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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 | 연재 [수요포럼]
전통음악의 역사와 현주소 그리고 밀레니엄 세대
162회 수요포럼
(2016-08-16 10:12:49)




전주축제 4년째예요. 누구 말대로 '3년만 한곳을 열심히 파보면 나름대로 자기 주관을 이야기할 정도는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전통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강하게 이야기 하려고 해요. 오늘까지 이 길을 걸어오면서 절감했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함께하는 소리의 '판'으로 소리와 사람,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축제다. 우리 전통음악인 판소리에 근간을 두고 세계음악과의 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이기도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린지에서부터 각 분야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아티스트 공연까지, 축제 기간에는 다양한 공연 무대가 관객을 부른다.
2001년부터 시작돼 매년 10월 한국 소리문화의 전당과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려온 소리축제는 올해는 더욱 새로운 옷을 입는다.
 '대마디 대장단'을 주제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한옥마을에서 28개국의 200여개의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판소리, K-Pop과 전통음악의 만남, 산조,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듣고 감상하고 체험하는 시간이 마련돼 가족, 친구, 연인이 골라볼 수 있는 다채로운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이 축제의 중심에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있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을 역임해온 그가 수요포럼에 초대돼 소리축제와 전통음악의 현주소를 이야기했다. 치열한 열정으로 음악의 길을 걸어온 그는 전통음악을 위해 밀레니엄세대가 해야 할 역할을 강조했다. 


밀레니엄 세대의 미래

"2030 에코 포럼이 있었어요. 그때 많은 분들이 나와서 발제를 하시는데 중간쯤에 한 젊은 여자 한분이 발제를 할 차례가 왔어요. 광고기획 대행사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강의 주제가 뭐였냐면 '잘 알지도 못 하면서…'이게 주제였어요. 그날 오신 분들 전부다 멘붕 상태가 됐죠.(웃음)"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2030 에코 포럼에서 받은 충격을 경험으로 수요포럼을 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의 세대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다고 말하는 어느 여성의 강의는 실제로는 기성세대가 밀레니엄 세대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밀레니엄 세대는 1980, 90년에 태어나서 세기가 바뀌면서 성인이 된 세대다. 이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전혀 다르다. 그는 밀레니엄 세대는 태어날 때 굶고 태어나는 일은 없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살길을 생각을 하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특징을 가진 세대라고 정리했다. 

"제가 태어날 때만해도 저희 집도 꽤 잘사는 집이었어요. 아버지가 국가 공무원이셨죠. 재수없게(?) 태어나기 전에 4.19가 터지고, 태어나고 얼마 안 있다가 5.16이 터졌어요. 저희 아버지도 정권이 바뀌면서 쫓겨나셨어요. 버틸 수가 없어 봉천동으로 이사를 갔죠. 잘 지내고 있었는데 68년도인가에 여의도를 싹 쓸어 밀어버리면서 봉천동 달동네에서 삶이 시작이 됐죠. 이때부터 끊임없는 고통의 길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고통은 세대마다 고통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 세대의 고통이 자신과는 또 달랐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100년 세월을 되돌아본다면 적어도 과거에는 미래를 예측을 할 수가 있었다. 준비를 할 수가 있었고, 꿈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미래를 예측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해졌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방향

"전통음악의 현실을 보면 참 암울합니다. 방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전주가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사실 전주는 이런 곳이 아니에요. 제가 전주에 처음 오게 된 것이 1989년 대사습놀이 할 때인데, 그때는 이런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전주는 전북 여러 지역의 다양한 콘텐츠 가 모여지고 받아들여지는 곳이었습니다. 저도 거기서 전주의 가능성을 봤죠. 그때부터 전주를 자주 찾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전주에 와서 오히려 전통음악 프로그램을 없애는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통을 싫어해서가 아니고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었죠."

전주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전통음악만을 앞세운 무대가 넘쳐났다. 음악인들이 많지만 그들이 생산해내는 음악의 질적 수준은 물량의 규모를 넘어서지 못한다. 전통음악 무대가 이어지지만 옥석을 가릴 수 없는 구조. 박위원장의 고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새로운 방법 두 가지를 적용했다. 첫째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경쟁재 개념을 도입했다. 지금까지 많은 전통 축제들은 보완재 개념으로 진행했다. 보완재 개념은 전통관련 콘텐츠들을 그냥 나열하는 방식이다. 전통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다양한 콘텐츠들과 함께 전통 같이 놓고 바라본다. 서로의 경쟁을 통해 보완하는 방식인 것이다. 월드 뮤직을 보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심한 부분 까지 잘 들여다보면서 일류 축제로 만드는 일이다. 무대 운영과 행사 운영을 구별해서 구체적인 부분까지 축제의 특성을 담아내는 작업이 강조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통음악, 세계화의 부작용

"과연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에 언제부터 누가 세계화라는 말을 쓴 건지 모르겠어요. 젊었을 시절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 이란 구호에 동의하며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한민국은 전통 문화의 가치를 세계화라는 엉뚱한 객체에 두기 시작했어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죠. 한국 문화가 경제적으로 성장을 하면서 문화적인 양식을 통해 세계사에 뭔가 남기고 싶어서 정책적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죠."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란 책이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말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한 책이죠. 매우 어려운 미학 책인데, 그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전통이 걸어온 길이나 가야할 길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것을 찾아냈어요."

