알려준다.

이렇게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전제로 하는 주류경제학과는 달리, 다양하고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서 생겨난 학문 분야가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박병률의 『영화 속 경제학』도 행동경제학에 나오는 무수한 사례를 영화 장면과 인간 심리로 설명하여 딱딱한 경제학에 흥미를 더해 준다. 

보유효과는 어떤 대상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책의 첫 머리를 넘기니 역시 행동경제학에서 유명한 보유효과를 ‘비포 미드나잇’이란 영화를 통해 멋지게 설명한다. 영화장면에서 “더는 당신을 사랑 한 해”라며 호텔방을 뛰쳐나간 여주인공도 결국은 서로 화해하며 다시 한 테이블에 앉는다. 서로가 싫증나서 지지고 볶고 싸우지만 정 때문에 다시 뭉친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모두가 정들면 버리기 쉽지 않고 오히려 더 정이 가는 것이 보유효과이다. 

이렇게 『영화 속 경제학』은 경제학 전반에 걸친 용어와 개념들을 현실의 장바구니에 담아 낸 영화 속에서 녹여준다. 이 책은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65개 정도가 정리되어 있다. 경제학적 깊이에서 한계는 있지만 저자의 의도대로 편하게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나 역시 홍상수 감독을 좋아 한다. 그냥 스치는 남녀들이 하룻밤 살과 살이 부대끼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바닷가를 거닐다가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의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각인되고 싶어서일까.

저자는 나와 다른 엉뚱한 곳에 필이 꽂힌다. 몽블랑 만년필 하나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 알다시피 몽블랑 브랜드와 같은 명품을 선호하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상류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으로 인해 값이 오를수록 수요가 줄지 않고 더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영화 ‘카메모 식당’에서는 음식점의 장면을 빅맥지수(Big Mac index)로 끌어 낸다. 빅맥지수는 각국의 물가와 환율을 비교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판매하는 맥도날드 빅맥 햄버거 가격을 서로 비교한 지수다. 

‘이유없는 반항’에서 서로 마주보고 달리다 상대방이 먼저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지는 치킨게임을 설명한다. 양쪽 출혈이 심한 치킨게임의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저축은행 대출상담창구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그렸던 ‘커플즈’ 영화는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지만 저자는 대출이자의 무서움으로 뒤바꿔 놓는다. 과연 이자는 무섭다. 우리들이 자는 시간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오른다. 

저자 박병률은 현직 경제부기자다. 바쁜 틈을 내서 영화를 볼라치면 편해야 하는데 경제와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작업 때문에 여가시간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경제학자의 문학 살롱』『돈이 되는 빅데이터(공저)』등 많은 책들을 저술한 저자는 “생각나서 메모하는 것이 아니다. 메모하려고 준비하면 생각이 난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메모한다니, 메모하고 생각하는 생활의 작업이 부럽고 본받을 만하다.

먼저 이 책을 읽을 때는 자신이 봤던 영화부터 골라 읽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경제학적 용어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나, 서로 다른 세계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나와 그, 서로 다른 시선과 열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