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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 | 연재 [홍PD가 만난 청년]
오감이 만족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
작곡가 강성오
(2019-01-15 12:38:33)

흔히 우리 지역을 "국악의 고장"이라고 일컫는데, 거기에는 적지 않은 수의 국악인들과 국악 애호가, 국악 관련 학교와 단체들, 그리고 다양한 국악 관련 연주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악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연주자와 소리꾼도 필요하겠으나,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국악 작곡가의 등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악 작곡가 중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작곡가 강성오(38)를 만나서 그의 국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였나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던 누나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관찰하고 독학으로 피아노를 따라 치고는 할 정도로 음악은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락과 헤비메탈,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재즈가 너무 좋았고, 재즈를 하기 위해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는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울예대는 4년제 대학 이후에 치루는 전문대 전형이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께서도 혹시 모르니 4년제 대학에 원서는 넣어보라고 재촉하게 되었고 결국 원광대 국악과에 원서를 넣게 되었는데, 운명이었는지 서울예대는 떨어지고 원광대 국악과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왜 국악과를 지원하게 되었나요?
"고 2때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사물놀이의 주축인 타악은 이미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태평소를 불었습니다. 김덕수 사물놀이의 CD를 듣고 독학으로 태평소를 불었는데, 신기하게도 소리가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물놀이가 재미도 있었고, 동아리 친구들과 나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우석대에서 학생경연대회가 있었는데, 저희 원광고 동아리가 예술고 전공자들을 제치고 대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 함께 활동하던 친구가 원광대 국악과에 원서를 쓴다기에 그냥 따라서 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태평소를 좋아했었는데, 국악 작곡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국악과에 입학 하고 보니, 악기 이외에 작곡 전공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곡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당시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김선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도 그 때 대학에서 첫 강의를 맡으시게 되었고, 덕분에 제가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첫 제자인 만큼 열의를 갖고 지도를 해주셨는데, 그때부터 국악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으며,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가 있던가요?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화성'을 중시하는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음악은 '선율'을 중시합니다. 소리꾼의 목소리나 악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데, 이러한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우리의 전통 악기는 악기별로 매력이 강해서 선율이 따로 가더라도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작곡을 할 때, 악기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는 합니다."


그럼 국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고유의 음색입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만의 음색. 선율의 흐름을 선법이라고 하는데, 이게 각 나라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아리랑의 '아리아리랑'만 불러 봐도 어디에도 없는 선율이 흘러가고 있으며,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선율은 우리 민족, 우리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국악 작곡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던 강성오는 2016년 '다음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였다. 뜻을 같이하는 지역의 국악인들과 함께 민간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게 되었는데, 실내악 수준이 아닌 정식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40여 명의 단원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국악 관현악단을 창단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작곡을 한다는 것은 혼자서 상상을 하면서 곡을 쓰는 것입니다. 악보가 완성된 이후에 악단이 연주를 하고 관객들이 그 음악을 듣고 반응을 하게 되면, 그제야 좋던 싫던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문득 관객들에게 공개되기 이전에 실제 연주를 해볼 수만 있다면 보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들 중에 공감하시는 분들과 함께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관현악단을 운영해보니 어떤가요?
"현실적으로 많은 작품이 짧은 기간 연습 후에 무대에서 공연되고는 합니다. 여기에는 악보가 완성되고 공연에 이르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 예로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도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였습니다. 작곡하는 것과 실제로 연주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헨델도 교회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처음 연주해보고 수정했다고 합니다. 저 또한 완성된 악보를 직접 지휘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기회가 생김으로써 충분히 분석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단원들 또한 오랜 연습과 곡 분석을 통해서 자기개발이 가능해졌고 연주력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작곡가와 연주자간의 시너지 효과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시간이 충분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이 국악의 발전을 이루는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악 작곡가로 바라본 전라북도 국악계는 어떤가요?
"우리 지역은 훌륭한 국악적 자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인력이나 문화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협력이 더 잘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정말로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악 하는 사람들 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상생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음악을 하기 이전에 서예를 꽤 오랜 시간 배웠습니다. 동양화에도 애정이 있습니다. 음악과 미술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영상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를 통해서 소리뿐 아니라 오감이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해보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현재 강성오는 작곡은 물론 다음국악관현악단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 학생들을 지도하는 역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젊은 작곡가로 성장하고 있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국악의 고장인 전라북도가 연주자뿐 아니라 작곡가와 연출가, 기획자,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국악 인재들이 더욱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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