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2.4 | 인터뷰
[아름다운 당신] 설치미술가 고보연
관리자(2012-04-04 17:53:02)
누구에겐가 꿈을 주는 일, 그 일을 어찌 버리겠는가 정 훈 전주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봄이 오는 소리에 장단을 맞출 줄 아는 사람, 봄 냄새를 따라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는 그런 작가가 있다. 2003년 제11회 전북청년미술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전북화단의‘아름다운’작가로 활동하는 고보연씨(40세). 군산이 생활터전이라 좀처럼 시간약속을 잡기 어려웠지만 마침 전북대 드로잉수업에 출강하고 있어 강의가 끝나는 틈을 이용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만난 그녀의 첫인상은‘우아한 미술가’라기보다는‘평범한 누나뻘의 아줌마’같았다. 참 무식하게 고집스런 사람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독일 유학시절에 설치미술로 전향한 그녀는 상처받은 현대인, 여성, 엄마, 작가의 많은 주파수를 갖고 산다. 학부생 때는 그냥 미술이 좋아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걸었던 길이었는데, 도제식 미술공부를 하다 보니 작품‘주제’와‘깊이’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바로 독일 유학.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유학을 떠나기 전 3˜4년 동안 언어와 돈, 정보 등 유학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꼼꼼히 준비했다. 독일어 공부를 위해 충남대 괴테하우스에서 진행되는 강의를 일주일에 한번씩 들었고, 다른 사람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만큼‘무식하게’포트폴리오를 들고 무작정 독일에 있는 미술학교를 찾아다녔다. 독일 미술대학 주소 하나만 들고 서너 학교를 무작정 찾아다니던 중‘운 좋게도’드레스덴 미술대학엘 입학했고, 그곳에서 설치미술을 전공할수 있었다. 그녀에게 5년이라는 유학생활은 도전과 시련이었지만“나를 돌아볼 수 있는시기였고, 작품에 대한 고민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유학시절, 초창기 작품은 별 게 없었다. 먹고남은 티백이나 쌀통(종이로 만들어진 과자상자 크기의 독일식 포장지)을 가지고메주나 곶감 같이 매달려 있는 한국적소재를 소품형태로 작업했던 것이 고작.“나중에 친구들이‘헌 티백함’을 학교에 만들어 줬어요. 저는 오후 무렵에 그것들을 수거해서 잘 말리는 게 하루일과가 되어 버렸죠. 친구들 집에도 먹고 남은‘티백함’이 있을 정도였어요.”하지만 처음부터 그녀의‘설치작품’이관심을 받은 건 아니었다. 메주나 곶감모양을 학교 작업실에 걸어두었던 어느날, 미술대학의 다른 전공 조교가 지나가다뱉은,“ 저렇게작아서작품이될수있을까?”라는 말 한마디에‘삘’이 왔고,‘오기’도 생겼다.“작품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티백으로 만든 제 작품은 완전 정성이에요.하나하나 바느질을 통해 이어붙인 거 보세요. 이건 동양인이니까, 제가 한국 여자니까 가능했던 거예요. 웃기지만 바느질 솜씨만 늘었어요.”지금도 미술이 어렵단다. 주변에 있는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시작한 것은 기존에 작품 활동 하는 작가들에게 당연시되었던‘미술재료의 틀’을 깨는 것과 동시에 작가 스스로‘갇혀 있었던 틀’을 깨부수는 계기가 된 것이다.“사람은 물도 먹고, 밥도 먹잖아요. 물은 티백으로 남고, 밥은 쌀통으로 남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매일매일 먹고 남은 소재를 가지고 일상을 표현한 거예요. 마치 일기처럼.” 처음엔 작가도 헷갈렸다. 이게 일상인지 작품인지. 부지런떨어 남 주고, 가진 것을 나누는 게 체질 고보연은 참 부지런한 작가다. 강의에, 엄마 일에, 작품에. 할 일이 태산이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미술치료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교육과 재능기부를 한꺼번에 다 실천하는 뚝심을 유지하기 때문이다.“만삭의 몸으로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일이 싫었어요. 제가 느끼고 있는 정신적인 불안함을 다시 느끼는 것 같기도하고. 하지만 그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죠. 이곳에서 저는‘미술활동’을 하는것이지‘미술치료사’가 아닙니다.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아프고 싶지는 않았을거예요.”그녀가 2004년 컨테이너 미술학교를시작으로 지금까지 애써 공을 들이는 것은 정신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한치유작업이다. 