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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인터뷰 [문화저널]
근본적인 힘의 자리에 흔들림없이 서있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판화가 이철수와 시인 안도현이 나눈 새해 이야기
정도연(2015-05-21 14:36:06)


한 세기의 막바지가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고, 우리는 다시 무인년 새해를 맞는다. 새해는 늘 새로움에 대한 기대로 시작한다. 지난 한해가 우리 모두를 너무 힘들게 했던 까닭에 새해는 더욱 각별하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문화저널은 한국의 대표적인 판화가 이철수씨와 근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와 새 시집 『그리운 여우』를 내놓으면서 더욱 속이 깊어진 안도현 시인의 대담을 마련했다. 치열하게 시대를 헤쳐온 이들 작가는 시대를 앞서서 읽어 내고 있는 주목 받는 예술가들이다. 이 두사람은 또 지역에 둥지를 틀고 지역 문화를 위한 고민과 활동들을 거듭해 왔으며, 진정한 문화를 위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와 예술이 가야 할 방향, 그리고 문화가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 독자 여러분과 더불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안도현 형. 오랜만이에요. 이거 참, 형네 집에 와서 점심 얻어먹고 차나 한 잔 하고 그냥 가야 하는데 문화저널에서 내용 있는 이야기를 좀 하라는 쑥스러운 숙제를 내주었네요. 형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숙제를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우선 작년 한해 어떻게 보내셨는지, 한 해를 보낸 느낌 같은 거 먼저 듣고 싶네요.


이철수 작년에? 운저 면허 따느라고 한 겨울을 다 보냈지. 위에 아이가 올해 충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거든. 아이 때문에 우리 부부가 겨울 내내 거기에 매달렸는데 다행히 운전 면허 1차는 합격했지. 그거 참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거 같더라.전주에 요새 용택이형이랑은 잘 계시니?


안도현 요즘 자주 만나지요. 용택이 형도 올해 초에 새 시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고를 미리 한 번 봤는데 시가 다시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집의 표제작인 「그 여자네 집」이 라는 시도 참 좋았고요.


이철수 형이 건재하시다니 참 다행이구나. 너도 작년에 학교를 그만 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는데, 어때 할 만 하니? 작년에 낸 시집이 꽤 잘 나간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나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단다. 이렇게 네 시집을 보면서 난 그림이 될 만한 경ㅇ에도 이렇게 적어놓고, 시가 좋은 경우에도 적어 놓고  그러거든. 요즘에 내가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겠다 싶은 시가 별로 없어요. 네 시집에 있는 「퇴근길」이란 시는 안 그래도 그림으로 그려보려고 해.


안도현 아, 그래요? 시집이 잘 나간다기 보다 주위의 평가랄까 반응이 썩 나쁘지는 않아요. 처음에 『그리운 여우』내면서 나도 조금은 걱정을 했었거든요. 이번 시집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내 방식대로 쓴다라는 마음으로 쓴 시들이거든요. 그래서 무슨 도통한 사람처럼 그게 뭐냐는 평가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형은 너무 바쁘게 사는 것 아닌가요?


이철수 지금 연재하는 잡지가 여덟 갠가 그래. 거절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거절 못하는 것도 있잖아. 새해에 몇 개 줄여 놓고 시작하는데 중간쯤 가보면 다시 늘어나 있고…


안도현 형 그림의 기본적인 방향이 바뀌는 거는 아니지만 점점 단순함을 지향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꾸 자꾸 단순해져서 끝까지는 어떻게 갈까 이런 생각은 해 본적 없어요?


