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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 칼럼·시평 [문화칼럼]
태극기 단상(斷想)
임동확(2016-06-16 14:08:26)

덴마크 귀족 출신의 물리학자로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닐스 보어(Niels Bohrs, 1885~1962)는 주최 측의 양해를 받아 노벨상 수상식장에 주역팔괘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오늘날까지 '원자의 아버지'로 불리며 현대 양자역학의 뼈대를 완성한 이로 평가되는 그는 자신의 가문(家門)을 나타내는 문장(紋章)으로 『주역周易』에 기반한 태극도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원자의 구성요소인 양성자와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그의 과학이론은 사실 "양과 음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주역의 논리를 응용한 가설에서 출발했다는 나타내기 위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모든)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Contraria Sunt Complemental"이라는 주역의 음양론 또는  '상보성 이론Complementarity Principle'없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과학자나 철학자 가운데 주역에서 파생한 상보적인 원리에 관심을 가졌던 이는 닐스 보어만이 아니다. 지난 1679년 이진법을 고안한 라이프니치와 말년에 '통일장'을 연구했던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융과 빅뱅이론으로 우주의 생성원리를 설파한 스티븐 호킹 박사 등이 주역의 구성 원리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과학 이론과 학문의 체계를 열어간 바 있다. 오늘의 서양문명을 뒷받침하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바로 동아시아의 자연 과학서이자 우주의 구성 원리를 담고 있는 주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태극기

지난 1882년 제작된 후 1883년에 조선의 국기國旗로 제정된 바 있으며, 지난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 국기로 공포되었던 태극기 형상이 그렇다. 먼저 태극기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태극'의 형상은 우주 삼라만상의 근원이자 인간 생명의 원천인 음양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순수한 동질성을 나타내는 흰색 위에 그려진 네 괘상卦象은 만물의 우주만물의 변화상을 담고 있는 부분상部分象에 해당한다. 한낱 한 국가의 국기를 넘어 우주와 인간의 구성원리가 동형적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이 육체적인 단련과 정신적 수양을 통해 우주자연의 원리에 합일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게  태극기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린 이러한 태극기를 통해 무얼 보고 있는가? 한낱 모든 가치에 앞서 국가의 이익과 안전을 중시하는 애국적이고 국수적인 태도로 태극기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러한 태도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체험이 잘 보여주듯이  국체國體가 있어야 개인과 민족의 생존과 문화가 가능하다. 어떤 경우 개인의 생존보다 국가의 안위가 더 먼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태극기는 다양한 생각과 이념을 가진 제압하고 탄압하는 특정 세력의 도구나 수단일 수 없다. 오히려 하나의 국기國旗를 넘어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와 전통과 함께 해온 민족적인 부호이자 상징이자 인류 보편적인 지혜가 담긴 상징물로 보아야 한다.


한민족의 자긍심, 태극  

예컨대 신라 신문왕 때 세워진 감은사의 금당 동남쪽 기단 장대석에 새겨진 태극도형이 그렇다. 이는 송나라 때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1070년)보다 대략 388년 앞선 682년에 새겨진 것으로서 우리 민족이 일찍이 태극 사상을 공유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국내 최고最古의 태극문양으로 전남 나주 복암리의 목제품 한 쌍 역시 백제 사비 시대(538~660)에 제작된 것으로 미루어 중국과 다른 한국만의 독자적인 태극론이 존재해 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태극은 궁전이나 사찰, 왕관이나 누각 등 상층부 문화에만 집중되었던 것은 아니다. 곡옥 등 패물과 거문고나 장구 등 악기뿐만 아니라 숟가락이나 식기 등 생활용품에도 태극의 원리가 적용되어 왔다. 한민족을 이끄는 지도적 사상원리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삶의 원리로도 작용해왔던 게 태극이다.


잊어선 안 될 '태극'의 정신

따라서 1956년 제정된 이래 매년 시행되어오고 있는 '보훈의 달' 6월에 우리가 태극기를 통해 배울 점은 무조건적인 애국심이나 조국애가 아니다. 또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국가 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을 기리는 행사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닐스 보어가 주목한 대로 태극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상보성의 원리와의 조우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기에 하나의 존재는 반드시 다른 존재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그 무언가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는 상보적相補的 정신의 회복이다. 바로 인간과 세계가 단지 수동적인 상호의존을 넘어 능동적인 상호침투의 창조적 관계로 전환될 때 진정한 화합이나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태극의 심오한 이념과 사상에 대한 재조명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남북분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분열이 행여 여기에서 기인한지도 모른다고 할까. 현재의 태극기는 건이 위로 올라가고 곤이 밑으로 가라앉는 '막힘(否卦)'의 형상이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거듭된 괘로서 하늘과 땅이 상극을 이루는 상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서로 배척하며 더욱 멀어지는 흉상凶相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극한의 대결이나 갈등에서 벗어나 대로 창조와 포용의 성숙한 사회로 도약하려면  '건'이 밑에 있고 '곤'이 위에 있어야 마땅하다. 실제 그게 현실사회에 구현됨에 관계없이, 주역의 원리상 홍청(紅靑)이 뒤바뀌어야 우리 사회가 비로소 상호 협력하는 새로운 조화의 생명문화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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