박위원장은 책에서 말한 네 가지 단어를 소개했다.  'elaboration', 'decent', 'deepen' 마지막으로 'still'.
'elaboration'는 정교함이 있어야 한다. 음악은 실력이 아니고 공력, 즉 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힘을 말한다. 한국 전통음악은 전 세계 유래가 없는 방식의 음악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기술력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끌어안고 가야하는 언어이자 생명이고 몸과 같은 것이다.
'decent' 품위. 품위를 어떻게 지키며 이 품위를 가지고 'deepen', 심화 시켜 'still', 유지해 나가느냐하는 것이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주소는 달랐다. 언제부터인가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목말라 하며 이런 과정이 무시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음악 역사가 참 재미있어요. 1870년대 초반에 '신재효' 선생님이 판소리를 12마당으로 다 정리하셨어요. 1870~80년대에 '김창조' 선생님이 흩어 졌던 산조 가락을 정리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이런 작업들이 단절되었죠. 그리고는 참 희한한 현상이 벌어졌죠. 그때는 기생집에서 노래하던 모든 우리 가수들이 모두 민요를 부르는 시대였어요."

일제시대엔 일본작가가 민요를 듣고 곡을 써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뽕짝, 트로트가 탄생한다. 이때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역사는 단절되고 일본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978년 남사당의 후예들이 모여서 공연을 하게 된다. 김용배, 이광수, 김덕수, 최종실 이 네명은 그 많은 풍물가락을 정리한다. 풍물을 넘어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게 된다. 예술은 늘 고통 속에서, 전통의 장르를 뛰어넘어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다.

"전통에 상업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어요. 문학 가지고 돈을 번 적이 있어요? 미술이 돈이 돼요? 전통음악, 고전음악이 돈이 돼요? 안돼요. 그래도 하는 거예요. 왜? 이것은 모든 예술과 우리가 살아가는 인본의 근본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지켜나가면서 열심히 하고, 여기에서 소스를 뽑아서 상업적인 것을 탄생시키는 겁니다."

그는 전통음악과 문학, 미술의 공통점으로 빈곤한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어느 시절에도 음악가는 돈을 움켜쥐고 예술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빈곤한 상태에서도 예술적인 혼과 영혼을 담아 절대적인 감동을 주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응용을 통해 응용미술이나 상업적인 영화, 다양한 콘텐츠가 유발돼서 자본을 형성하게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학습이 덜 된 상태에서 빈약하다 못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서양의 몇 가지 기술을 습득해서 그걸 쉽게 써버리죠. 음악이 악기를 다루는 능력 싸움이 아니잖아요. 음악은 언어로 되어 있어요. 이 언어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아주 미련한 짓을 하고 있는 거죠. 그 나라의 음악은 언어하고 닮아있기 때문에 언어를 바꾼다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가 'Are you hungry?'라고 아무리 발음을 잘해 이야기 한다고 해도 그것은 국산이에요. 우리 스스로가 혓바닥을 꼬고 영어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이건 잘못된 거라는 거죠. 우리 전통이 지금 그래요."

어떤 사람들은 전통음악을 '모국어(母國語)'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통음악은 '모설어(母舌語)'라고 말한다. '엄마의 국가 언어' 이전에 국가와 상관없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익히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도제교육은 소리를 받아가는 과정으로 '모설어(母舌語)'에 가깝다. 우리 전통음악의 특징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퓨전 음악으로 섞기 바쁘다. 전통음악을 다 이해하고, 정확한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 자본주의 아래 영업적인 시스템으로 과정을 무시하고 우리 음악 방식은 제거한다. 그리고 연주하기 위해 약식화 시키기 바쁘다.







전통음악의 위기와 방향

"전통음악이 점점 약식화 되다보니 우리 축제가 최대로 고민하는 점. 헤드라이너가 없어요. 전주에서 모든 전통축제를 표방하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차 전통음악의 헤드라이너가 없어요. 프로그램을 짤 때 진짜 미쳐버릴 지경입니다.(웃음) 매년 기다려지는 우리 국악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다른 거는 몰라도 이 분은 모셔야 되겠다는 할 만한 연주자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감히 오늘을 기해서 전주와 전북의 전통음악의 위기라고 말하는 겁니다."

단순히 한류 열풍을 위해 전통 축제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1597년에 탄생 했다. 수백년 동안 유럽의 음악 속에서 역사를 간직해 왔다. 확실한 구조가 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었다. 서양의 음악은 구조가 갖춰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음악의 구조는 불합리한 구조여서 유럽의 음악과 같은 길을 쫓아가기에는 불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몇 년 동안을 먹고 살기 급한데다가 일본이 얄미워서 미국만을 바라봤던 과거가 있죠. 그게 잘 못 됐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 까지 왔는데 이제는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해요. 이것을  끊기 위해서 특히 젊은이들이 지켜가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면서 전통의 새로운 부흥을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는 오늘의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 시대 다수의 예술가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구조, 시스템을 갖추고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밀레니엄 세대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말을 하는 일을 경계했지만, 우리 음악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다시 전통과 전북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 수 있도록 믿어주는 것.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그 통로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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