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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 칼럼·시평 [문화칼럼]
왜 우리는 독일 라이프치히로 향하는가?
이기웅(2015-12-15 09:18:33)

 

 

 

파주 출판도시에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에서는 매년 독일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에 참가한다. 도서 판매 등 상업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우리 한국 문화의 전통과 그 인문학적 저력을 유럽 및 세계에 홍보하면서 국제간 문화교류를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이름도 아예'한국관'이다. 

그동안 정부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문화'라는 이름을 내걸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또는 국제교류를 확대하겠다는 명분으로 많은 모색과 시도가 있었으나, 우리의 한국관 운영은 조금 다른 접근이다. 바로 책을 매개로 하여 한국문화를 알리는 것으로, 2013부터 2023년까지 10개년 사업으로 준비·실행되고 있다. 2013년에는 한글, 2014년에는 한식韓食, 2015년에는 한복韓服을 주제로 참여했고, 2016년에는 한옥韓屋을 주제로 참여한다.

그런데 왜 프랑스 빠리나 영국의 런던 같은 곳이 아니고 독일이고 라이프치히인가? 독일이라 하면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겠지만, 유럽 문화, 특히 출판 문화의 역사,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라이프치히는 어떤 도시인가.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평생 사제(司祭)로 살기를 맹세하는 종신서원(終身誓願)을 하고, 1519년 로마 가톨릭 교리에 반박해 성직자 요한 에크(Johann Mayer von Eck)와 격렬한 면죄부 논쟁을 벌였던 도시가 바로 라이프치히이다. 루터가 이 도시에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쓴「 95개 논제(Anschlag der 95 Thesen)」는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인쇄술을 통해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다양한 주제의 설교와 소논문들을 담은 인쇄물들이 그의 비텐베르크(Wittenberg) 서재에서 쏟아져 나왔다. 라틴어로 된 성경의 해석을 독점했던 로마 교회는, 루터의 독일어 완역판 성경이 출판, 보급되자 그 막강한 권력이 서서히 퇴색되기 시작했다. 이는 그때까지 통일된 언어가 없던 독일에 표준어를 정립하고 모국어에 대한 각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만년의 바흐가 이십팔 년간 성가대를 지휘하며 봉직한 성 토마스 교회(Thomaskirche)가 자리한 도시로, 바흐는 요한 크나우스(Johann Knaus)의 뒤를 이어 1723년 합창장으로 취임해 1750년까지 이곳에 있으면서「 마태 수난곡」을 위시하여 265곡에 달하는 곡을 썼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도시의 축제 중 하나는 '라이프치히 바그너 축제'이며, 멘델스존이 슈만과 함께 음악학교를 설립한 곳도 바로 라이프치히이다. 아름다운 건축을 자랑하는 콘서트홀인 게반트하우스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연주단체인'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역시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또 어떠한가. 라이프치히는 명실상부한 음악의 도시이다.

라이프치히는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대문호 괴테는 1764년부터 1768년까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법학도 시절을 보냈는데, 이후 1773년 집필을 시작해 1831년 완성한 불후의 대작 『파우스트(Faust)』는 이 도시에서 구상된 것이다. 당시 라이프치히는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하여,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이 도시를' 작은 파리'로 칭하기도 했다.

한편, 라이프치히는 고문헌학(古文獻學)을 공부하던 청년 니체가 헌책방에서 손에 넣은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통해 세계와 자아를 마주했던 곳이기도 한데, 그는 여기서 훗날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바그너를 만나, 음악의 본질을 인식한 유일한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라이프치히는 유서 깊은 인쇄·출판의 도시로도 그 명성이 높다. 중유럽 및 동유럽과의 접촉이 용이한 지리적 요건, 황제의 검열과 국수주의(國粹主義)로부터의 자유, 종교개혁이 더 적극적으로 진행된 북부와 동부 독일의 판로 덕에, 라이프치히는 책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근대 독일문화, 나아가 유럽문화의 발전에서 인쇄술과 제지술의 발달, 번역과 출판의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한 것이었는데, 이러한'문화대지진'의 중심에 라이프치히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차대전 전까지 독일 출판물의 절반이 이 도시에서 발행되었을 정도로 출판업이 번성했지만, 독일 분단 이후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추락하게 되는데, 서독의 경제적 호황과 출판업의 급성장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유럽을 넘어서는 전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프치히는 과거에 빛났던 과거의 도시가 아니다. 문화도시로서 라이프치히가 갖는 위상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중요한 한 가지 지표가 있으니, 다름 아닌'라이프치히 인쇄술박물관(Museum fur Druckkunst)'이다. 이십 오년 동안 인쇄기와 관련 자료를 모은 한 개인에 의해 1994년 세워진 이 박물관은, 인류에게 지식을 전달해 온 유럽 출판기술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곳의 활자주조실, 조판실, 인쇄실, 제본실은 모두 공방(workshop) 의 기능을 완벽히 갖추고 있기도 하다.

문화도시, 책의 도시로서의 면모는 그러나 몇몇 랜드마크가 아니라 이 도시의 거리와 골목에 가득하다. 매년 삼월마다 열리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은 도시 전체를 책 축제의 장으로 만들지만, 이 축제와 무관하게 도시는 일 년 내내 책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는다. 시내 중심가에는 옷가게, 음식점과 나란히 고서점들이 즐비하고, 그 서가에는 골라도 골라도 보석 같은 책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극장, 카페, 식당은 작가들의 낭독회나 독자들과의 만남으로 불을 밝히고, 술집과 광장에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가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이 오래된 책의 도시로 향하는 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함께 있다. 고속성장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오며 우리 스스로 경시했거나 미처 인식하지 못한 우리 문화를 우리 스스로 내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기회를 갖자는 것, 그리하여 자존의 감각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무대에 서기 전 숱한 날들을 리허설로 보내며 자기를, 마치 쇠처럼, 정련한다. 저 먼 독일 땅, 밖으로 향한 우리의 외유는 안으로의 가다듬음, 문화 세우기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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