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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 | 칼럼·시평 [문화칼럼]
왜 우리는 기록해야 하는가
이동석(2016-07-15 09:05:11)

느닷없이 어느날 내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꽉 막혀서 왼쪽 귀로만 살아야 했다. 거실의 TV볼륨을 점점 올려야 했고 아내의 말을 두세번씩 확인해야 했으며 모임에 나가서도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각끝에 이비인후과 의사인 동창생을 찾아갔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속의 작고 낡은 병원이었으며 영화에 나오는 고집스런 영감같은 대머리 의사였다. 동창생이 내 이비인후(귀와 코와 목구멍)를 자세히 살피는 동안 그의 어깨너머로 그 병원의 역사가 보였다. 한쪽벽 전체를 책장처럼 짜놓고 채곡채곡 환자의 기록파일을 꽂아둔 거였다. 40년전에 이 자리에서 개업했고 이 자리에서만 진료했으니 이 파일들은 이 동네 40년의 주민건강기록인 셈이었다. 최근의 파일들은 색깔이 밝았고 점점 과거로 갈수록 파일색은 퇴색되어 거무튀튀했다. 보기만 해도 이 병원에 신뢰가 느껴졌다. 동창생 의사는 환자에 밀려 회포를 풀 틈도 내지 못하고 내 눈앞에서 내 기록부에 진료결과를 적고 처방전을 내주었다. 그 동네의 약국에서 약을 받는데 약사가 내게 물었다.'배병원에서 진료받으셨군요?''네''그 병원 처음이세요?''네''그 분 명의입니다. 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멀리 이사 간 사람들도 이 병원으로 다시 오시죠. 이 동네에서 태어나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어른이 되어 멀리 떠났다가 아기를 낳아서 안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동창생을 명의의 반열에 올려놓은 비결은 물론 그의 실력이 뛰아난 덕분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 엄청나고 치밀한 기록일 것이었다. 몇만명인지 셀 수 없는 그 많은 환자들의 몸상태, 그 아픔의 원인과 치료결과들이 그 파일속에서 빽빽히 살아 숨쉬고 있으니 그는 당연히 명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동창생의 지시를 받으며 삼복더위에도 매일매일 찾아가서 진료를 받아 3개월만에 귀가 뻥 뚫렸다. 벽속에 꽂혀있는 그 병원의 기록들이 그를 믿게 했고 내 귀를 그에게 맡겨 아내의 말을 단박에 알아듣게 되었다.

기록한다는 것은 남긴다는 것이다. 남긴다는 것은 뒷일을 위하거나 뒷사람을 위한 것이다. 남겨진 기록을 보고 앞뒤 흐름을 잇거나 오늘의 좌표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록은 오늘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한국의 석학 김용운박사가 한국의 전통수학을 연구하면서'우리는 피타고라스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피타고라스정리를 알아내고 구사했으며 그 어려운 방정식을, 100차방적식까지도 산대라는 작은 막대기로 간단히 풀어냈습니다.'하며 조상들이 장기판 같은 산판위에 산대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100차 방정식을 푸는 과정을 시연하였다. 참으로 절묘한 수학이었다. 그 끝에 김교수는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의 전통수학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그 자랑스러웠던 한국의 수학이 우리에게 전수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학적 연구의 과정, 수학적 성과의 기록 등이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남았더라면 한민족은 그 뛰어난 두뇌로 세계 과학사의 중심에 있었을 것입니다."

도쿄(東京) 외곽에 간다(神田)서점가가 있다. 60~70년대 서울 청계천의 고서점가와 같은 곳이다. 길 양편에 온통 고서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 길이가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고 점포가 몇 개나 되는지 수효를 알 수가 없다. 이곳에 역사가 다 있다 한다. 일본역사가 다 있고 세계사가 다 있다 한다. 일본문학이 다 있고 세계문학이 다 있으며 일본의 학문과 세계의 학문이 다 있다 한다. 찾으려는 것 모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간인들이 모여서 만든 세계의 기록보관소인 셈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취재하던 나는 이곳에서 당시의 사진들은 물론 각종 기록문서, 위안권, 군표, 심지어는 당시의 일본군인들이 쓰던 콘돔사진같은 숨겨진 자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기록물들로 나는 묻혀있는 역사를 일으켜 세우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었다.

기록이라 해서 국사편찬위원회나 국가기록원등에 있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것만은 아니다. 공직자나 학자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기자나 PD가 만드는 영상기록만도 아니다. 나의 일기, 내 초등학교의 성적표, 내 남편의 첫 월급봉투 그런 것도 소중한 이 나라의 기록이다.

2년반 전에 큰아들에게서 인형같이 예쁘고 귀여운 손녀가 태어났다. 또 넉달 전에는 작은 아들에게서 아주 예쁘고 잘 생긴 손자가 태어났다. 누가 나를 고슴도치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내 손녀와 손자는 예쁘고 귀엽고 잘 생겼다. 지난 봄날 손자의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이 녀석은 장차 이 할아버지가 저를 몹시 사랑했고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손녀 태어날 때와 똑같은 기록을 만들었다. 화선지 위에 붓으로 이렇게 썼다.


<이준수의 출생 및 작명기록>
- 성; 李  /  본관; 경기도 ㅇㅇ /  가계; ㅇㅇ 이씨 41대 손
- 아버지; 이ㅇㅇ/  어머니; 김(안동 김씨)ㅇㅇ
- 할아버지; 이동석 /  할머니; 김(경주 김씨) ㅇㅇ
- 출생일; 2016.3. 29. /  출생지; ㅇㅇ 의료원 
- 출생시 부모주소; 경기도 광명시...
- 작명과정; 큰 할아버님께서 족보의 기록에 근거하여.....


그렇게 쓰고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출생 직후의 사진 몇장을 얹어 며느리한테 주었다. '주민등록은 나라에서 해주는 공식적인 신원증명이지만 이 기록은 할아버지가 써놓는 원초적인 신원기록이니 대를 물려 간직할 문서다. 잘 보관해 두었다가 이 녀석 장가보낼 때 쥐어 줘라'는 당부를 함께 했다. 훗날 손자가 자라서 이 기록을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정보를 소상히 알게 됨은 물론이거니와,
  아, 나는 그저 맥없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문의 혈맥을 잇는 필연적 존재구나-.
  아,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께서는 전통과 역사성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구나-.
  아, 우리 할아버님께서는 이런 기록을 남겨주실 만큼 나를 아끼고 사랑하셨구나-.
  아, 우리 할아버님께서는 이런 글씨를 쓰셨고 당시에는 한지에 붓글씨를 쓰는 문화가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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