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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 | 칼럼·시평 [문화시평]
고창농악 '풍무'
농악의 무대화에 대하여
조상훈(2015-06-01 11:54:59)
농악은 한국 전역에서 행해지는 대표적인 마을 공동체의 축제였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작년 11월,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고창농악이 또 한번 무대 위에 올려진다는 소식을 들으니 군산과 고창을 오가며 고창대산초등학교 농악반을 지도했던 대학 학창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군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창읍에 내려 다시 영광행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지나 대산읍에 도착해야 했던 그 여정의 풍경 속에 고창농악의 터전이 있었다. 너른 황토빛 벌판에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던 그 곳. 그 곳에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고창의 농악을 보존하고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음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창농악 보존회는 그간 1993년 황규언 등의 고창농악 1세대들로부터 시작된 고창농악 복원과 전수의 과정을 함축시켜 무대에 올려왔다. 20년이 넘도록 세대를 이어가며 고창 농악의 모습을 재현해내고자 한 시도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기에, 고창농악은 많은 이들의 격려와 사랑을 꾸준히 받아오고 있다.  
이렇게 내공 있는 고창농악의 경우에도 그 농악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언제나 큰 부담이다. 사실 농악은 그 공동체 삶의 현장에서 벌어져야만 물 만난 고기처럼 제대로 빛을 발한다. 현장에서는 엄숙한 제의적 절차와 고단함을 풀어줄 음식과 놀이, 각 개인의 예술적 표현을 품고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충분히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악을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과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담아내는 작업은 결코 만만할 리가 없다.
"굿은 한배, 강약 그리고 사람이 그때그때 잘 어울려져야 제 맛이여!"
처음 잡색 굿에서 강조되는 대사이다. 그렇다. 굿은 오랜 경험에 의해 형성된 연주자들, 즉 악기들 간의 조화가 기본이고, 긴장감의 강약이 적절해야 하며, 각 상황에 맞게 사람이 잘 어울려져야 제 맛이 난다. 관객들은 이번 공연에서 마을굿의 제 맛을 보았을까?
현장에서 재현되는 농악은 아주 풍성한 축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농악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그것은 완벽함을 잃게 된다. 서양음악의 관객에 비한다면, 추임새도 넣을 줄 아는 농악의 관객들의 마음은 활짝 열린 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객들은 감상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다. 관객들은 한 자리에 쭉 무대를 마주보고 앉아서 음향을 통해 소리를 듣고, 무대 전체를 한 눈에,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 이런 관객들이 만족할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합'을 이루기 위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주자들의 동작과 연주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기에 더욱 완벽한 합주실력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마지막 순서였던 판굿에서 더욱 커졌다. 현재 농악에서의 판굿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농악은 마을굿이었지만 전문예인들의 출현에 의해서 농악의 명맥이 유지되었고 그것을 토대로 복원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농악이 존재하고 있다. 판굿은 이러한 전문예인들의 기량의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마지막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판굿에서 보여지는 고창 농악은 생기가 많이 떨어졌고, 신명이 달아오르기엔 그 힘이 부족해 보였다. 입장굿에서부터 오채질굿을 쌓아가는 음악적 흐름이 과하게 조심스러웠고 맺고 푸는 과정에서 활력이 떨어져 다소 밋밋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탁 트인 야외 공간에서 적절한 악기들의 음색과 무대 위에서 적절한 악기의 음색은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 야외에서는 저음이 강한 가죽소리와 선명히 들리는 쇠소리가 적합하지만 아무래도 음향시설을 통해 전달되는 무대에서는 팽팽하게 조율된 가죽과 부드러운 울림으로 영근 쇠소리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탈에 마이크가 가려져 대사가 울리게 들리는 상황은 잡색굿을 보는 내내 몰입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끊임없는 잡색의 등장에 대해서도 크게 아쉬움이 남았다. 현장에서는 누구든 각자의 영역에서 함께하며 흥을 이어간다. 하지만 무대 전체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에 분명한 계획과 의도 없이 무대를 함께 즐기고만 있는 잡색의 모습이 계속 보여지는 연출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색굿 · 문굿 · 풍장굿 · 도둑잽이굿 · 판굿으로 이루어진 전체 구성은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개인적으로 전체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굿은 단연 풍장굿이었다. 푸른 들판도 아닌 네모난 무대였지만 노동과 어우러진 우리네 삶의 모습 속에 전해져 온 농악의 참모습을 짐작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특히 한 자락 뽑아내는 어르신의 노래 소리는 그야말로 백미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신만의 몸짓으로 장고놀음을 보여준 어르신 역시 전문적인 잽이들의 기능을 넘어서는 고창농악의 참맛을 보여주었다.
이런 어르신들과 젊은 전문 연주자들을 한 자리에서 보다보니 과연 어디까지가 고창농악만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유성'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예술적 자산이지만, 원래 문화란 것이 수용과 정착의 과정을 반복하며 이어져가는 것이기에, 이번 공연에서 보여진 타 지역 농악의 '수용'을 비판의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고창사람들이 하고 있는 농악이 바로 고창농악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를 아는 고창농악의 지킴이들이 더욱 대단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고창농악에서 발견한 가치들을 어떻게 지키고 가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창농악이 유지되는 한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한다.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이들의 행보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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