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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 | 인터뷰 [문화와 사람]
이제부터가 진정한 연극의 시작
신임 전북연극협회 백영기 지회장
손희정 기자(2015-06-09 17:55:47)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온 사람, 자질구레한 일 마다않고 자기가 하는 일 외에 단 한번도 다른 일에 대한 동경같은 것도 품지 않은 사람, 그 일생의 성과가 오랜 경륜과 맞물리면서 일과 삶이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외길인생 몇 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데, 98년부터 전북연극협회를 이끌어나갈 백영기 지회장 당선자(?)에게 '연극사랑 외길인생 21년'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도 좋을 듯하다.

 올해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백영기 신임 지회장이 처음 연극을 하겠다고 달려든 때가 열아홉,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상경을 결심, 서울 극단 '백조에 입단하면서 42.195km 마라톤 코스를 달리기 위해 스타트라인에 선 주자처럼 그 이후로 죽 연극에만 미쳐있었다. 서울에서 눈을 넓히고 공부를 계속해온 백영기 지회장은 지역연긍의 뿌리가 되고 있는 '창작극회'를 거쳐 지금의 활동무대인 군산으로 그 터를 잡고 군산지역극단 '갯터'에 몸을 담았다.

 지난해까지 군산연극협회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백영기 지회장은 기다림의 연속선상에서 애를 태워야 했다. 전북연극협회산하 시지부 중에서는 유일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군산지부에, 연극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사업의 일환으로 '시립극단'을 창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유월의 연극축제를 열어 준비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가난한 유월의 연극이겠지만 순수한 애정으로 몸과 마음을 준비하다보면 좀 더 나은 풍토에서 연극혼을 불태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전북연극협회 지회장의 책임이 막중한 감투까지 쓰게 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침착하게 머리속 구상을 시작하고 있다.

 "협회가 지역연극의 구심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제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이 지역 모든 연극인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일 것 같아요." 아직은 고민단계이고 별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중. 크고 작은 사업들로는 99년 국제적 연극제를 구상하고 있으며 대중과의 친화도를 높이고 시들해진 지역연극에 불을 지피는 작은 생활연극을 통해 바야흐로 지역연극시대를 열어 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배우기근과 비평부재의 전북연극의 문제들도 고민거리다. "저 때문에 앞으로 배우기근 문제가 더욱 커질 것 같다"고 한다. 연극인들을 서울로 많이 올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시대역행적인 발언이다. "지역연극인들의 눈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열린 마음으로 지역연극을 보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변론이고, 일시적인 배우 기근현상이 지속되겠지만 머지않아 그것이 지역연극의 틀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게 결론인 셈이다. 그리고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지역연극의 전문비평가가 전무한 현실에 대해서는 "그거, 기자들의 몫으로 남겨놓겠습니다. 연극인들끼리 비평하다보면 거의 비판이 되는 수준이고, 비평가가 없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지역문화담당 기자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회가 새로 구성되면 빠른 시간내에 연극비평기자모임을 주선하겠다고 한다.

 지역연극의 맥을 잇고 새로 극단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극단들과 이제 곧 부상하게 될 전북연극의 3세대를 키워내는 일도 협회가 껴안아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96년부터 계속돼 온 고 박동화 동상건립문제도 불황 속에서 힘겹게 해쳐내야 할 사업이고 지난해 처음 시작한 청소년 연극제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봐야 했던 대학연극제의 부활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만 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인들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들이 오히려 연극인들의 화합을 불러 일으킬 지도 모릅니다." 희망반 불안반으로 이제 20여km지점에 도착한 마라톤 주자처럼 전북연극협회를 이끌어나갈 백영기 지회장 당선자.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부터 목적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연극의 시작이라고, 지금 이 지점이 21년전의 백영기라고 생각하면서 출발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미리부터 성급한 기대가 앞서는 것도, 연극에 대한 믿음으로 줄곧 한길만을 달려온 그의 신용장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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