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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 | 연재 [읽고 싶은 이 책]
지금 여기를 위한 공부, 역사
호모히스토리쿠스
홍성덕(2016-10-17 09:54:56)




역사란 무엇인가? 해묵은 질문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기도 하다. 흔히 역사를 배우거나 가르친다 할 때 과거에 있었던 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중심이 된다. 역사지식은 학습을 통해서 축적된다.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서 역사가들이 써 놓은 역사적 지식을 공부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오류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공부 즉 학습의 대상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관점)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지적 편견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누가 쓴 어떤 책을 통해서 읽을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옛 사건이나 인물들을 학습하기에 앞서 또는 병행해서 해야 하는 것은 '역사' 그 자체에 관한 공부이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역사학 이론서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었을 책이다. E.H 카 이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궁리하였다. 역사학 이론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학습하는 옛 사건과 인물이 그대로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의 사건과 인물로 '동일화'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호모 히스토리쿠스』(오항녕 저, 개마고원)는 '역사는 과거다'에 물음표를 던지고 '지금의 역사다'에 느낌표를 찍은 책이다. 저자 오항녕은 기존의 역사학이 역사를 과거로의 답사에만 머물게 하는 과오를 범한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고 과연 역사가 무엇인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첫째, 역사가 인간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학의 기초, 둘째 역사와 역사공부의 변화 인류가 생각한 역사화 현대의 역사의 비교, 셋째 역사학의 굵직한 테마(기록과 기억, 사실과 해석 등) 분석, 넷째 정치와 역사 그리고 역사수정주의 역사쓰기의 의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역사란 구조-의지-우연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개념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프레임이다. 저자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구조), 사람의 의지와 우연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역사를 구성하는 세 가지의 요소 인 것이다. 마치 "태어나 보니 부모가 '어떤 여자와 남자'인 것과 같이 모든 역사적 사건은 그 사건이 놓여있는 구조 즉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 위에 인간의 의지 여하에 따라 역사는 변하고 바뀔 수 있고, 역사의 산출물 결과는 우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인식은 역사 주체로서의 인간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과 그에 대한 인간의 의지, 반응 그리고 우연히 빚어 낸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구조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자유의지에 의해 구조는 새롭게 변화하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구조와 조건을 분석해야만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우연을 '서로 목적이 다른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이 만나거나, 서로 목적이 같은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이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우연과 필연은 역사학의 해 묵은 질문이다. 저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행위가 '우연'이 만나거나 만나지 못했을 때 우연은 역사에 투영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예측은 우연을 필연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저자는 '역사는 경험이고 기억이며, 역사는 경험에 대한 기록, 전달, 이야기이다'라고 설정하였다. 역사는 남기고, 전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며 이들 범주에 따라서 다양한 역사기록이 생산된다. 그렇게 남겨진 역사기록은 동일하지 않다. 저자의 견해는 역사가 역사의 주체인 나, 사회, 국가 등에 의해 그 위계가 결정되지 않으며 만물은 변한다는 동질성과 유한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국사와 진보사관이 역사를 왜소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국민국가사로 한정된 국사교육과 근대를 진보한 사회로 목적적으로 이해하는 진보사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국민국가 이전에 개인, 지역사회의 역사는 존재하며 근대로의 진보는 새로운 형태의 구조를 만들어내 그 삶의 질이 반드시 근대적으로 발전적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자 이전의 사회에서 역사는 기억에 의존하였다. 기억이 문자로 표현될 때 기록이 되며 이 기록으로 역사를 연구한다. 저자는 기억과 기록은 검증되어야 하며, 역사적 사실과 해석 그리고 주관과 객과는 배타적이지 않다고 하였다. '역사는 사료로서 이야기 한다'는 기본 명제에 대해 저자는 기역을 저장기억=기록행위, 사료와 기능기억=역사서술로 구분하고 저장기억과 기능기역의 비판적 과정을 통해 역사화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모든 역사는 그 시대의 특유한 성격(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역사성 역시 변화한다. 역사성에 대한 이해는 때문에 그 시대상을 전제해야 한다. 시대착오와 현재주의 오류는 현재의 관점으로만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실학이 근대의 상징으로 거론된 것은 '근대화를 절대 선으로 생각하는 역사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에 범한 현재주의 오류의 사례이다.
저자는 끝으로 '여러 역사' '작은 역사'를 주목하였다. 숙명과 같은 현재 한국 역사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스스로의 역사로 '여러 역사'와 '작은 역사'를 주장한 것이다. 이는 국가권력에 동원될 수 있는 국사의 횡포를 막는 것이며 '작은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큰 역사'는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저자는 역사학을 '자기 역사 쓰기'에서 출발할 것을 제안하였다. 역사는 인간의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는 중요 인물, 거창한 사건 등이 아닌 일상의 기록 남기기로부터 시작하고 그곳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직접 쓰기, 연대기부터 쓰기, 여럿이 함께 쓰기, 화양연화로 마무리 짓기 등을 제안하였다.
인간은 역사를 떠나 살 수는 없다.『호모 히스토리쿠스』는 역사 속 인간, 인간 속 역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이다. 서구역사 이론에 집중된 역사이론이 아닌 인간 중심의 역사이론이기도 하다. 역사는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산 자의 것으로 지금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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