이철수 나는 내가 사는 내용을 스스로 내가 잘 아니까. 어차피 그 안에서 찾아지는 걸텐데 턱없는 자리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걱정은 한 번도 안해 봤어. 최근에 바람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게 있는데, 이거 태호형이 보면 이거 다 되간다고 그럴 거라고 농담하면서 웃은 적도 있지. 가끔 그런 느낌도 그림으로 쏟아 놓을 때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전체를 봐야 하는 거라도 생각하거든. 올해 많이 자유로워졌어, 사실은. 그러니까 아무런 제한도 스스로 하지 않아요. 작년까지는 어려운 거는 안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부터는 어려운 것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 남이 잘 못 알아듣는 이야기라도…


안도현 그 어려운 이야기라는 게 뭔가요? 그러니까 어떤 작품의 주제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림을 보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문젠가요?


이철수 가령 그림에 들어 있는 말도 그렇고 그림의 짜임새나 얼개 같은 것도 그렇고, 그런 게 지나치게 주관적인 태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면 놔두겠다는 생각이에요. 꼭 선문답 같은 것이라도 놔둬 놓고 살려 보자는 거지.


안도현 저도 그 좀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어떨 땐 읽는 사람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재미있고 맛있는 물건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매끈해서, 너무 잘 빠져서 탈이다 이런 지적을 종종 듣게 되더라고요. 어렵다는게 사람마다 차이도 있기는 하지만 우선은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작업을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이철수 네 시집『외롭고 높고 쓸쓸한』인가. 나는 그 책을 네가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는 시집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하여튼 낡은 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지금보다 더 많이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그게 무슨 과정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아예 작품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괜히 과거 기억에 주저주저하고 거기 주저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난 생각해. 가는 데까지 가보는 것이 오히려 정직한 태도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많이 쏟아 내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내 스스로를 다시 확인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내 스스로를 보고 있는 중인데.


안도현 형, 내 시중에 이런 구절 있거든요. 산길을 걸어가는 화자가, 산길 걷는 것은 인간의 마을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고 인간의 마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다, 라는 부분인데요, 이것을 보고 대체로 두 가지 정도의 의견이 들어오더라고요. 하나는 네가 그래도 세상을 안 버렸구나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뭐 돌아갈 필요 있냐, 가고 싶은 대로 계속 산길을 걸어가면 되지 않느냐는 거였지요. 난 후자 쪽을 선택하고 싶어져요. 돌아가야 할 곳을 자꾸 못박아 두지 말고. 설혹 갔다가 돌아오더라도, 내가 자꾸 머뭇거리고 뒤를 도아볼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이철수 누군가 옛날에 쓴 글 중에 '말이 가자는 데로 가자"는 말이 있어요. 그런 태도도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보는 거지. 그리고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나는 누군가 안도현의 지금 방향 같은 것을 미리 다 예측까지 해 가면서 염려해 주는 그런 과잉 친절들이 별로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움직여 가는 길 같은 것을 짜구 들여다보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그 여정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가게 되는 것밖에 수가 없어요. 다 가봐야 아는거야, 그게 설사 길을 잃은 경우라도. 잃고 나야 결론이 나는 거지. 아직 잃지도 않았는데, 산길이 뭐 어떠니 저쩌니 하는 이야기나 저거 넘어가면 뭐가 있으려니 하는 이야기 같은 것도 사실은 불필요하거든.


안도현 좋은이야기예요.


이철수 방금 막 그려낸 밑그림에 보면 이런 것도 있어. 우리 목욕탕 타일 사이에 콩이 떨어져 있다가. 거기서 그냥 조용히 혼자서 있다가, 자꾸 물에 젖고 그러니까 싹을 이렇게 틔웠더라고. 그거 보면서 콩으로서는 실패하게 된 팔자인 거지. 타일 바닥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그 내재율에 의해서 그 싹을 틔우는 거거든. 그건 내일 성공할 거다, 말거다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콩이라는 존재 자체가 안에 가지고 있는 거지. 생명이라고 해도 좋고 뭐라고 불러도 좋은데, 틔우고 보는 거지. 마지막에 이게 타일 바닥이고 더 이상은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서 그야말로 자기 힘이 다하면 끝나는 운명이라고 해도 틔우는 건데. 나는 그런 류의 생명이 우리 지금 필요한 동력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충분히 가 보자느 거야.


