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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인터뷰 [우리음악에 쓰이는 말]
처음과 끝,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지휘자
집박(執拍)
최상화 (전북대 교수·한국음악과)(2015-06-18 15:51:01)


 집박은 전통음악을 여럿이 함께 연주하는 합주시에 음악적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사람(행위)을 말한다. 예전에는 집박하는 사람에게 집박악전(執拍樂典)이라는 벼슬을 내려 음악을 관장토록 하였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일종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집박할 때는 '박(拍)'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박은 박달나무가 그  재료이다. 긴쪽이 약 50cm, 짧은 쪽이 약 8cm, 두께가 1cm가량되게 박달나무 막대 6개를 잘 다듬는다. 그리고 막대 끝 귀퉁이에 각각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쇠가죽으로 연결하여 묶는다. 그러면 한쪽은 묶이고 다른 한쪽은 벌어져서 마치 부채 모양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박의 벌어진 쪽을 양손으로 잡고 마치 박수를 치듯이 순간적으로 힘주어 오무리면 6개의 박달나무가 부딪히며 "짜악"하는 큰 소리가 난다. 집박은 박을 한 번, 또는 세 번을 치는 단순한 행위를 반복한다. 한 번 치면 '음악시작', 세 번치면 '음악 끝'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이다. 그 외에 연주 중에 다른 음악으로 바뀔 떄도 한 번의 박을 친다. 이렇듯 만들어진 박을 치는 행위를 지금의 정서로 볼 때 단조롭고 따분하게 느껴지겠지만, 궁중에서 연행되던 음악의 대부분은 의식에 따라 종류가 다르고, 음악의 시작과 끝 또한 의식 진행에 따라 매번 다르기 때문에 집박은 의식의 절주(節奏)에 따라 통달해야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나라의 제향(祭香)이 있을 때 의식을 진행하는 집사가 "드오"하고 외치면, 집박은 오무렸던 박을 벌리어 '연주준비'를 알리고 이어서 "짜악"하고 한 번 침으로써 '연주시작'을 알린다. 집사가 "지오"라고 소리치면, 집박은 오무렸던 박을 다시 벌려 '음악종료 준비'를 알리고, 박을 "짜악 짜악 짜악"하고 세 번쳐서 음악을 멈추게 한다. 옛 의식음악은 의식에 따라 일정했고, 고저장단이 단순했기 때문에 집박만으로도 음악지휘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악은 이미 음악의 환경과 체질이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어 집박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식음악을 담당한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아마도 서양식 지휘에 아연 의아해지기도 했겠지만 그 모습이 오늘날에 선택된 어쩔 수 없는 지휘자, 곧 집박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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