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5.1 | 칼럼·시평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삶
정미림 | 전주북초 교사(2015-01-05 10:03:15)

교사가 되어서 첫 1년을 보냈다. 

그 동안 내가 치렀던 수업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그런 수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업이란 ‘듣고 싶지 않은 학생과 가르쳐야만 하는 선생님이 치르는 한판 전쟁’ 같은 것이었다. 전쟁이라기보다는 처벌과 관용, 방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게임과 같은 것이었던 것 같았다. 게임이 도저히 풀리지 않을 때, 게임 매뉴얼을 뒤져 치트 키를 사용하게 되듯, 수업이 힘들고 어려워질 때면 나는 고등학교 때 일기장을 뒤적거리게 된다. 

10년 전 내 모습을 통해 요즘의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다. 일기장을 읽다보면 예전에 일기장을 쓸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극도의 초조함, 열등감, 좌절감. 사실 이러한 것들이 경쟁 체제에 놓여져 있는 학생들을 뒤덮고 있는 주요한 정서다. 생각해보면 나의 학창시절이란 ‘보통명사’에 길들여지는 과정이었다. 한 사람이 획득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이라는 보통명사는 바로 그 사람의 가치를 대변한다. 나는 보통명사들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어떤 것은 도저히 얻을 수 없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내 자신의 노력들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원하던 보통명사들을 얻었으므로 나는 행복해졌는가? 여기에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내가 따라왔던 삶의 방식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처벌과 관용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공부는 지겹고 힘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활동일까? 단 맛은 누구나 좋아한다. 단 음식에 입맛이 당기는 것은 본능이다. 쓴맛은 그렇지 않다. 쓴맛을 즐기려면 상당기간의 훈련과 반복이 필요하다. 믹스커피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아메리카노의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도 그렇다. 연예프로그램이나 게임에 빠져들기는 쉽다. 반면, 공부의 즐거움에 단박에 빠져드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하면 공부는 세상 그 무엇도 주지 못할 깊은 즐거움을 준다. 아이들이 공부를 즐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마다 천원씩 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쓴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될까? 무엇이건 습관이 되고, 그 자체로 즐기려면 스스로 즐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선택한 ‘보통명사’에 의해서가 아닌,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잣대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게 하고 싶다. ‘무엇을 위해 현재를 견디는 삶’이 아니라, ‘즐거운 현재가 즐거운 미래를 연속적으로 담보하는 삶’을 사는 자세를 갖게 해주고 싶다. 이런 수업을 학생들에게 하기 위해 나는 수업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싶었다. 수업이 영혼 없는 목표를 향해 달리기 위한 과정으로 강요되었을 때, 아이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였을 때 패배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수업은 오히려 자부심과 지적희열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강요 없이 수업을 하는 일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강요도 아니고, 선택하게 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로 1년을 보냈다. 무엇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혼란으로 가득차곤 했다. 

분명한 것은, 내 고등학교 일기장을 메우고 있었던 좌절과 고통의 기억들로 아이들의 일기장이 채워지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완전한 매뉴얼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잃지 않고 있다. 그럴 때가 오면 교사로서 살아온 나 자신의 삶에 의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