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10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아재'의 탄생
유하의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이휘현(2016-10-17 09:52:44)




요즘 '아재'라는 말이 유행이다.
기존의 기성세대를 비하하며 사용되던 '꼰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어른의 탄생. 그 이면엔 꼰대스럽지 않게 지금의 10대, 20대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려는 '新 중년'들의 의지와, 안쓰러운 뉘앙스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그 소통의 욕망을 긍정해주려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1990년대에 스물 시절을 보낸 지금의 40대들은 집단 혹은 공동체보다 '개인'의 가치를 더 우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서구적 근대의 의미를 이론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구현해 낸 최초의 세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른 세계질서의 재편, 5·18 트라우마 혹은 정치적 부채 의식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 분위기, 본격적인 대중문화 시대의 도래, 그리고 사이버라는 문명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들은 중년이 되었고, 그렇게 아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아재'들이란, 물리적인 나이는 기성세대에 편입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소년으로 남고 싶어 하는 집단적 피터 팬 증후군의 주인공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재들의 바로 윗세대는??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한 때 시인으로 더 많이 통용되었던 유하의 아주 오래된 에세이집이 하나 있다. 나의 애장도서 목록에서 항상 상위를 점하는 책인데 제목이 좀 특이하다.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짐작들 하시겠지만, 이 책은 1970년대에 이소룡이라는 대스타를 선망하며 사춘기시절을 보낸 세대들에 대한 유하의 회고담이다. 지금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재들도 잘 알지 못하는 크리스 미첨, 올리비아 핫세, 진추하 그리고 <썸머타임 킬러>, <원 썸머 나잇> 같은 영화와 팝송이 작가의 동세대 추억을 환기시키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그 아련한 그리움은 유하의 감성적이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통해 빛을 발하는데, 훗날 그가 영화감독이 되어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는 사실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의 영화 버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이 이소룡 세대는 1980년대라는 어두운 터널을 온몸으로 뚫고 나간 정치의 세대이기도 하다. 개인보다는 시대와 공동체의 가치에 몰입한 그들은 기성세대에 편입되면서 청춘시절에 품었던 많은 소명들을 버려야 했다. 절대 선(善)에 가까웠으므로 적당한 타협도 변절로 보이기가 쉬웠을 터. 이 변절이라는 왜곡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 그들은 급격히 보수화되어 갔다. 그 드라마틱한 결과는 지난 대선 결과를 통해 우리가 목도한 바 있다. 그렇게 그들은 '꼰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아재들은? 개인의 욕망에 순수하게 몰두할 줄 알게 된 첫 세대 아재는, 오늘도 여전히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나는 이 아재의 등장이 반갑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재의 등장을 통해 품게 된, 어쩌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진일보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 이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맞다. 좀 오버하기는 했다. 그래도 변화 혹은 격절의 극적인 상황을 겪지 않고 매끈하게 기성세대에 편입한 아재들의 청춘 유통기한은 제법 길 것이라는 게 내 예측이다. 시대가 젊어지면 정치도 젊어진다. 내가 아재의 등장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구 내 또래 중 <'아재' 세대에 바친다> 같은 책 써볼 사람 어디 없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