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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칼럼·시평 [문화시평]
과거와 현대를 잇는 연극적 자긍심을 획득하다
창작극회 <싸우지 맙시다>
류경호(2016-03-15 11:25:19)





전북연극의 활력소가 되는 계기
2016 새해를 여는 연극 '두 주막-싸우지맙시다'(박동화 작, 곽병창 각색, 조민철 연출)가 무대에 올랐다.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는 지난 1월 28일부터 30일까지 총 3회의 공연을 전주 창작소극장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이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원로예술인 공연지원사업으로 마련되었으며, 만 60세 이상의 전북연극협회 회원과 젊은 연극인들이 연합하여 이루어낸 공연이다. 여기에 참여한 원로 연극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김기홍, 류영규, 이부열, 강택수, 배수연, 박상원 등 총 6명이 참여 했으며, 염정숙, 백호영, 류가연, 김수진, 안혜영을 비롯한 젊은 연극인 10여명과 여러 극단(창작극회, 극단황토, 까치동, 문화영토 판, 무대지기, 등) 함께하며 모처럼 전북연극의 활기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 작품은 '전북연극의 대부이자 선구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지난 50여 년 전 우리지역연극을 이끌어 온 고 박동화 선생의 유작이다. 그는 당시만 해도 고갈되어가는 지역 연극자원을 되살리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르며 치열한 예술정신으로 전북연극의 명맥을 이어왔다. 1959년 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국립극장 현상공모에 당선을 계기로 그는 폭발하듯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박동화의 첫 연출로 출범하게 된 '전북대학교 극예술연구회'의 정기적인 공연도 박동화 희곡 양산의 동기가 되었다. 그는 '전북대학교 극예술연구회'로부터 독립된 전문극단 '창작극회'를 창립시켜 극단 대표와 극작, 연출의 1인 3역의 고된 작업을 기꺼이 감수하며 예총 전북지부 창립의 산파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주막'은 지난 1964년에 발표해 같은 해 5월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1993년 당시 창작극회 대표였던 곽병창 작가가 시대 배경을 바꿔 '싸우지맙시다'란 이름으로 각색, 뮤지컬 형식으로 제작, 도내 시군과 전국 5개 지역을 순회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개발과 맞물린 이해관계의 해소
이번 '2016 두 주막-싸우지맙시다'는 전주 한옥마을 인근 동문거리에 사는 이봉삼(이부열 분)과 류마담(류가연 분) 두 집안이 갑작스런 지역개발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과 지역 유지들의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선거판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그려졌다. 여기에 지역의 전통성을 지켜내기 위한 젊은이들(김수진, 이종화)의 저항과 사랑이 적절하게 가미되며 흥미를 유발한다. 언뜻 앙숙인 두 집안의 대결 구도는 청춘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은 듯도 하지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결국 두 집안은 화해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은 현대적으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서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전형적 인물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이봉삼은 전통적 가부장의 이미지를 간직한 홀아비이며, 지역개발을 통한 일확천금에 현혹되지 않는 고집스런 면모를 보이면서도 도덕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분방한 사내이다. 반면에 그와 마주하는 류마담은 일찍 남편을 여의었지만 주위의 회유와 개발이익에 눈이 어두워 잠시 이성을 상실하지만 딸의 태생적 사연과 이를 껴안은 인간미 넘치는 넉살 좋은 아낙이다. 여기에 청춘 남녀는 두 집안의 외동아들이자 딸들이다. 겉으로는 앙숙이지만 서로 흠모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조심스런 사랑을 이어가는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살아왔던 삶터가 갑작스런 지역개발 계획과 기성세대들의 욕망을 와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융합의 매개체
연출적으로 전반적인 구성을 현대적으로 끌어온 조민철 연출은 과거의 비극성을 덜어내려 한 흔적을 곳곳에 배치하고, 이 시대의 이유 있는 삶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작품의 연출 방향의 특성을 보더라도 과거의 사실주의 작품이 그렇듯 비극이 안고 있는 카타르시스와는 또 다른 연극에서의 행복감으로 관객과 직접 소통하고 교감하는 대중문화로써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게 접근하려고 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욕구를 분출하는 기제로써 랩과 기성세대들의 트로트가 결합되며 세대를 아우르는 편안함이 혼용되었고, 정서적으로 과거의 무딘 칼을 갈아주는 칼장수(류영규 분)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젊은이들과의 대비는 세대를 융합하는 매개체가 되면서 작품의 구조적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의 유기체 역할을 한다. 
이번 원로예술인 사업 '2016 두 주막-싸우지맙시다'를 계기로 조민철 연출은 가칭 극단 '청춘'을 창단해 전북연극인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지속적으로 지역 연극인들이 고령화 되어가고 있고, 사회적 분위기도 실버문화예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극단 '청춘'의 토대를 닦아 나간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전제가 따른다. 먼저 젊은 연극인들의 '우정'출연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공동작업으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위하여 내실 있는 단체운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그동안 경제적 여건과 일상생활 때문에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도 연극의 문호를 개방하여 연극의 저변확대를 기해야 하겠다.

연극의 사회적 사명의식 성취
어찌됐든 여러 현실적 제약과 연극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이번 공연에서 얻어진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원로연극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연극계의 선배이자 후배들의 결속된 저력을 과시하였고, 둘째로 연극인들의 화합과 개개인의 흉금을 털어내는 기폭제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전북연극의 한 획을 장식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적 장을 열었다. 특히 이번 사업에서 공연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시대적으로 난무하는 유언비어와 혼탁한 세상에서 순수한 영혼의 결정체와 같은 마음의 정화를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공연 내내 창작소극장이 미어지도록 관객들의 열기로 추운 겨울을 녹여내었고, 기대이상의 관객평가를 얻어내며 남녀노소 공연을 통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이번 작품이 연극의 사회적 사명의식의 성취로 이어졌으며, 전북연극인들의 자긍심으로 이어졌다는데 큰 의미로 남았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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