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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 | 인터뷰 [꿈꾸는 청춘]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 싶어요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김예튼
관리자(2013-07-30 17:41:40)

도도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잘 웃고 잘 노는 김예튼씨(28)는 3년차 환경활동가다.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 하며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하는 보기 드문 청년이기도 하다. 자전거가 좋은 까닭은 가장 편해서이고, 독하게 돈을 모으는 이유는 어머니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어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가족의 오랜 습관처럼, 한없이 베풀며 욕심 없이 살아온 부모님의 일생처럼, 그의 꿈은 소박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가르치는 보람을 알 다
그의 일터는 전주 경원동에 위치한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이다. 새만금 갯벌 살리기부터 도심하천 전주천 자연하천 조성사업, 모악산 살리기에서 그린벨트 해제 반대운동,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등 늘 환경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환경운동연합은 전북 대표 환경단체. 이곳에서 근무하는 5명의 활동가와 2명의 자원봉사자는 전북의 환경지킴이다. 활동가이자 간사인 그는 어린이 환경체험프로그램 기획부터 월간 소식지의 ‘환경툰’ 그리기에서 회계업무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초등학생 ‘푸르미들’과 함께 가는 환경탐사.토요일마다 1~6학년들 50명과 함께 전북 각지로 떠난다. 활동하기 좋아하는 그에겐 딱이다. 일 년에 스무 번 전북 소규모 학교로 찾아가는 환경교육에선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3년째 진행하고 있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다. 학교와 학생이 다르니 분위기도 다르다. 재생가능에너지, 태양열조리기, 태양광 자동차 등 재미있는 환경 소품을 만들어 놀기도 하고 ‘환경마임극’을 열기도 하며, PPT자료를 만들어 강의를 하기도 한다. “기획하고 교육하는 일이 가장 재미있어요. 특히 아이들이 제 수업을 잘 이해하고 따라올 때 가장 보람차죠.” 그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사무처장은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정갈하거나 정리되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예튼씨는 안내판 같은 사소한 것을 만들어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아는, 꼼꼼하고 감각 있는 활동가죠.”

당연하고 당연한 일
대학생활은 주로 ‘여행’과 ‘운동’으로 보냈다. 지리산에만 네 번을 다녀올 정도로 놀기 바빴다는 그는 무전여행하다시피 일대를 누볐고, 노고단에선 우연히 만난 환경운동가들과 케이블카 건립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다. 대학 4년 내내 농촌봉사활동을 다니고, 사비를 털어 국토대장정에 참가할 만큼 열정이 남다른 그였다. 전북대학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는 공부는 ‘중타‘였지만 운동은 악바리처럼 했다. 3학년 때 농생대 회장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눈을 떴지만 등록금 동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대인 기피증이 생길 만큼 괴로웠다. 그는 광우병 소고기 촛불집회로 전국이 뜨거운 시국, 서울에 올라가 밤낮도 잊고 반대피켓을 들었다.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실천하는 이는 별로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먹거리는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수 없는 일인데 복지와 취업만 외치는 타 학생회가 안타까웠죠.” 그는 학교에 돌아와 몇 달 동안 학생들의 서명을 받고 교내에서 삼보일배를 했다. 그를 탐탁지 않게 보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에게 이처럼 당연한 일은 없었다. 그 결과 광우병 소고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는 총장의 약속을 받아냈고, 이 일은 전북대 학생회 최초 사건이 됐다.

가족의 환경
“우연히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공고를 보게 됐어요. 동생이 새만금 관련 운동도 했었고, 대학교 때 학생회 경험이 라든지 사회 참여 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즐겁게 일하면서 보람되길 바랐어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를 권한 것은 다름 아닌 친오빠 김올튼(30)씨였다. 식품가공학 교사를 목표로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시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오빠의 문자메시지 한통이 그의 진로를 바꾸어놓았다. 아버지가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란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면서 여러모로 가족과 인연이 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 대신 철학수업 듣고, 공부 대신 여행 다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가족의 영향이 가장 컸다. 그들의 일상엔 늘 회의와 신문만들기가 있었다. 똑같이 회비를 거둬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는 ‘민주적인’ 생활을 배우기도 했다. 자동차는커녕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지 않았다. 늘 자전거를 탔고, 에어컨은 한번도 산 적이 없다. 교사였던 아버지 김인봉씨는 1989년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 당시 학교에서 쫓겨났다가 6년 후 복직했다. 2008년 3월 교장공모제를 거쳐 전북 장수군 장수중학교 교장으로 발탁됐으나 일제고사 때현장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그리고 징계기간, 아버지는 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장수에서 근무하시던 터라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했는지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삶은 더 잘 보였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지, 또 얼마나 따뜻한 분이었는지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훌륭한 아버지 곁에서 25년간 함께 지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 소중함으로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으려 해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사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나 무력하고 잔인한 일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그가 ‘예쁘고 튼튼하게’ 자라길 바랐던 마음, ‘예튼’이란 특별한 이름은 아버지가 남긴 선물이다.


사람 사는 세상만 드는 초록의 힘
그는 올 여름, 중국 내몽고 사막지역에 봉사를 다녀올 예정이었지만 중국 정부가 입국을 거부해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 “중국 내몽고자치주 히링꺼러멍에는 우리나라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달하는 아빠까치란 호수가 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막화가 심해 다말라버렸어요. 바람이 불면 모래바람이 일어나서 한국으로 황사가와요. 사막화 현상을 없애고 초지복원을 위해 사장작업을 할 예정이었는데, 안타까워요.” 사장작업이란 마른 호수 위에 죽은 나뭇가지를 울타리처럼 간격을 맞춰 꽂는 것이다. 그 나뭇가지에 모래가 얹어지고, 사막에 언덕이 생겨 날아가는 풀씨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작업. 처음으로 가는 해외 환경봉사라 각오도 남달랐던 그는 아쉽기만 하다. 그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활동가지만 환경과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일을 모두 ‘환경’이라 여긴다. 특히 얼마 전 국정원 사태에 전북지역 시민 단체들이 목소리를 낸 것은 ‘사람 사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애정과 사랑
앞으로 활동가로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지켜야할 일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점점많아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모르게 무언가를 지켜내는 일, 그것은 그가 살아온 시간과 닮아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 행동하는 것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고 생활에 잘 녹여낼 줄 아는 지혜는 그의 가치다. 환경이란 말이 주는 뻔한 구호보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말할 줄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접하는 주제라도 쉽게 이해하게 만드는 능력, 그것은 애정과 사랑이다. 그가 가진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은 스마트폰.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나는 세상, 사면 살수록 브랜드화 되는 세상이지만 내면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 말하는 그가 예쁘고 튼튼해보인다. 그의 자리 창틀에 놓인 분홍장화엔 다육 식물 ‘송엽국’이 심겨져 있다. 커다란 종이에 꽃그림과 ‘송엽국’이란 글씨가 또박또박하다. 장화에 식물 심은 것도 놀랄 일인데 그림에 이름까지 적어두다니. 어쩌면 환경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제 이름을 붙여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없이 소박하게 사는 것이 꿈인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손수건을 챙기고, 머그컵에 차를 내고, 선풍기 바람을 쐰다. 웬만해선 스위치를 잘 누르지 않는다는 사무실 전등이 인터뷰를 하느라 모처럼 켜졌지만 아무래도 그에겐 자연 빛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볕 뜨거운 그날 오후 전주한옥마을 경기전으로 갔다. 대숲 앞에 서서 그는 한참동안 초록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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