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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 | 인터뷰 [인터뷰]
그의 술을 따라 전주 술 길을 그려보다
유상우 전주한옥마을모주협동조합 대표
황경신(2015-10-15 13:55:26)

 

 

 

TV만 틀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더 맛있게, 더 간편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시끌벅적하게 소개하기 바쁘다. 그만큼 음식은 먹고 즐기는 맛 못지 않게 만드는 맛도 쏠쏠하다.
'집밥' 열풍을 타고 쏟아져 나오는 음식 이야기들, 과연 우리 밥상만 그럴까. 따져보면 '술'이야말로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주요한 음식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리고 지금의 일상과도 매우 가깝다.
장을 담그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술을 담그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뿌리 깊었다. 밀주(密酒)를 없앤다는 이유로 그 자취가 희미해졌지만, 장 맛 못지 않은 것이 바로 '술 맛'이다. 가문에 따라, 마을에 따라, 지역에 따라 여전히 맥을 이어내는 전통주들이 그래서 오늘도 존재한다. 물론 그 모습은 힘겨운 '유지'에 가깝지만 말이다.

 

술 익는 소리를 듣다
대략 3년 전쯤 이었을 것이다. 수제맥주를 파는 '술집'이 인적 드문 전주 동문거리에 문을 열었다. 술 꽤나 마시며 어울리던 젊은 부부가 술집을 차렸다. 홍지서림 길에 들어선 <시>를 운영하는 것은 그의 부인이었고, 그는 그 곳에서 파는 맥주를 만들었다. 이후 술 빚은 '젊은이'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 유상우 씨(43세). 오래 전부터 그를 아는 사람들은 술을 만드는 그를 두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궁금증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전주 토박이인 그는 20대 시절에는 문학을 꿈꾸는 청년이었고, 전주술박물관에서 일하는 기획자였고, 결혼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고향, 전주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벌인 일은 '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업도 아니고, 전공도 아닌 그가 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우연인 동시에 필연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술박물관에서 일하던 때였어요. 어느 날 술항아리에서 숨 소리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따뜻해진 술 항아리가 쌔근쌔근 숨을 쉬고 있었죠. 아, 바로 이게 술 익는 소리구나 싶었어요. 아이를 가진 엄마의 둥근 배처럼 술항아리는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며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술 익는 소리'를 들은 그는 술박물관을 운영하는 일 외에 술을 직접 만드는 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체험, 시음행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술 제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되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전주를 떠나 직장인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전통주 만드는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며 술을 알고, 만드는 활동을 이어갔다.
"지금은 회원이 2만 명이나 되지만, 카페를 시작했던 2002년도에는 몇 십명에 불과했죠. 특히 저 같은 30대 젋은이들은 거의 없었어요. 전통주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젊은 사람이 있을리 없었죠. 이후 막걸리나 하우스 맥주 열풍이 불면서 회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전국적으로 회원들이 포진해 있던 덕에 전국 각지에서 모임을 하며, 술을 만들고, 나름대로 교육을 이어갔다. 카페 운영자로 활동하던 그는 술 만들기를 '일 삼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문화'에서 술의 답을 찾다
직장을 그만두고, 주특기이자 다양하게 쌓은 술에 관한 '스펙'으로 이력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곧 채용이 됐다. 바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 제조기업인 '배상면주가'에서 술에 관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전통주 관련 문화사업을 크게 계획했던 '배상면주가'에서 그는 전통술센터 건립과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전통주 제조사업 일을 맡았다.
그가 전통주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이다. 전국의 오래된 양조장을 있는대로 찾아다녔다.
"양조장이 남아있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문을 닫고, 낡은 양조장 안에서 술을 만드는 도구들 보다 제 눈길을 끈 것은 양조장 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금고'였어요. 작은 금고 수준이 아니라 장롱 만한 것들도 있었어요. 그만큼 막걸리를 비롯한 우리 전통주 시장이 옛날에는 왕성했다는 거죠. 현금을 빼곡이 쌓여 있었을 금고 안을 상상할 때면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낡은 양조장, 전통주의 흥망성쇠가 눈에 선했다. 술의 소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것은 자리를 잃어버린 현실, 막강한 대기업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전통주의 현실은 말 그대로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지역의 특산물과 지역내 폐 양조장이나 폐교를 활용한 전통주 개발, 제조사업 일을 이어갔다. 청송 사과, 단양 마늘, 고창 복분자, 완주 감, 나주 배, 하동 녹차 등 전국적으로도 브랜드 가치가 획득한 각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전통주 '아락' 시리즈 개발이었다. 당시 시군특화사업에 열성이던 각 지자체에서도 시설 구축이나 양조장 건립에 꽤나 적극적인 터라 사업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절반의 실패, 6개의 시리즈 중 그나마 생산을 이어가고 있는 술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야심차게 진행된 사업이어도, 소비자의 트랜드를 잡기에 실패한 거죠. 지금은 사과, 복분자, 배 등만 시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들도 술 맛이 월등히 뛰어났다기 보다는 고창하면 복분자라는 오랫동안 이어진 지역 브랜드가 작용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겠죠."
유통판로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이라고 해도, 마트 진열대에서 소비자의 손길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통주는 맛이나 내용과 상관없이 특별한 술 또는 의례적인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고민은 더 깊어졌고, 또 다른 길을 나섰다. 서울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전주로 발길을 돌렸다. 직접 술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전통주가 되살아나지 못하고, 막걸리가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그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데에는 물론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제대로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생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의 원료나 문화와 함께 가지 못하면 크든 작든 유지 자체가 힘들다고 봅니다"
막강한 대기업도 실패한 일을 홀홀이 해보겠다는 무모한 도전이라 여길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가 다다른 술에 대한 해답은 바로 '문화'에 있었다.