2006년부터는 국가사업을 군산에서 할 수 있도록, 문화기획자이광준씨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정신장애 소수자를 위해 군산정신보건센터 예술요법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신나고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지금도 정신보건센터에서 일주일에한 번씩‘미술을 통한, 치유를 위한’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2009년부터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전시를 시작했다.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열린‘꼼지락 꼼지락展’이 바로 그것.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작가는‘실력’있는 정신장애자를 운운하지만 사실은‘남의 상처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용기가 없어서’그런 것일 게다. 이게 다 작가의 모티브와맞닿아 있다.“처음엔 전시를 할 거라는 건 꿈도 꾸지 못했어요. 이들과 함께 놀다 보니까‘실력 있는’사람들이 눈에 띄어 마음을딱 먹게 되었어요. 2010년부터 군산 중고등학생들로 이뤄진‘벽화환경그리미’라는 벽화봉사동아리 학생들과 뜻을 같이 하는 지역작가 몇 분이 참여하고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그녀에게 봉사활동이란 차마 버리지못하고, 그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런 것이 아닐까. 작가 스스로도 쉬고 싶고, ‘치유’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내는 마음이 있어 나누는 삶을사는 이유다.“아마 2회(2010년) 전시를 할 때였을거예요. 젊어서 자수를 했던 경험이 있는 60대 할머니께서 전시를 위해 서울로 재료를 구하러 다녀오신 것이었어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그녀의 문화예술교육은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2004년 군산 신시도초등학생 미술교육을 통해 전북도립미술관 개관기념 전시, 2007년 정신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기획‘미술로 즐기는 전통놀이’,2008년 정신장애인 문화예술교육 기획‘푸른시절’, 2010년 정신장애인 예술교육‘꼼지락 꼼지락展’등 많다. 치유의 흔적과 함께 사라지는 작품의 비밀 벌써 미술인생 30여년이란다. 설치작품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곧 사라진다. 전시는 작가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쉬었다 가라는 손짓을 한다. 작가 고보연은 작품을 통해 우리네 삶과 그 삶에서 꿈틀거리는 아픔을 치유하는 작가다. 삶의 체험과 연상으로부터 작업의 모티브를 찾아 자기성찰과 치유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지만 단순히 미학적 측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자연, 인간과 환경을 위한 작품세계를 꿈꾸고 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부터 작품 재료의 폭이 넓어졌다. 고추씨, 볍씨, 포도씨 등의‘씨앗’을 가지고 작업을 한단다. 재료는 작가와 많이 닮았다. “한때는 천연염색 기저귀천 같은 친환경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했었죠. 작품을 통해 정신적 아픔을 표현하고, 또 자기 안에 아픈 무언가가 제 작품을 보고명상을 통해 다 치유할 수 있도록 구상을 한 거예요.”3~4년 전부터 군산에 정신장애인, 여성, 다문화가족, 어린이, 노약자 같은 ‘소수자’를 위한 문화센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준비 중이었는데, 희소식이 날아왔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건물 무상임대를 받은 것. 그래서 지금 한창 군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장미동 조선은행 부근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까하다가 결국 1층은 전시실로, 2층은 공동창작 스튜디오로 사용하기로 했단다. 현재는 유기종, 이상훈, 이송선, 차건우 등의 작가들이 함께 하기로 했는데, 그들과 공감대가 더 형성되면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당찬 계획도 건넨다. 더군다나 올해는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선정되어‘월명의 숨쉬는 인물’이라는 주제로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군산 해신동주민센터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고은 시인의『만인보』, 조정래의『아리랑』, 채만식의『탁류』를 중심으로 신문에 나오는 군산 근대 인물을 탐구하고 그려보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넘어‘좋은 작품’은 마을 담장이나 벽에벽화로 기록한다는 뜻 깊은 내용을 갖고있어 작가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