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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 | 연재 [백제기행]
추억이 내려앉은 골목여행, 골목 안에 풍경을 더하다
177회 백제기행_도시문화기행 열 여섯 - 서울
문성희(2016-07-15 09:26:52)





일상을 살아간 곳에 여행이란 단어가 붙으니 조금 어색하다. 1년 전, 나의 일터와 삶터는 서울이었다. 특히 성수동은 내가 가까이에서 알던 지인이 부푼 꿈을 안고 카페를 개업했다 경영난에 문을 닫은 씁쓸함으로 추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수제화 거리로 유명하다 알려진 성수동. 김우빈과 이나영이 한껏 멋진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던 모카책방이 자리한 성수동.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예술가들이 하나둘 도시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는 성수동. 그리고 누군가의 부풀어 있던 꿈이 사그라들어버린 곳으로 나에게 기억 되는 성수동. 짧은 정보와 나의 추억이 섞여 마주할 그곳을 나는 어떤 다른 모습으로 다시 바라보고 추억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함께 가는 이들은 어떻게 그곳을 추억할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창고'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성수동. 똑같은 모습의 높은 빌딩 사이, 정겹게 내려앉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작은 소품들이 눈길 가는 곳마다 놓여있어 발길을 멈추고 시간을 멈추게 한다. 허름하고 낡은 모습이 주변 소품에 베어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원래 청바지 봉제 공장이었던 곳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사진창고는 이름처럼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창고'에 담고 있었다. 사진전, 사진 강좌, 출판강좌 까지 다양한 시도들이 생산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도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벽면가득 아이의 소소한 일상이 사진에 담겨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깔깔깔 웃으며 아이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순간의 찰나를 담는 사진에는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스며드는 듯하다. 관객은 그 스며든 느낌을 사진을 바라보며 흡수하게 된다.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이 담긴 사진. 절로 웃음이 나는 사진전이다.  






골목 안 풍경을 더하다
 사진창고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양하고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 중 유독 눈이 가는 그림은 산수화다. 이 골목에 위치한 공장 사장님이 그린 그림이라는데, 보통 솜씨는 아닌 듯 보였다. 연신 감탄을 하며 혼이 쏙 빠져있는 사이. "어디에서 왔어요?" 시선너머에서 물음이 들려온다. "전주에서 왔습니다" 답을 드렸더니, 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환한 미소로 골목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신다.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해, 얼마 전 뜨거운 성수동을 더 뜨겁게 달군 모카책방이 일주일전 문을 닫은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대단하다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산수화가 아저씨의 작품이었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고는, 다들 손벽을 치며 뜻밖의 인연을 만난 기분의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의 이름은 초암 이우택. 그림을 그려 오신지는 꽤 오래 됐다고 했다. 벽화는 공장 사장님이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리기 시작했고 4~5년 전에 그리다가 지우고 새로 그리셨다고 한다. 공장안에도 그림이 많다며 들어오라는 손짓에 우리는 냉큼 발길을 공장안으로 돌렸다. 일을 하면서 수시로 작품을 구상하다보니, 공장안은 어느새 전시실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공장안 사이사이 전시된 그림이 뭔가 이색적이었다.
 참 멋진 풍경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 물으며 자기의 공간을 자랑처럼 내어주고, 그 삶을 감탄할 수 있게 만드는 골목 안 풍경. 추억이 내려앉은 골목여행이란 주제와 제일 어울려 그런지, 환하게 웃던 아저씨 모습이 이번 기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벽화골목을 빠져나가자 수제화골목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신발 모양의 간판들과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성수동은 수제화로 유명하다. 수제화 공장들, 가죽 부자재공장과 상가들이 밀집한 공장길이 늘어서 있다. 현재도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우리의 기행을 도와주신 원동업 선생님은 이곳을 '살아있는 생산과 판매'의 현장이라 칭하며, '그 부산함들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같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머릿속에 왜? 라는 질문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갔던 성수동의 자취는 왜 점점 사라졌을까? 치열한 삶과, 예술이 어떻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하나의 도시에 조우 할 수 있었을까?


