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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 | 인터뷰 [인터뷰]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 소소하고 따뜻한 위로 속에서
최진영 감독
김하람(2022-06-10 11:55:03)




지난해 전북 영화계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을 시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 대구여성영화제, 전북여성인권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에 초청받았으며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재능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지난 4월 개봉 이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최진영 감독을 전북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태어나길 잘했어>는 전주시, 전주영상위원회와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2019년 12월 추운 겨울날 촬영을 마친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코로나가 터졌다. 하루라도 빨리 털어버리고 싶었다는 것이 감독의 심정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밀려서 불안하기도 했는데, 막상 개봉하니 너무 좋고 특히 관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좋았어요. 사실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관객 수가 천천히 가고 있긴 한데, 또 그게 우리 영화 리듬 같아서 재밌기도 해요.”


제목에서부터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태어나길 잘했어>는 감독이 꾼 꿈을 모티브로 한다. 벼락을 맞고 자아가 분리되어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내용의 꿈. 이를 바탕으로 독특한 소재의 영화가 탄생하게 됐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벼락을 맞고 쓰러진 춘희. 그의 앞에 갑자기 ‘어린 춘희’가 나타난다. 믿기지 않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어린 춘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어린 춘희를 마주하며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게 된다. 갑작스레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춘희는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제대로 된 방 한 칸 얻지 못해 좁은 다락방이 춘희의 방이 됐다. 늘 눈치를 봐야 한데다 땀이 많은 다한증 체질은 춘희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그래도 씩씩하고 명랑하게 자란 어른 춘희는 생활력도 강하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도 생겼다. 그렇지만 늘 춘희의 마음 한켠에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주황’을 밀어내고 깊은 생각에 잠긴 춘희. 어른 춘희는 이윽고 과거로 가 어린 춘희를 꼭 안아준다.


“춘희는 그 시기를 정말 생각하기 싫어하는데 어린 춘희로 인해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게 되는 거죠. 저는 생각하기 싫었던 공포의 시기를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주기 위해서는 저는 기본적으로 저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자신을 아끼는 것이 바탕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도 그러지 못해서 아마 그런 꿈을 꿨던 것 같아요. 스스로를 덜 미워하면서 삶을 지속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것이에요”


함께 만드는 영화
99% 가까이 전주에서 촬영한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에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해 보는 재미가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촬영지인 한벽굴이 나올 때면 반가운 마음도 든다. 제작비 때문에 동선을 짧게 해 대부분 구도심 근처에서 촬영한 웃픈(?) 사연이 있지만, 친숙한 배경에 실제로 춘희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제작비가 많이 없어서 소수의 인원으로만 했는데, 춘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다 보니 한 공간에서 북적북적 부대끼면서 작업을 했어요. 물론 미묘한 갈등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팀워크가 너무 좋았어요. 사실 저희 영화 팀워크가 너무 좋다고 소문이 나서 뿌듯해요.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좋은 동료들이랑 같이해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해요.”





촬영을 하며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럴까. 대화를 나눌 때는 꼭 예의를 지켰다. 감독의 의견이 절대적인 현장도 있지만, 최진영 감독은 현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빠르게 흡수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했다.


“<태어나기 잘했어>로 인해서 다시 장편 영화 제작 지원 같은 것들이 활성화되면서 스태프들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다행이에요. 여기에 만족하기보다 앞으로 환경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영화 제작비가 워낙 적었기 때문에 충분히 인건비를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에요. 지금 독립영화로 수익을 내는 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발판 삼아서 다들 좀 더 도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주에서 활동하는 영화 창작자들 대부분이 강의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다른 일을 겸업하고 있다. 영화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은 영화가 제작되어야 일자리를 얻게 된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이기도 한 최 감독 역시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더욱이 대부분의 스태프를 지역의 영화인들로 구성했다. 그는 전주의 영화 지원 프로그램은 다른 지역보다 단단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상영하고 배급하는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제작 지원 프로그램은 정말 많아요.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다 지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리고 아무리 독립영화고 단편영화라고 해서 공적 지원만 바라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끔 사회에 더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 예술 영화라는 게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 돈을 받아서 만드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제작 지원에 기업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시에서 영화제도 하고 제작 지원도 많이 해주지만, 지역 기업들은 독립 영화에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만의 매력, 집단적 영화보기

2008년 영화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로 데뷔한 최 감독. 그의 전공은 사회학이었지만 영화제작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감독이 될 수 있었다. 그 뒤로 매년 꾸준히 단•장편 영화를 발표했다.


“지역에서는 전공을 하지 않아도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전공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인프라도 잘 모르고, 그동안 관계 맺어온 사람들이 영화인들이 아니어서 어렵기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돌파구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최 감독 역시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어떤 상상이든 실현할 수 있는 영화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일 것이다. 여러 상상과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림이 될 수도, 글이 될 수도, 몸짓이나 음악이 될 수도 있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복합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 감독이 말하는 영화의 매력이란 무엇보다도 ‘집단적 영화 체험’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영화를 보는 사람 간의 감정 공유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경험된다. 그 ‘맛’을 알기에 무엇보다 이번 영화의 개봉을 기다려왔다. 개봉 이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최 감독은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저는 전주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서 그냥 지역에서 일어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다루고 싶어요. 지역 영화의 활성화 이런 포부는 아니지만, 제가 정주하고 있는 도시의 이야기들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당분간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글 김하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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