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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6 | 인터뷰 [문화와사람]
익산문화 세우기, ‘열혈 역사학도’가 있었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김삼룡 소장
편집부(2003-07-03 12:20:29)
매미소리가 따가운 8월의 초순, 원광대학교 내 일명 봉황각 주변 분수대는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분수대 옆을 가로질러 가정대학 건물로 들어서면 그곳 1층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20여년을 훌쩍 뛰어넘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의 백제문화를 논하자면, 이 마백연구소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마백연구소는 대학 부설 연구기관의 모범이 될만큼 연구원들의 활동과 연구실적이 괄목할만 하다. 그 때문인지 1973년 마백연구소의 탄생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구소의 대들보 역할을 맡아온 김삼룡 소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특히 미륵불과 미륵신앙을 전공한 김 소장에게는 익산 백제문화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미륵사지가 세계적 가람임을 밝혀냈던 첫 성과에서부터 백제 무왕이 이곳 익산으로 수도를 옮겨 나라를 경영했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근원을 찾기 위해 학술회의와 논문 발표 등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보편화되어 있는 ‘익산문화권’이라는 명칭도 마백연구소에서 규정지어 놓은 것이죠.”

익산문화권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른 만큼 학계에서 온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골 깊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게 사실. 

“백제 무황이 즉위한 40년의 기간 가운데 후반 20년동안을 이곳 익산에서 경영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충분하지만 역사적인 기정사실로 자격을 얻은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단지 역사서에 기록돼 있지 않다 뿐이지, 익산이 백제의 옛 도읍지였음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7년동안 연구의 핵심이 되었던 것도 이같은 ‘천도’입증을 통한 익산의 역사적 의미를 규정해 내는데 있다. 올 하반기에는 쌍릉이 ‘무왕릉’이었음을 밝히는 학술회의를 기획하고 있다. 

“마백연구소는 넓게 보면, 국가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뿌리를 바로 찾아 오늘의 현실을 반추해 보는 일,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 소장은 1986년 원광대 제5대 총장에 취임한바 있으며, 미륵불과 마한백제문화에 대한 숱한 저서를 남길 만큼 ‘열혈 역사학도’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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