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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 | 인터뷰 [익산 청년식당 대표 안윤숙]
청소년들의 가능성 발굴하는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
글 문신 편집위원•사진 신동하(2022-09-14 11:26:36)

인터뷰 | 익산 청년식당 대표 안윤숙

청소년들의 가능성 발굴하는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



글 문신 편집위원•시인








스크래치 그림이라는 게 있다. 까만 표면을 긁어 색채를 표현하는 미술 영역이다. 누군가는 스크래치 그림을 두고 긁지 않은 예술 복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긁어보기 전에는 까만 표면 아래 어떤 색이 숨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다. 어둠이 내려앉은 봄날의 정원처럼, 까만 표면 아래에는 빨주노초파남보 다채로운 색이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다채로운 색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발견하는 게 스크래치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다. 선의 굵기에 따라 표현될 수 있는 미적 형태가 다르고, 선이 뻗어가는 방향에 따라 드러나는 색채가 무궁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스크래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미지의 색채를 찬란하게 발굴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도, 비유적인 의미에서, 스크래치 그림과 유사한 일이 아닐까? 특히 청소년들의 성장 프로세스가 그런 것 같다. 다양한 전문 연구와 경험적 사실에서 밝혀졌듯, 청소년들의 자기표현 방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표현에 기대어 말하자면, 청소년들이 세상을 향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겉바속촉의 전형이다. 표면적으로는 금방 부서질 듯 툴툴대지만, 그 내면에는 자기 삶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 같은 게 숨어 있다. 그러한 내면의 세계를 우리는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도록 사회화하는 과정은 꽁꽁 감추고 있는 가능성을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스스로 꽃피우게 하는 활동일 것이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발굴해가는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가 청년식당 안윤숙 대표의 일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청년식당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라는 문구였다. 이 문구는 안윤숙 대표가 청소년에게 보내는 당부이자 청소년을 품어야 할 우리 사회의 다짐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청소년들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재촉한다고 해서 아픔은 치유되는 게 아니다. “격정의 시기만 지나면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으니 기다려야 되는구나, 하고 알았어요.”라고 그가 한 언론 인터뷰의 말은 아픔과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학교 밖 비행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재범하지 않을까? 시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이런 연구를 하다가, 아이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재범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특히 가정이 없는 아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재범률이 높았어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해왔죠.”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설 수 있는 것, 바로 자립의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일단 아이들을 잘 먹이자고 생각했어요.” 



안윤숙 대표의 관심은 비행을 저지른 학교 밖 청소년의 건강한 사회 복귀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경계의 안쪽에 편입되지 못한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불안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일탈과 비행에 노출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스스로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됨으로써 불안한 감정이나 불편으로부터 무디어지고 싶은 것이다. 안윤숙 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자기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건강하지 못했던 성장 환경이 아이들의 마음에 새겨놓은 일그러진 성장판 때문이었다. 성장판은 스크래치 그림의 까만 표면처럼 아이들의 내면에서 반짝이고 싶은 다채로운 희망을 가두는 듯했다. 안윤숙 대표가 학교 밖 아이들을 시선의 안쪽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나 외부, 바깥을 맴돌던 아이들에게 안쪽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럴 때 아이들도 자기 안쪽에 채색된 밝은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 설 수 있는 것, 바로 자립의 가능성입니다. 이런저런 사건으로 교정시설에 입소했던 아이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당장 먹고 잘 곳이 없어요.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 생존 자체가 불안해지다 보니 아이들이 다시 범죄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이들을 잘 먹이자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해서 학교 밖 청소년들의 경제적 자립 모델인 청년식당이 2020년 6월에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2호점까지 운영 중이다. 청년식당은 그냥 밥을 먹는 장소가 아니다. 안윤숙 대표가 꿈꾸는 청년식당은 밥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 그는 그동안 까맣게 색칠된 세상에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반짝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서로를 알아봐요. 그래서 잘 뭉치고, 그러면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죠.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밀어낸 것처럼, 아이들도 우리 사회가 자기들 세계 안쪽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예요. 청년식당은 아이들이 자기 세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 우리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곳입니다.”



“독립해서 나가지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만납니다. 

보람이라고 한다면 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재범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거죠.”



“잘 먹고! 잘 놀자! 우리들의 세상에서”


안윤숙 대표와 함께하는 아이들은 청년식당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 다른 세계, 다른 언어, 다른 관점을 배운다. 일자리를 마련해줘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던 아이들도 청년식당에서는 한 달 넘게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아이들은 일탈적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와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일자리에 비해 느슨하게 운영되는 편이서 그렇기도 하지만, 청년식당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중이다. 청년의 성장이 우리 사회의 성숙 지표를 측정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청년식당은 또한 우리 사회의 성숙을 견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집(블루하우스)도 마련했고,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계속해서 블루하우스에 머무는 건 아니고, 일 년 정도 지나면 독립해서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독립해서 나가지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만납니다. 보람이라고 한다면 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이 재범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거죠.”


안윤숙 대표가 구상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를 활용해 시설 퇴소 청소년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기회를 찾아갈 수 있는 곳이자 뭔가를 꿈꿀 수 있는 그런 곳. 그런 까닭에 교정시설을 퇴소한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경제 자립의 대안적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학교 밖 아이들이 ‘밖’이라는 소외감을 떨쳐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수년 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아이들이 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일상과 아이들의 내면에서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믿음의 시간이 흔들리지 않을 때 아이들의 내면은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청년식당이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인 청소년자립학교가 청년식당과 블루하우스를 통합한 전체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죠. 앞으로는 학교 밖 청소년이나 시설에서 나온 아이들이 자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정 시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청년식당은 단순히 학교 밖 아이들의 구심점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사회복지와 청소년 교육 그리고 자립을 위한 대안 경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동체가 청년식당이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면서 ‘집밥’을 콘셉트로 삼았던 청년식당 1호점은 도시락 배달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여러 곳에서 후원해준 덕분에 지역 아동, 청소년, 취약계층에 무료 도시락을 배달한다. 안윤숙 대표는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청년식당을 시작하면서 ‘함께 밥을 먹는 우리가 가족이고 식구다’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청년식당의 도시락 배달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지역사회와 함께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따뜻한 공동체로 확산하고 있다. 청년식당은 학교 밖 아이들에게는 힘든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으로, 지역사회에는 안팎의 경계를 지운 새로운 생활공동체의 모델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의 삶을 까맣게 덧칠해놓은 요소들이 많다.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정책은 물론 비행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들을 스크래치 그림처럼 하나씩 긁어내고, 그 안에서 밝고 맑고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안윤숙 대표의 일이 아닐까? 청년식당 벽에는 ‘잘 먹고! 잘 놀자! 우리들의 세상에서’라는 문장이 단단하게 새겨져 있다. ‘우리들의 세상’이 학교 밖 청소년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밖’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낸 우리 모두의 세상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신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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