안도현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이철수라는 판화가만이 갖고 있는 적극적인 현실 대응 자세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렇기는 해도 우리들은 80년대라는 불밭으르 고통을 등에 지고서도 즐거운 고통이라 여기면서 건너왔잖아요. 문학판 이야기를 하자면 직접 글을 스는 창작자들이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리얼리즘 논의가 여전히 계쏙되는 현상을 보면서 저도 좀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는 거 잖아요. 예술가들의 등에 짐지워지는 사회적인 의무감의 하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지금 같은 시기가 오히려 실제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할 것 같은데…


이철수 지금도 여전히 안팎으로 어렵잖아. 지금은 뭐 아주 일반적인 경제 상황도 거의 재앙같이 보이는 그런 형국인데 같이 고민도 해야 하고 고통도 나누고 해야 할 대목도 많지. 뭐 시하는 사람이건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건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햐 갈 건가 하는 게 문제가 안 될 수 없지. 나는 지금도 그냥 그런 근본적인 힘의 자리에 그냥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만 있으면 그 자체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존재로도 유효할 것 같이 보여. 그것의 정직한 반영이라면 그림으로나 시로나 예술품으로도 일단 기본적인 자기 몫은 되겠다 싶고.


안도현 이야기 방향을 좀 돌려볼까요. 저는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일을 잘 못하거든요. 지역에 있으면서 특히 지역일 같은 거에 쉽게 발이 안 따라 줘요. 전에 전교조 활동을 할 때만 해도 내가 나서서 진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뭐 이런 생각이 많았는데 학교를 그만 두고 나서는 거의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요. 누가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귀찮고. 이러다 가는 골방의 인간으로 나 자신이 변질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울 때도 있지만, 당분간은 바깥일을 줄이는 데까지 줄일 계획이거든요. 그런데 형은 지금 민예총 일도 하시고 또 제천환경운동 연합 준비도 하시는 것 같고... 어때요, 재미있습니까?

이철수 그렇지. 재미없으면 안하지. 근데 아주 중요한 거는 우리 충북 민예총은 좀 특이하거든. 전에 누군가 진짜 민예총으로 성공하고 있는 것은 제주도뿐이고 충북 민예총은 관변화 되고 있어서 민예총이 아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런데 그 얘기가 하나도 기분 안 나쁘더라고. 그래도 우리가 성공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답이 될 지 모르겠는데 좀 달라 보이는 민예총이고 그래서 달라졌으니까 실패라고 이야기하는 그 시선들하고의 관계 안에서 나는 그 달라진 거 가지고 지역에서 계속 성공적으로 하고 싶다는 거야.


안도현 개인적인 작업량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열심히 뛰는 형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올해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이철수 달력이나 엽서 같은 거처럼 출판물을 통해서 대중들하고 직접 관계하는 작업을 좀 더 열심히 해 볼 생각이야. 특히 생활 용품 같은 것 속에 내 그림을 담아서 생활 안에서 우리 그림이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작업, 뭐 이런데 관심이 있어서 그런 부분도 올해부터는 구체적으로 가시화 해 보려고 그러고, 내년쯤엔 서체등록도 한번 해 볼 생각이고, 넌 학교 그만 두고 좀 어떠니.


안도현 사실 잘 못 지내는 편이에요. 학교에 나갈 때는 퇴근 후에 밤 시간을 쪼개 글을 썼는데 요즘도 늘 쫓기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어서 걱정이예요. 형은 하루중에 그림 작업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이철수 밤늦게까지는 안해요. 그냥 틈나는 메모를 해 두었다가 밑그림을 몽땅 그려 놓고, 칼로 팔 때는 한 번에 계속 파는 거지.


