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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 | 칼럼·시평 [문화칼럼]
풍년제과 센베의 추억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2015-01-05 09:36:07)

나의 고향은 부안이다. 70년대 초반 초등학교 다닐 때 무슨 경시대회로 전주에 가려면 중간에 김제에만 한번 정차하는 직행버스로도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멀미약은 필수였다. 심리적 거리로 보자면 당시 부안에서 전주는 지금 부안에서 서울보다 훨씬 멀었던 것 같다. 전주에 다녀온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전주에 전학 가는 친구가 있으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식구 중에 전주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전라북도 내 군 단위에 사는 사람들이 전주에 대해 갖는 콤플렉스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의 전주에 대한 신화는 대학 입학 후 무너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 캠퍼스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유학생들로 북적였는데, 그렇게 높이 보였던 전주 출신들의 존재감은 실제 그 숫자보다 작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전주에 대한 선망의식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일찍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직장 잡아 살고 있지만 부안과 전주에 대한 추억은 그곳이 아무리 변화했어도 화석처럼 굳어 남아 있다.

아버지는 전주에 출장 갔다 올 때면 그 이름도 풍성한 풍년(豊年)제과의 땅콩 센베를 사왔다. 세상에 그런 맛이 있을까싶을 정도로 달콤하고 또 씹을 때는 오죽이나 파삭파삭했던지 그때 그 맛과 느낌은 지금도 남아 있다. 여느 가정처럼 삼대가 사는 대가족이었지만 풍년제과 센베는 한 자리에서 한 봉지를 시원하게 먹었던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센베를 금고에 넣어 보관했다. 그래서 풍년제과 센베에는 늘 낡은 서류 냄새가 배어 있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도 전주에 가면 그 센베를 사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와 함께 풀어놓곤 했다. 기왓장처럼 휘어진 센베는 가운데 허리를 중지 가운데 마디로 톡하니 눌러 깨뜨려 조금씩 음미하면서 먹어야 하는데, 그 맛을 알 리 없는 녀석들은 뭐 이런 것에 그렇게 감동하시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땅콩 센베보다 훨씬 맛난 것이 많은데 요즘 아이들이 그 맛을 알아야 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풍년제과의 땅콩 센베 맛은 잊을 수 없다. 

한옥마을이 조성됐던 초기, 한옥체험관에 묵은 적이 있다.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마당과 큰 대청마루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을 보고 모처럼 뜨뜻한 온돌방에서 고단한 잠을 잤던지 어느새 아침상이 차려졌다고 하여 뒤뜰의 장독대가 보이는 마루에서 정갈한 아침을 먹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 그 뒤로 가족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대학원생 십여 명을 이끌고 한옥마을을 다녀왔다. 아세헌에 묵었을 때의 일이다. 대학에 출강한다는 여주인은 아침에 가야금 생연주로 모닝콜을 대신했다. 가야금 소리가 이끄는 대로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방문을 열고 마루에 걸터앉아 넋 놓고 아침햇살을 쬐고 있는데, 외국인 여럿이 중정(中庭)을 중심으로 나와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한옥을 찾은 외국인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중정을 중심으로 동선과 시선이 서로를 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한옥의 구조가 사생활 보호에만 치중하는 현대식 호텔과는 전혀 다른 포근함과 소통을 준다는 것에 더 큰 감동이 있었다. 가볍게 목례를 나누고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나와 대학원생들이 저들에게는 한국을 기억하는 여행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잔잔한 자긍심이 생기기도 했다. 도시 한 복판에 있는 한옥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평온했다.

지난 가을 오랜 만에 다시 한옥마을을 방문했다. 몇 해 전 그 한산했던 그 거리가 여기인가 싶을 정도로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주말이어서 그런가했더니 동행했던 전주 분이 한옥마을은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고 귀뜸해 준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젊은 남녀들이 많이 보이고, 전국 각지의 말씨가 들려온다. 서울의 홍대거리나 신사동 가로수길을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출향인으로서 내 고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어렸을 적 선망의 도시였던 전주가 그 빛깔을 찾아가다가 돌연 세상 유행과 풍조에 밀려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몇 해 전 연구년을 맞이하여 독일 뮌헨에 체류한 적이 있다. 주말을 이용해 당일치기 또는 1박 정도로 독일내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봤다. 그때 ‘여기다’ 싶을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도시가 하나 있었다. 밤베르크(Bamberg)!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구 7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한 나절 머물렀을 뿐인데, 지금도 그 도시의 이곳저곳이 마치 어제 다녀온 듯 기억에 새롭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다. 언덕 위 대성당에서 정오 때마다 개방하는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고, 중세도시를 옮겨놓은 것 같은 붉은 벽돌의 작은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성 미하엘 교회 뒤편 노천카페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면서 그때 썼던 편지를 다시 쓰고 싶다.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밤베르크를 가로지르는 레그니츠 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가면서, 정원이나 테라스 의자에 앉아 책 읽는 노인들을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그때는 못했지만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는 호사도 부려보고 싶다. 

전주 한옥마을은 지역 문화 살리기가 산업적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고 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밀물처럼 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곳이 많이 있었다. 전주와 한옥마을은 ‘핫 플레이스’라는 단어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한옥마을이 ‘핫’(hot)한 것이 잔가지를 때서인지 굵은 장작을 때서인지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여행자들이 거주민보다 많은 밤베르크를 다시 가고 싶은 것은 중세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그 터전 위에 지역 문화를 더했기 때문이다. 전주와 한옥마을을 마음에 두고 언제든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전주만의 아름다움, 즉 ‘전주다움’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멋있는 카페와 값싼 옷가게는 홍대거리나 신사동 가로수길에 양보해도 된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빵집과 제과점이 전국을 뒤덮어도 추억과 감동이 서려 있는 풍년제과 하나쯤 이 도시가 지켜낼 수 있는 저력은, 아세헌에서 맞이했던 아침의 ‘느림과 여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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