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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 | 칼럼·시평 [문화시평]
산조(散調), 경계를 허물고 제대로 즐기다
송미애(2015-08-17 16:21:24)

 

 

1992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예인들을 발굴하고 재조명 해 온 심지 곧은 기획 공연,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이 이번에는 전주 한옥마을 내 공간 ‘봄’에서 또 한 번 그 맥을 이었다. 스무 네 번째, 다소 특별했던 이번 공연의 중심에는 ‘산조(散調)’가 있었다.
‘허튼 가락’이라고도 불리는 ‘산조(散調)’는 ‘조선후기에 자리 잡은 기악 독주곡 형태의 민속음악‘이다. 느린 진양에서 시작해 휘모리(단모리)까지 점차 빨라지는 장단의 틀 속에서 판소리만큼이나 다양한 가락과 성음, 그리고 그 악기만의 기교적 특징들을 한 곡에 녹여 엮어낸다.
사실, 산조는 독주곡이다 보니 음역과 형식구성도 한정적이고, 우리 조성(調性, mode)의 특성상 화성의 변화가 뒷받침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분이 넘는 긴 가락이 한 명의 연주자에 의해 다채롭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진다는 것은 우리 가락과 산조 연주자의 뛰어난 예술성을 확인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수 많은 서양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우리 나라의 산조를 듣고 음을 다루는 방법과 장단을 타고 노는 음형의 자유로움에 감탄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산조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특히 2010년, 2011년에는 ‘산조, 그 흥에 취하다’라는 주제로 여러 명인들의 산조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은 또 한번 설레이기 시작했다. 야외인 듯 실내인 듯 고즈넉하게 준비되어있었던 ‘공연장’의 자태 덕이었을 것이다. 시끄럽지 않게 들리는 매미 소리들은 이미 잔잔한 배경음악이 되어 있었고,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점박이 고양이도 분위기를 타고 산조를 감상하러 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당’의 소박한 무대는 관객이 연주자에게 말을 걸 수도 있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 ‘경계를 허물고’ 자리하고 있었다.

 

원장현(대금), 이태백(아쟁), 김일륜(가야금)을 비롯한 여러 연주자들이 3일 간의 ‘산조의 밤’에 초대되었다. 이미 검증된 산조 연주의 명인만 모셔도 그 날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 같지만, 사실 제대로 된 산조를 감상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경험이 아니다. 먼저, 산조를 자신의 소리로 만들어낼 연주자, 그리고 호흡이 잘 맞는 고수가 기본이다. 산조의 유래를 주로 시나위에서 찾지만, 현재의 산조는 시나위만큼의 즉흥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수 많은 연주자들이 악보로 기록 가능할 정도로 고정된 유파들의 산조를 연주하고 있으며, 원하는 길이만큼 재편집 하는 과정만이 연주자에게 주어진 창작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조에서의 ‘유파’보다도 ‘연주자’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성음의 차이 때문이다. 그 산조의 가락이 자신의 가락으로 소화되었을 때만 느껴지는 산조연주의 자유로움은 명확하다. 그런 측면에서 30분이 넘는 원장현류의 대금산조를 원장현 명인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던 이번 공연은 더욱 의미가 깊었다고 볼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산조의 맛을 아는 ‘귀 명창’들이 있어야 한다. 산조가 연주되는 공연들은 많지만, 대부분 10분내외의 짧은 산조로 마무리된다. 우리 가락의 농현과 시김새, 장단에 대한 감각, 가락의 미묘한 조성 이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긴 산조의 30여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의 경우에는 박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느린 진양에서 이미 집중력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세 명의 명인들이 자신의 성품을 똑 닮은 긴 산조의 가락을 마음껏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관객들이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장성’이 살아있는 공연장소이다. 대부분 산조연주는 명인들을 중심으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비용이 따르게 되고, 그러다보니 관객의 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큰 공연장에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큰 공연장은 산조연주에 적합하지가 않다. 큰 공연장에서 대부분의 관객은 움직임 거의 없는 산조 연주자의 실루엣을 보며 음향시설을 통해 연주소리를 듣는다. 아무리 뛰어난 음향기술자라도 국악연주회를 처음 맡으면 수 많은 ‘잡음’들에 당황하기 마련인데, 사실은 그 ‘잡음’들이 풍부할 때 진정한 풍류음악이 완성된다. 거문고의 술대가 부딪히는 소리, 화학 섬유가 아닌 명주실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손끝의 소리, 찢어질 듯 음색의 격을 높여주는 대금의 청 소리 등은 음향을 통해서 곱게 다듬어서 듣기에 아까운 귀한 ‘잡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음반 최초로 2012년 그래미상 2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던 음반사 악당이반의 <정가악회 풍류 III - 가곡>이 스튜디오가 아닌 자연 속의 고택에서 녹음하여 풍류음악의 현장감을 미세하게나마 담아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바로 이 현장감이지 않을까. 각자 하루씩 그 날의 공연 전체를 부탁받은 명인들은 화려한 움직임도,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었지만 마음 편하게 산조연주에 집중했다. 무대 위의 진솔한 연주만 있다면 모든 것이 충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산조의 생명력은 연주자의 창의성과 즉흥성에 있다.
‘산조’라는 이름의 독주곡은 아니었지만 아쟁의 다양한 주법들을 모아 대금과의 즉흥연주로 풀어갔던 「공감」, 여러 유파의 산조 선율들을 다시 모아 만든 「춤산조」등은 연주자의 창작과 즉흥을 맛볼 수 있는 선곡이었으며 귀한 연주였다. 또한 대금이 아닌 거문고로 아들 원완철과 함께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병주로 풀어가는 원장현 명인의 모습이나, 조카의 심청가 한 대목에서 북을 잡은 고수가 되어 맛깔난 연주를 보여주는 이태백 명인의 모습을 보니 전공이라는 경계 없이 악기를 다루었던 우리의 과거가 지금의 명인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날 김일륜 명인이 산조가야금과 직접 제작에 참여한 25현 개량가야금을 모두 연주하는 모습은 전주에서 태어나 가야금의 현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연주자로서의 여정을 음악으로 듣는 것 같아 그 또한 충분하였다.
어느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그럼 산조에서 유파를 형성한 사람들은 다 조선시대 사람이에요?” 그 학생은 원장현 명인이 눈앞에 나타나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경계를 허문 공연들을 통해 우리 음악의 매력을 가득 담은 ‘산조’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서 변화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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