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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5 | 인터뷰 [꿈꾸는 청춘]
“일상이 없다면 쓸 이야기도 없겠죠”
소설 쓰는 공무원 김소윤씨
임주아 기자(2013-05-02 16:01:50)

재직 공무원, 소설을 내다
소설을 쓰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보다 더 치열해진 일상이다는 김소윤씨(33). 그의 첫 책 출간 소식은 지역에서도 중앙에서도 화제였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소설가로 사는 그를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여러 매체에 인터뷰도 하고, 주간지 고정필자도 했다. 2009년 공무원 문예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한 해 뒤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걸음마를 뗀 그는 그해 한겨레21에서 주관한 ‘손바닥문학상’에서 또 한번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공모한 서바이벌 문학상 ‘나는 작가다’에 최종합격해 <코카브-시간의 문이 열립니다>를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수년 간 그의 첫 책을 기다려왔던 고교 친구들은 고진감래라며 등을 두드렸고, 글 쓰는 딸을 자랑스러워했던 부모님은 장하다며 기뻐했다. 직장 동료들은 작은 파티를 열며 자기 일처럼 축하했고 뜸했던 대학동기들과는 수년 만에 연락이 닿기도 했다.

어느 모범생의 소설가 되기
아이러니하게도 문학도였던 대학 때는 그리 열심히 쓰지 않았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며 소설을 외치던 그였지만 2학년을 마치고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면서 공부에만 매달렸다. “물론 좋아서 한 공부였지만 학점 잘 받아서 장학금 타야지 하는 마음이 좀더 컸어요. 한글보다 한자를 더 많이 보고 소설보다 시조를 더 많이 배운때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해요. 그때 소설 더 열심히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졸업 후 방송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찍 마음을 접었다. 먼저 방송국에 취직한 친구가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걸 보고 더 그랬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야 마음 놓고 소설을 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인 어머니는 일찍이 “일하면서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었지만 손사래 쳤다는 그는 서서히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졸업 후 반년 동안 방황하다 곧장 노량진으로 가 짐을 풀었다. 비슷비슷한 각오와 목표로 이곳에 온 사람들과 자신을 생각하면 서글펐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는 “발이 땅에 잘 닿지 않던” 20대는 안개와 같았다고 했다. 뜬구름 잡고 붕붕 날 생각만 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한계가 온 것이다. 바깥세계에 섞일 수 없을 것 같아 조급했는데 막상 사회 궤도에 들어오니 이젠 ‘내가 누구인가’ 싶었단다. 하루종일 동전을 세고 등본떼고 나면 허무한 마음만 들었고, 민원인에게 폭언을 듣거나 무시를 당하는 날이면 화장실에서 몰래 울기 일쑤였다. 일년 만에 합격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였지만 직장생활은 시험 준비할 때 만큼이나 녹록치 않았다. 직장에서 평생 함께할 남편을 만난 것은 그중 행운이었다. 결혼하면 좀더 소설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첫 아이를 낳자 몸은 더 바빠졌다. 일년 동안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다보니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마음 편히 아이를 돌보면서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그는 승진을 코앞에 두고 3년 휴직계를 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지만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휴직계를 내던 날, 정든 동료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어쨌거나 시작한 일이고 선택한 일. 부담과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그는 철저히 육아와 소설 집필에 맞춰 스케줄을 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집 앞 카페에 가서 소설을 쓰고, 어린이집 버스가 올 시간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와서 살림을 했다. “소설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딱 두 시간밖에 안 남더라고요. 서너 달에 한편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많아 보여도 늘 부족했죠. 여름 겨울엔 공모전, 봄 가을엔 신춘문예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냈어요. 생각해보면 사계절 내내 ‘시즌’에 돌입했던 것 같아요.” 지금 쓰는 글들이 다 휴지통으로 가게 될 줄 알면서도 밀고 나가던 때. 두려움을 일상으로 이겨 내던 때였다. 2010년 1월, 겨울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은 친정댁에 아이들을 맡기러 갔다가 그 자리에서 쓴 작품. “임계점 앞에서 포기할 때가 많았는데, 역시 끝까지 가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해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서 「벌레」로 당선되자 더 자신감이 붙었다. 소설은 그가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시절 보고 겪은 것에 상상을 더한 이야기였다. 당시 “당시 고시원 벌레들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은 참 고마운 존재가 됐네요.”

꿈과 현실, 발을 맞추어 가다
휴직기간을 1년 남기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그는 전주시의회 홍보실 주무관이 됐다. “처음, 동사무소에 있다가 시청 행정혁신과로 발령 받았는데 휴직할 당시엔 다시 동에서 민원 일을 봤어요. 그래서 지금 일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더 갈망했는지도 몰라요. 글 쓰는 일이지만 소설과는 다른 글이라 좋아요. 문장감도 잃지 않으면서 질리진 않으니까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직장도 꿈도, 마음도 잘 다스릴 줄 알게 된 그는 어느덧 9년차 공무원이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땐 하루 살고 먹고 하는 일은 무가치하다 생각했어요. 나는 더 원대한 일을 해야 해, 사람들은 날 몰라 하면서요.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됐죠. 결코 서로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냉대나 모른 척이 아니라 다 알지 않아도 아는 마음. 서로 마주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요. 골방에만 처박혀 글을 썼거나 결혼을 안하거나 아이 안 낳았다면 몰랐을 거예요. 사람들은 두 가지일이 서로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일상의 규칙성이 예술을 계속 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래서 제게 공직 일과 소설 쓰기는 완벽한 조화죠.”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처럼 나의 일부처럼 매일매일 글을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작을 노리고 산속에 들어가 쓰는 이야기 말고, 친구와 카페에서 커피 마신 소소한 일상이 소설 안에 스며드는 게 더 예술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말도 보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지금 이 두가지 일이 어긋나지 않고 잘 돼요.나중에 혹시 대작가가 된다면 또 모르겠죠. 그때 너무 힘들었어, 하고 엄살 부릴지도요(웃음). 하지만 어떤 순간이 와도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고 또 쓰고 있을 거라 믿어요.” 일흔 여든 살이 되어도 자신에게 쓸 이야기가 주어지는 일상의 삶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그는‘사소함’의 힘을 아는 이야기꾼이다. 인터뷰 내내 ‘쓰는 사람은 많아도 쓴 사람은 없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올랐다. 쓰는 사람만이 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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