 

전주보리로 만든 맥주는 전주술
그렇게 전통주에 대한 애정과 고민으로 창업을 결심한 그가 처음 만든 술은 '맥주'였다. 전통주를 이야기하던 그가 왜 맥주를 만들었을까. 조금 거창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지역농업과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맥주 보리 생산이 괜찮은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맥주도 그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 제조하는 맛을 품은 술이에요. 어떤 상품이건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역사와 전통, 문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주 보리를 이용해서 가장 대중적인 맥주를 만들고 싶었어요."
전주에는 맥주 보리 생산의 농업기반이 있었고, 이른바 '가맥문화'도 존재한다. 우리가 부담없이 즐기는 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맥주도 '지역 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주에서 맥주 보리 농사를 지어본 경험을 지닌 농가를 어렵게 찾아내 계약재배에 성공, 이제 그의 맥주는 그야말로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정한 수제 맥주가 되었다. 어차피 많은 양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크래프트 맥주이기에 맥주의 특별한 맛을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맛의 가치에 더 집중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6개월 전부터 새롭게 시작한 모주 사업은 '고군분투' 중이다. 협동조합을 설립해 생산해내고 있는 모주 또한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한 가지. 막걸리에 생강, 대추, 계피 등을 넣고 하루 동안 푹 끓여낸 모주는 콩나물국밥과 함께 전주를 상징하는 음식이다.
"모주는 술 보다 더 상품성이 높다고 봅니다. 술꾼들에게는 해장술로, 젊은이들에게는 칵테일처럼 즐기는 음료에 가까운 술인 셈이죠. 그 뿌리 또한 전주가 분명하구요. 막걸리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윈-윈'할 수 있는 아이템이죠."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직원들은 모주 '홍보'에 다 투입된 터라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양한 판로 확보에 정신이 팔려있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이것이 문화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그림을 잊지 않고 있다. 술 축제도 좋고, 술 거리도 좋고, 술 지도도 좋고, 술 기행도 좋다. 전주 술 맛 아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어떤 그림이어도 괜찮겠다 싶다.
술에 관한 그의 여정이 시시콜콜해 보여도, 어느 새 15년이나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전주 동문사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이, 어느 구간은 그의 영역이 된 걸까. 동문사거리의 수제맥주 전문점 시에서 모주 협동조합 창고를 지나 한옥마을 판매장까지 그가 만들고 내놓은 술들이 드문드문 길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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