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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 칼럼·시평 [문화시평]
스승과 제자가 함께 풀어낸 호남 춤의 정수
4대가 펼치는 금아 이길주의 춤 '사제동행'
김자영(2016-06-16 14:40:00)




지난 5월6일(금)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7호 호남산조춤 보유자인 이길주 선생님은 스승인 최선(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보유자) 선생님을 모시고 제자들과 함께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어떠한 공연이든 쉬운 공연은 없다. 그럼에도 이 공연은 최고의 어른들을 모시고 손끝, 발끝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몸짓언어로 무대에 올리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으리라 제자들의 마음을 의심 없이 바라보았다.


공연 날은 공연을 위한 컨디션을 위해 자신의 마인드컨트롤이 가장 필요한 날이다. 놀랍게도 그날의 공연장 분위기는 아마추어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필자는 리허설 과정부터 함께했다). 미리 준비되어진 작품동선파악, 영상, 조명, 소품 등의 체크가 이루어졌으며, 무용수와 음악연주자들과의 조합도 완벽하였다. 리허설 중 틀린 음을 정확히 집어내는 이길주 선생님의 청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관객들은 좌석을 찾아 앉으며 오늘의 공연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경험상으로 이 시간이 분장실의 무용수들에게는 가장 긴장되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왔는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이다.
작품해설은 민속학자이며 전 용인대교수인 이병옥 선생님이 맡아주었다. 그 역시 전주출신이면서 최선 선생님과 이길주 선생님의 춤을 수없이 보고 함께한 시간을 이야기하듯 풀어내면서 드디어 공연의 문이 열렸다.
4대가 펼치는 이 공연의 부제로 필자는 '연결'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스승과 제자로, 춤과 춤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길주 선생님은 스승인 최선 선생님과 14세에 추었다는 '연가'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14세에 함께 추던 그 '연가'의 춤을 상상해보면서 그녀가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지 미소가 띄어진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호남살풀이춤을 추신 최선 선생님은 엇가락을 타는 장단으로 한 폭의 난을 그리듯이 수건을 뿌릴 때 80대의 나이를 의심할 정도였다. 무대 중앙에 자리를 잡고 모여든 조명 빛 아래 그는 지난 시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듯 우아하게 자신의 혼을 담아내었다. 관객들은 숨죽여 그를 바라보았고 호흡마저 멈춰버린 듯 집중하였다. 스승에게 답가라고 보내듯 다음순서로 이길주 선생님의 금아 살풀이춤은 단연 최고의 모습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명주수건의 끝자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림으로 연상된다. 들숨 날숨으로 연결된 춤사위와 맺고 끊고를 반복하면서 손에 든 하얀 수건으로 인간의 깊은 가슴속 무언가를 치유해주는 듯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이 아닌 끝이 보이지 않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몸짓의 자태가 왜 우리가 춤을 보면서 감정의 기폭을 느끼는지 알게 해주었다. 눈을 떼지 못하고 한 동작 한 동작을 기억하도록 만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길주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이 함께 무대를 만든 호남산조 춤이다. 이 무대는 스승에 대한 애정이 끈끈하게 뭉쳐진 가슴 설레는 그런 자리였다. 이 춤은 호남의 판소리와 시나위를 바탕으로 산조음악에 맞춰 느린 장단부터 빠른 장단까지 신명을 자유롭게 승화시켰다. 스승의 춤사위를 전수받고 연습하고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그들의 무던한 노력이 그대로 보여졌으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 또한 관객들에게 전달되었다. 여러 명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인내와 노력, 의지라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음악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몸동작이 아닌 진정한 춤은 마음을 맞춰야 완성되는 것이다. 또 서로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마음 또한 갖추면 더욱 좋겠다.
사람들은 노력했을 때 그 대가가 치러지길 원한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용수들에게 그 대가란 뜨거운 박수이며 공연을 통해 얻은 그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그 헛헛함을 공연 후기(칭찬이면 더욱 좋은)를 들으면서 달랜다.


필자는 2015년에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된 단체들의 평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수많은 공연평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도 건네주지 못하는 공연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공연장을 나설 때 찜찜한 발걸음으로 돌아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에게 그분들이 곁에 계셔서 춤을 통해 나의 감정선이 발달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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