안도현 이건 내가 문화저널에서 특별히 주문 받은 질문인데요. 이즈음 우리 사는 세상이 많이 복잡하지요. 이럴 때 문화가 가지는 역할 같은 거 좀 이야기 해 주세요. 형한테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질문인가?


이철수 아냐. 하나도 안 어렵고. 지금 현실을 어떻게 판단하나 이게 중요해요. 지형을 조금 단순하게 보는 거지. 세상이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울 때, 이럴 때 힘쓰는 게 문화 예술 아닐까. 왜냐면 그게 경제적이거든. 정신적인 충족감을 얻어내기에 제일 경제적이고 효용가치가 높은 것이 문화 예술일 수 있지.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는 책도 덜 팔리지 않을 것 같고, 특히 이런 순수예술 쪽의 저작물들이 절대로 손해보지 않을 거 같아요. 두 번째는 그런 거 자체를 예술적인 소재로 삼거나 할 경우에 어떨까 하는 문제로 질문을 하는 거라면 지금은 80년대하고 그 지형이 굉장히 많이 바뀐 게 사실이잖아요.


안도현 그런 점들이 계속해서 논쟁이 되고 문제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형 작품들이 보여주는 지향성이 이 시대에 해주는 이야기가 뭐냐고 누군가 따질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요즘 들어 받고 있는 오해들인데,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철수의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신들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철수 지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런 지형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정신적인 뉘앙스를 많이 풍기는 작업들이 주목을 받지. 아마 안도현씨하고 나하고 이야기하라는 것도 그런 일반적인 판단이 많이 적용하고 있을 텐데, 이런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부가가치가 또 있어요.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기 때문에 조금 순결해 보이는 것에 관해서 혹은 좀 더 깊어 보이는 것에 관해서 혹은 좀 더 따듯하게 보이는 것에 관해서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진다고.


안도현 그 점은 저도 동감입니다. 내가 쓰는 시가 사람들에게 단순한 위안거리로 눌러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리로 눌러 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자신한테도 늘 암시를 하지요. 대중과의 교감을 염두에 두기는 두되 대중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는 짓은 아예 할 생각을 하지 마라와 같은, 일반적으로 문화 예쑬이 인간의 존재에 대한 탐구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지난 시기에 우리는 소홀히 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존재 탐구가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거나 자기 변명의 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철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에 반응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그저 끝없이 즐기려고 드는 태도가 하나고, 또 한가지는 신비나 명상류의 조금 소극적이고 내면으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심정 같은 것으로 거기 기대는 태도가 있지. 그 두가지가 다 병적인 경우에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금 후자의 경우에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그 틀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예전 말로 구두선이라고 하는 건데, 실상이 잡히지 않는 채로 머리속으로 그려낼 수 있는 맑고 청정한 세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최소한 스스로 그 거짓말을 생산해 내는 사람이 되지는 않아야 하니까.


안도현 형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문화 예술 창작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할까 그런 것이 떠오르는데요, 요즘 제 머리속에 떠나지 않는 개념 중의 하나가 장인정신이라는 말이거든요. 지난 시기에는 장인정신 말고 또 하나 머릿속에 뱅뱅 돌았던 말이 치열성이라고 하는 건데. 지난 시대는 시대나 내용, 특히 내용으로서의 치열성을 강조했다면 지금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시대는 형식의 치열성이라고 해도 좋고 자기 작업에 대한 장인정신이라고 해도 좋은 어떤 것이 끊임없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그래서 그런 생각들 때문에 '시'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창조적인 기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러다가 보니까 시가 굉장히 짧아지고 시속에 더 많은 여백을 남겨야 겠다는 전략도 생기고 그랬습니다. 내 나름대로 이런저런 머리를 굴려 본 셈인데 이제까지는 그 장인정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가 없어요. 혹시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 같은 거 있습니까. 형이 원래 뛰어난 장인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쭤 보는 겁니다.


