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4.10 | 인터뷰 [꿈꾸는 청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소리꾼
전북맹아학교 2학년 조동문
방재현 객원기자 (2014-10-08 15:45:35)

  인간은 사물과 현상의 본질이나 실체를 온전하게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모든 감각기관은 한정된 정보만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순간 부분을 보고 전체를 다 알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조동문 군(20)은 전주시 교동에 소재한 태고종 사찰인 무애사 내에 있는 요사채에 살고 있다. 일곱 달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미숙아망막증을 앓고 있었고 두 차례에 걸친 큰 수술에도 불구하고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주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쉴 새 없이 꿈을 꾸기 원하는 조동문 군을 만나보았다.

  

  소리를 통해 세상에 나가다

  동문 군은 어릴 적 보통 아이들보다 신체적으로 연약했고 장애를 가진 다른 아이들처럼 가족들의 각별한 보호가 필요했다. 열 살 무렵에는 혼자서 집 앞 도로에 나가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예상치 못한 곳에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를 들이받아 이마에 큰 상처를 남겼고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운 마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음악치료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음감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발단이 되어 장영순(63) 선생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11세에 입문한 후 5년가량 ‘적벽가’를 배웠고 산 공부를 따라 간 것을 인연으로 해서 송재영 전북 도립국악원 창극단장에게 사사 받으며 5년째 ‘심청가’를 배우고 있다. 소리를 하게 된지도 이제 어언 10년이 됐다.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주목을 받으며 입상하기도 여러 번, 다양한 무대에 설 수도 있었다. 동문 군은 이제 스무 살이 되었고 여러 가지 고민들이 싹트고 있다.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꿈을 키우다

  동문군은 현재 익산에 있는 전북맹아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주중에는 오전 8시에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집에 오면 오후 5시가 넘는다. 집에 오면 소리공부를 해야 하는데 요즘은 점자단말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중도 실명자들이 컴퓨터와 스마트 폰 사용법을 몰라 전화라도 하게 되면 자세히 알려주고 설명해줘야 한다. 동문군의 어머니는 우려 섞인 탄식을 늘어놓기도 한다. “전화를 받으면 절대로 마다하지 않아요. 서로 앞이 보이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도, 하루 종일 다 들어주고, 다 말해줘요. 날이면 날마다 일과가 바쁜데도 그것이 좋대요. 선생님들은 동문이가 소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고 목소리도 좋은데 조금만 더 열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연습을 꾸준히 했다면 일찌감치 명창이 됐을 거래요.” 

  동문 군이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한 때는 2007년경이다. 지금은 주위에서 제법 알아주는 실력자다. 이번 겨울방학을 기점으로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훗날에는 맹인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픈 열망도 있다. 현재는 페이스 북을 통해서 만난 관련 업계 종사자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판소리 용어들을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여 판소리 용어사전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해 보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2009년부터는 맹인을 위한 컴퓨터 사용법 강의를 MP3파일로 녹음해서 유포하기도 했다. 사실 강의와 강연은 동문군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얼마 전부터는 스피치 학원에 다니고 있기도 하다. 발음과 어조, 말하는 속도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프로그램과 여러 행사 등에서 사회를 보며 끼를 발산했었다. 이제는 인터넷 방송에 이르기까지 개인방송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훌륭한 소리꾼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하는 시기다. 고등부 경연에 나가 가장 큰 상을 받고 싶은 목표가 있다. 하지만 소리가 잘되지 않아 마음을 졸이곤 한다. ‘심청가’를 완창하려면 두 시간 반이 소요된다. 체력이 약해서인지 한 시간을 서 있어도 힘들고 벅찰 때가 있다. 노래를 오래 하면 목소리가 변하기도 한다. 감정을 표현해내는 몸짓이 시원하고 익숙하게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힘들어 지칠 때면 소리를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가을을 타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들로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동문 군은 젊고 매일 성장하고 있다. 소리는 외부세계로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아직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느낄 수 있는 삶 속의 깊은 회한이나 정한을 소화해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동문 군은 인생의 여러 스승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고 세상에 나가 이리저리 부대끼고 몸부림치며 격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싶다. 동문군의 노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

  동문 군은 페이스 북과 같은 SNS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한다. 세상은 뉴스와 사설, 칼럼 등의 정보를 통해서 안다. 그래도 불편함과 한계는 있다. “맹인들이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은 색깔입니다. 물론 색을 보는 사람마다 주관적인 느낌은 다르겠지요.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 사람들은 느낌들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판단은 저마다 다를 겁니다. 저는 상상을 합니다. 또 목소리를 듣고 마주한 사람을 상상하고 사물을 만져보고 형태를 판단합니다. 이 삶이 좋은 것 같기도 해요. 보게 된다면 또 다른 주관이 생기겠지요.”

  동문 군은 당당히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 몫과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이 천차만별로 다르듯이 스스로의 삶은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특별함이 있다. “장애를 딛고 이겨내며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장애를 어떻게 이겨요. 항상 있는 일인데. 항상 안 보이는데. 장애를 극복했다고 하기 보다는 장애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 끼를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물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분명히 있다. SNS를 통해 친구를 맺은 그룹 내에 시각장애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나는 그쪽과 대화하기 싫다.”며 퇴짜를 맞아야 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실망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오히려 기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뿐이지 대부분은 크게 담아두지 않는다. “이 옷을 입고 또 저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고민을 했었지요. 이제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면 제가 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될 수 있으면 웃으며 낙천적으로 살자는 다짐을 하게 되요.” 때때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는 친구들의 글을 보면 동문 군은 빼놓지 않고 댓글을 달아준다.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너는 왜 낙담 하느냐고, 힘을 내서 살면 된다고.” 그러면 대부분은 다시 힘을 내고 잘사는 것 같다. 하지만 동정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다.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아마도 모든 장애인들의 바람일거에요.”

  세상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무수히 많은 차별이 있다. 동문 군은 모든 차별들이 사라지는 날을 기다린다. “모든 사람들이 삶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어 마음아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잘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동문 군은 생각이 많아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꿈도 많다. 그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부푼 가슴으로 꿈을 꾸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