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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 | 인터뷰 [문화와 사람]
"사는 것도 '합창' 처럼 조화로울 수 있다면"
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김성지 교수
손희정 기자(2015-05-27 12:57:39)


 "자장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아주 많습니다. 모짜르트의 자장가, 슈베르트의 자장가, 김대현의 자장가…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자장가의 선수들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자장가를 잘 만들어내시고 또 잘 부르시는지 모르겠어요. 그 때 ㄱ 자장가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싹수가 있습니다. 잘 자란단 말씀이지요."

 김성지 교수는 '사설'이 긴 지휘자다. 공연시간 5분의 1이상이 김교수의 설교시간. 시립합창단이 틈새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한 김대현의 '자장가'를 부르기 전에 이같은 설명을 붙이는 것도 이색적인 일이 되지 못한다. 그는 언제나 지휘에 앞서 '사설'을 붙인다. 이제 이런 사설은 김교수의 '인생학설'이 돼 버렸다.

 김성지 교수는 익산에서 태어났다. 집 뒤편에 있는 교회에서 성가대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 여파로 대학에서는 종교음악을 전공했다. 57년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종교인들이 중심이 된 '목가합창단'을 창단, 61년 전북지역 교회 성가대원들이 함께 만든 '할레루야 합창단'에서 지휘활동을 해 와씅며 65년 봄에는 지금도 화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예수병원합창단'을 이끌어 오기도 했다. 84년에는 전주시립합창단과 함꼐 재창단을 맞았으며 40여년 전이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가슴 뜨겁게 박자를 목소리를, 관객을 움직이는 것이다.

 올해 나이 예순 넷, 누가 나이를 물을라치면 "올해나이 열아홉"을 수식어처럼 먼저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리고 시립합창단에서 평생 열아홉살 김성지로 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일생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인터뷰 요청에는 기겁을 하면서 손을 내젓지만 합창공연 무대를 통해 사라을 만나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대단히 즐긴다. "이 나이네 놀면 뭐하냐"면서 시작한 '찾아 다니는 음악회'도 그런 김교수의 음악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김교수와 시립합창단은 도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고등학교를 순회하며 클래식의 깊은 맛을 선사하고 인간의 목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오후의 작은 열린 음악회'를 열은 덕이다. "박수를 치려면 재가 되도록 치라"든가 "뭔가에 미친 학생이 되라"는 김교수의 주문은 청소년들의 넘치는 혈기를 바르게 양산할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와 같다는 평도 되새김해야 할 사설중의 하나다. 고등학교 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지역을 돌면서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 속에 얼어 붙은 민심을 녹여주는 장작불같은 합창공연을 벌이는 것도 김교수 '팀'의 일과, 선거기간 동안 일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내녀에는 더 많이 찾아다닐 것이라 한다.

 화요일과 금요일, 근무시간과 점심 시간의 '틈'을 이용해 여는 '틈새음악회'도 공무원들과 인근 주민들에게는 정평이 나 있다. 멋들어진 합창단의 공연도 공연이지만 김교수의 '깜짝 강연'이 그네들의 마음에 위로와 여유를 주기 때문에 꼭 찾아간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 외에도 농민교육원, 운수연수원, 여성강좌, 주부교실, 덕진구청에서도 열린 음악회를 열고 있다. 아마도 누가 불러주기만 한다면,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있을 법한 곳이면 어디라도 공연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생활 속의 예술가'라고 부리지 않을까 한다.

 김교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뭔가 의미를 붙이는 일도 마다한다. "자기가 할 일 열심히 하는 건데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건가요.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자기 자리에서 자기 맡은 일을 열심하는 것이 나라를 돕고 우리 이수을 위하는 일 아닌가요."

 어제 중앙여고 순회공연에 이어 오늘은 틈새음악회, 내일은 상산고등학교다.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음악을 이야기하고 생활을 노래하는 김성지 교수. 그의 인생이 시민들과, 학생들과, 공무원들과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들들을 찾아가 닫힌 마음의 문을열고, 사는 것도 '합창'과 같이 조화있고 어우러지는 속에서 제 자리를 찾아갈 수있도록 애쓰는 모습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의외의 시간과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흥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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