멈춰있는 공간, 사람을 통한 공간의 재창조

2011년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낡은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성수동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 공업단지로 조성되었던 성수동은 70년대부터 최근까지는 수제화 거리를 대표로 인쇄소, 자동차 공업사 등이 즐비했던 제조업 중심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해외로 눈을 돌린 공장들이 늘면서 제조업체들이 성수동을 떠났고, 이후 성수동에는 미처 처분하지 못한 창고와 공장, 사무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강남 등 그 일대의 땅값이 비싸지면서 밀리고 밀린 예술가들이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성수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성수동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의 변화가 그러하듯 성수동의 모습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대림창고는 1970년 초 정미소로 지어진 후 보관 창고 등으로 20년 동안 쓰이던 공간을, 그 이름과 외관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의 공간만 예술의 힘으로 재창조하여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큰 공간을 기둥 없이 만들어서인지 웅장함과 거대함이 느껴졌으며, 사람의 기운을 빨아드리는 듯, 큰 힘이 느껴졌다. 자세히 바라보니, 곳곳에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사람손길이 닿는 곳마다 무질서 속에 질서를 만들어 놓은 듯 책상배치부터 조형물까지 어느 것 하나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지 않음을 느꼈다. 섬세함. 이 세 글자가 대림창고 곳곳에 묻어났다. 대림창고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패션쇼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적 행사들이 진행된다. 대림창고 옆 수피도 젊은 감각으로 한껏 멋을 낸 모습의 세련미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입구부터 뭔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대림창고와, 수피, 자그마치 등이 존재해 있는 건물들을 조망해 봤다. 대림창고 옆에는 아직도 공장이 운영 중이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피 아래층에서도 기계가 열심히 열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이처럼 성수동에는 서로 다른 이질적 느낌의 풍경들이 혼재되어 존재하고 있다.
공간은 멈춰있고, 사람들은 드나든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대로 도시는 변화하며 다른 문화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만들어낸 시간의 흐름과 손때가 공간을 재창조 한다. 기존에 있는 것들과 새로운 모습들이 어떤 모습으로 재창조 될 것 인가? 굳이 섞을 필요가 있나? 이런 질문들을 던져본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원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새롭게 존재하는 것들 때문에 소외당하거나, 제거 당하는 방식의 형태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밀려나온 그들의 시도가 응원 받아 마땅할 일이면서도, 자꾸 마음 한켠 걱정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과 만나는 하나의 '사건'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긴 심상을 보고 읽는다. 작가의 배경과 기획의도를 듣고 작품을 만나면 작품을 더 자세히 이해 할 수 있지만, 작품과 나의 무의식이 만나 이야기 하는 아주 소중한 시간을 잃는다는 것이 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스쳐 지나가는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 같은 작품 하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현대미술관에서의 많은 작품과의 만남과 빠른 전개는 나를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엄청 큰 공간에 다양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공간 한켠에는 작가들과의 대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중 맨 처음 만나게 된 전시는 '아주공적인 아주 사적인' 이라는 주제의 사진전으로 지난 30여 년간 한국 현대미술사에 있어 사진매체가 어떻게 현대 미술의 언어와 조우하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왔는지를 조망하는 전시라고 한다. 이번 전시는 실험의 시작, 개념적 미술과 개념사진,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 이미지 너머의 풍경 : 상징, 반 미학, 비평적 지평 이렇게 4개의 섹터로 이루어졌다. 제일 흥미로웠던 영역은 제3섹터 '현대미술과 퍼포먼스 그리고 사진'이다. 행위예술을 사진에 담아 작가는 관람객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담는다. 사진을 그저 보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는 행위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 대해서, 꽤나 흥미로운 사진이었다. 


우리가 가져야할 나의 언어는 무엇일까?
질바비에와, 율리어스포프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하여.  

사람의 모습을 한 흉상에 바나나가 이리저리 박힌 조각품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형상이다. 이 작품에는 매체와 광고가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아 대중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질바비에의 작품에는 말풍선이 많이 존재한다. 너무 많은 언어들이 넘쳐 나고 있고, 사람들의 입에서 말이 뿜어져 나온다. 그 중, 어떤 언어들이 실제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지켜지는가? 그 언어들끼리의 소통은 어떠한가? 그 질문에 대한 고민들을 작품으로 형상화 하지 않았는가 싶다. 질바비에에게 이번 전시회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질바비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 예술 작품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도, 관객이 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관객이 작품을 접하며 건설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규정할 필요는 없죠."  에코시스템이라는 전시회의 제목처럼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그 우연한 사건 속에 만들어지는 의미의 무한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질 바비에의 작품을 지나면 전시장 안에서 연속적으로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기계장치를 볼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안내지는 다음과 같이 소개 하고 있다.

연속적으로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이 '정보 데이터의 폭포'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만 유효한 정보의 일시성과 현대인이 이해하고 소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 정보 과잉의 현대사회를 시각화 한다.

빠르게 떨어지는 단어는 거의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말은 어설프게나마 알아차린다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는 형태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 읽지 못하는 언어란 그런 것이다.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일 뿐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말들과 단어들 중 나의 언어인 것이 얼마나 있을까? 삶속에서 마주하는 언어들은 내 언어로 체화되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화된 타인의 것을 쫓아가며 살아가며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 분열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듯싶기도 하다. 질바비에나 율리어스포프는 그 점을 경계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인간들이여! 자기언어를 가지고 행동하며 살아라" 이렇게 이야기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색이 다양한 질감을 만났을 때.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COLOR YOUR LIFE' 는 우리주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색에 대한 전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랗다는 색감을 아주 다양하게 표현한다. 파랗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등등. 우리 주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색이라는 것들이 어느 질감의 재료를 만나고 어느 형태로 만들어 지느냐에 따라, 또 어떤 색과 만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 될 수 있는 색깔에 대한 재미를 찾아보는 전시였다. 색은 어디에나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때론 무채색처럼 세상이 보일 때가 있다. 우리 주변의 색만 유심히 바라보고 관찰하고 살아도 세상살이가 감탄스럽고 감동일 수 있음을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몇 시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잔상에 담겼다. 그 중 마음에 새겨진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명확해 지지 않을까 싶어, 천천히 곱씹고 있는 중이다. 잔잔한 울림 뒤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기행이었다. 대림창고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공간을 바라보고 싶다. 더 많이 주변과의 어울림을 바라보고 싶다. 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보고 싶다. 조만간 다시 서울을 찾아가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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