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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 | 칼럼·시평 [문화시평]
웃음 뒤의 씁쓸하고 조용한 뒷맛
문민주 기자(2015-03-03 16:20:38)

‘웃겨서 눈물이 난다’는 말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희극과 비극의 교차점에 인생이 있듯이 우리는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에서 인생의 파편들을 목격하게 된다. 극단 문화영토 판이 지난 24일부터 28일까지 소극장 판에서 선보인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도 그랬다. 한바탕 왁자지껄하게 웃고 난 뒤에는 조용히 씁쓸한 뒷맛을 감내해야 했다.

남자 셋, 여자 셋 모두 6명의 젊은 배우들이 적게는 1인 1역부터 많게는 1인 3역까지 쉼 없이 소화한다. 문화영토 판의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 돼 연기한 이 작품은 4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가 하나의 주제로 묶인 옴니버스 구성으로 짜여 있다. 등장인물과 사건, 배경 등은 다르지만 작품은 공통적으로 희극과 비극이 만나는 접점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작품 곳곳에 유머러스한 대사와 말투, 행동을 배치해 그 무게감을 일부분 덜어내고 있지만, 마냥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옴니버스 구성을 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은 각 에피소드를 잇는 연결고리의 밀집성, 균형성이라 판단된다. 따로 노는 듯하지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는 치밀한 구성력이 필요한 셈이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의 무게가 나머지를 짓누를 정도로 무겁거나 혹은 농담 식으로 가벼워지는 사태를 염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행복해 보이는 임산부와 산부인과 청소부, 낙태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여학생의 이야기다. 임산부는 산부인과 청소부에게 배 속에 있는 아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여느 임산부와 다름없이 푸른 미래를 꿈꾼다. 낙태하려는 여학생은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약을 먹는 것과 같다는 식이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의 싸움은 ‘애 못 낳는 여자’였던 임산부의 배에서 베개가 나오며 종료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엇갈리는 연인의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이별의 말을 전하다가도 함께 했던 추억을 꺼내며 웃어 보인다. 여자를 위해 털장갑을 준비한 남자는 친구의 조언대로 기차 여행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결국 다시 여자와 다투게 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시도하는 청년과 능숙한 장사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촌극으로 구성된다. 1만 원으로 음치를 극복할 수 있는 음치 교정기와 특수 기능 4개가 접목된 엽기 자명종, 무엇이든 붙여 주는 찰라 접착제 등을 파는 장사꾼들을 뒤에서 청년은 장사 기술을 습득한다. 그러나 단속반에 걸려 쫓겨나게 되고,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물건 파는 연습을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 다리 위에 선 사내와 노인의 이야기다. 다리 난간에 올라선 사내에게 물이 아직 차다며 말리는 노인이 등장한다. 노인은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한다. ‘몸’이 거추장스러워진 노인은 살아갈 ‘마음’을 잃은 사내의 결정을 돌려놓지만, 결국 자신은 다리 위에 서게 된다. “내일 또 살아 있으면 어쩌나”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에서 작품은 시작하고 끝난다. 무엇을 잃어 버렸다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작품의 등장인물도 잊어버린 무언가를 상대를 통해 깨닫듯 관객들도 연극을 통해 찾고 있는 중일 테다.
이번 연극을 통해 젊은 배우들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몇몇 관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내고, 코를 훔치기도 했다. 중간마다 수위를 넘나드는 대사가 있었지만, 반전 있는 짜임새 덕에 반감은 감소했다. 그러나 두 번째 에피소드의 폐지 줍는 할아버지는 단순 재미를 위해 투입한 역할이라기에는 연계성이 많이 떨어진다. 너무 무겁지 않게 작품을 이끌어 나가려 배치한 요소가 오히려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세 번째 에피소드도 각 배우의 역량을 살필 수 있는 자리로는 손색없었지만, 연극의 주제 통일 면에서는 벗어난 듯 보였다.
검은색 배경에 흰색으로 지하철, 가로등, 쓰레기통, 벤치 등을 그려 넣으면서 무대와 소품 활용을 최소화했으나 이는 오히려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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