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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 칼럼·시평 [문화시평]
작품이 되는 '콘텐츠'가 답이다
2015 전주세계소리축제
윤중강(2015-11-16 15:57:46)

 

 

십년쯤, 전이다. 소리축제(전주세계소리축제)와 관련된 자문회의와 토론회의 자리에 참여하면서, 정말 내 귀를 의심한 적이 몇 번 있다. 소리축제와 관련한 '지역'의 '전문가'들의 발언이다. 당시 지루하게 반복된 '소리'와 개념과 범주 등과 관련한 '탁상공론'과 같은 얘기는 거론하고 싶지 않다. 실제 그들이 '소리'와 관련해서 얼마큼 애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겉으론 소리축제의 올바른 방향성을 걱정한 것 같았으나, 내심 소리축제에서의 자신 혹은 자신의 분야의 '영역'을 위하여 발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내겐, 다음 두 가지 발언은 충격적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인데, 왜 타 지역 사람들이 출연을 합니까? 전주사람, 전북사람이 만든 공연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 또한 전북과 전주의 지역성을 잘 살린 작품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주 혹은 전북에게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고 과연 가능할까? 일부 지역 예술인의 '폐쇄성'에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또 하나는 이 지역의 클래식이나 국악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야외공연' 혹은 '해외민속공연'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모든 예술과 모든 공연이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문화적 조건과 연관이 있거늘, 그것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잣대로 폄훼하는 말을 버젓이 하고 있었다. 워매드를 수용했던 소리축제를 보고, 전주의 한 원로예술인이 TV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런 지면에 올리는 것조차 부끄럽다. 전형적으로 '서구음악'과 '극장공연'에 경도된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그간 소리축제를 위해 많은 분들이 애를 썼으나, 돌이켜보면 안숙선 김명곤 위원장을 거쳐서 축제가 '내실'이 있어졌고, 박칼린-김형석을 거쳐 박재천위원장이 맡아서, 소리축제의 '외연'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소리' 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한 축제의 방향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판소리의 전통부터 시작해서, 이것의 변화에 까지 모두 관대해 보인다. 소리축제가 지역사람들의 시각을 관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소리축제가 기여한 바는 일단 크다.
하지만 이제는 좀 비판적 잣대로 필요하다. 소리축제에서 보여주는 여러 콘텐츠에 대한 축제적, 공연적, 예술적, 지역적 '가치'에 대하여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축제가 안정적 기반을 구축한 지금이야말로, 다시 새롭게 축제에 기획부터 실행까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면밀하게 점검이 필요하다. 이것은 현재 축제와 관련된 인력들이 앞으로 계속 축제를 잘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전주소리축제의 한계는 무엇일까?

첫째, 지나치게 '현장적'이다. 2014년과 2015년에 만들어낸 개막공연 등에서 만들어낸 콘텐츠가 '축제적'임은 분명하다. 때로는 '지역적' 성과로서 우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2015년의 개막공연은 전주와 전북이 바탕이 된 '소리축제'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공연적'이며, '예술적'이냐?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거기에 대해 우호적인 답변을 하기도 좀 주저하게 된다. 소리축제는 그대로 축제와 공연의 차이를 보여준다. 축제의 특징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소리축제에서 직접 기획한 공연은 매우 축제적이지만, 그것은 곧 지극히 현장적이고, 순발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상이다.
둘째, 다소 '이벤트적'이다. 앞의 내용과 연관이 있다. 매우 조심스럽지만, 내년에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분명 소리축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장점은 높이 사나, 이것이 이벤트 혹은 기네스적인 사고를 떠나야한다. 단순이분법이 될 수 있으나, 소리축제는 너무 '크고' '많은' 것을 쫒는 것처럼 보인다. 아쉽게도 그것들이 '깊고' '남는' 것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벤트'를 넘어선, '콘텐츠'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긍정적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더 '무대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보다 더 '지구력'을 길러내서, '숙성한' 콘텐츠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
셋째, '기술적' 시스템이 무척 취약하다. 나는 이번 개막공연을 보면서, 소리축제를 사랑하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크게 박수를 보낸 일인이었다. 그러나 정말 한편에선 안타까워서 울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국악관현악단에게 너무 미안했다. 음악적인 역할도 적절치 않았고, 많지도 않았다. 나아가 음향적으로도 참으로 안타까웠다. 사실 많은 명창들이 등장하기에, 이 부분에서 과실을 범하지 않으려는 것이, 음향쪽의 최선인 듯 보였다. 따라서 몇몇 국악기 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고, 국악관현악단과 빅밴드의 음향적 밸런스는 애초부터 무시되었다.  이외의 축제 현장에서도, 기술 상의 아쉬움은 많이 보였다.
넸재, 이와 같은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프로덕션 디자인'의 개념이 필요하다. 소리문화의 전당을 제외한 다른 축제의 현장에서, 그간 '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 및 '국악'에 대한 이해 부족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띠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축제 혹은 공연에는 예술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으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예술감독이 콘텐츠를 계발한다면, 기술감독은 그것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연 소리축제의 내부인력 중에서 이런 역할을 누가 맡고 있고, 누가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조명 음향 무대 등의 한계는 개막공연에만 국한 되는 게 아니다. 소리문화의 전당을 제외한 모든 공연에선, 크든 작든 기술적 아쉬움이 크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타 지역과 다른 '전주'만의 특별한 '공간'에서 공연한다는 기쁨과 자부심에서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게 참으로 많다는 것을, 소리축제 측에서 알아주길 바란다. 다소 거칠 수 있으나, 소리축제의 한계를 정확히 짚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위하여 말한다면, 지금의 소리축제는 '크리에이티브 팀'은 그런대로 잘 구축되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창의적인 콘텐츠를 실제적으로 잘 구현할 수 있는, 더불어서 이를  축제 전체에 잘 확산할 수 있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꽤 약해 보인다. 이에 대한 고민과 보강을 통한 해결이 절실하다.
끝으로 킬러콘텐츠의 부재다. 그간 소리축제의 성장은 괄목할만하다. 지역축제의 성공적 사례가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전통예술과 관련해서 매우 주목할 축제로 성장했다. 그런데 앞과 연관해서 아쉬운 점은 역시 축제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판소리임은 분명하고, 판소리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모호함이 있다. 몇해 전 소리축제의 폐막공연 '콘서트 춘향'(양승수 연출)을 시작으로, 판소리 한 바탕을, 한 공연 내에서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 방식은 매우 현명했다. 이것은 기존판소리와 기존 창극과는 다른 접근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면밀한 구현은 매우 약하다. 재차 강조하지만, 그것이 '이벤트'이 아니라, '콘텐츠'이어야 한다.
소리축제가 최근 몇해동안, 국내외의 주요한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축제기간에 보여주려는 노력과 성과에는 박수를 보낸다.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제대로 못 본 공연을, 소리축제 기간에 볼 수 있는 '특혜'같은 기쁨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이런 것들이 아직도 어떤 '주제'와 '컨셉' 사이에서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막공연과 폐막공연은 어쩔 수 없이, 일반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광대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소리축제의 공연은 보다 더 학구적, 공연적, 예술적인 '작품'으로 지속적으로 축적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를 통해서 소리축제의 킬러콘텐츠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런 '광대의 노래'가 계속되면서, 소리축제의 장기적인 비전이 그래도 작품을 통해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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