이철수 네가 질문한 이야기 속에 정답 다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타고나기를 좀 깝깝한 타입으로 타고났으니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옛날에 오윤 형 판화를 보면서 제일 부러워했던 게 그 무뚝뚝하고 우직해 보이는 느낌이었거든, 그 앞에 이렇게 내 그림 갖다 놓으면 언재나 잔재주 피운 거 같고 경박해 보이는 느낌이었거든. 그게 좀 자괴감 같은 것도 가지게 하고 그랬지. 벌써 10년도 전의 옛날 이야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면 그분은 그분이고 나는 나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그냥 내가 자괴감이나 가지고 살 게 아니고 내 것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거지. 지금 생각해도 그 결정은 잘 했던 거 같고.


안도현 저는 요즘에『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같은 무게가 덜 나가는 책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거든요. 형은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 있어요?

이철수 『노동의 종말』인가. 오랫동안 머리맡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보고 있는 중이고, 벽암록이나 신과학에 관한 책들도 한 두어 달째 머리맡에 있어요.

또 「녹색평론」이 오면 유심히 봐요. 요변에 광주 사시는 주부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 분이 쓰신 편지글 같은 거 한 서너 페이지쯤 되는 글이었는데 그 글이 참 좋았어요. 내가 이렇게 그림 그리면서 누구나 요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참 좋겠다고 꿈꾸고 있었던 그런 삶의 태도를 아주 적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글이었는데, 아까 이야기 했던 콩싹이 그렇듯이 자기 삶을 유심히 들여다만보고 있으면 저절로 균형이 잡혀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느낌을 요즘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안도현 이것도 역시 주문 받은 질문인데요. 전체적으로 지역문화가 고조돼 있긴 한데 뭔가 허전하다는 거예요. 형은 지금도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는 중이니까 지역문화라는 게 어때야 할지, 그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 지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철수 나는 그것도 어렵게 설명할 능력도 없고, 점점 긴 이야기를 못하게 변해 가고 있는데, 나는 한 3년쯤 전부터  아예 청주쪽 일을 손놓고 제천쪽 일로만 내 이리을 국한시켜 놓았지. 우리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일 수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굉장히 추상적인 활동이 돼요. 내가 가령 달력을 만들거나 인쇄물을 통해서 하는 일이나 뭐 그런 건데, 나는 그것도 아직은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거 중심으로 내가 살아서는 안된다고 보는 거예요. 나는 문화가 지금 이런 정치사회적인 현실에 처해 있을 때 유일하게 대안으로 찾아 낼 수 있는 것은 몸으로 서로 부딪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라고 봐요.


안도현 그렇긴 한데 어쨌든 지역문화가 중앙의 문화와 맞붙어서는 사실 그렇다 할 승산이 없거든요. 그래서 고민은 많은데 성과는 부진하고, 지방자치제 속에서 지역문화가 아직도 감을 잘 못 잡고 있다는 느낌도 있어요.


이철수 내 경우에는 낮은 수준의 것을 폭 넓게 누릴 수 있게 만들겠다는 생각도 우리가 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고 그 일에 내 몫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시시한 것들을 모아서 뜻깊은 것을 만들자는 거지. 우선은 지역의 특성을 정확하게 잘 포착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두 번째 초점은 실질적인 지방자치하고 어울리는 문화자치를 해보자는 거지. 사실 여기는 지금도 사물놀이패 하나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못돼요. 그런데 앞으로 최소한 그런정도라도 가능하게 해보려고 해요.


안도현 그렇지요. 제가 사는 전주는 지역문화를 이야기하기에 이미 너무 넓은 터가 되었지만 수준이나 성과보다 지역에서 뭔가 꿈틀거린다는, 그게 자족적인 상태에만 머물지 말고 외연을 조금씩만 넓혀 간다면 그 자체로도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애요. 내 방식대로 한다는 게 지역문화의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장시간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고맙습니다. 형 건강하시고, 서로 멀리 있지만 올해는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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