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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성과주의 계급사회가 조작해낸 간첩들
<자백>
김경태(2016-11-17 14:13:51)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눈의 띠는 성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조작도 불사한다. 이 지점에서 간첩 조작 사건은 정부의 '성과 연봉제' 시행이라는 동시대의 논란 많은 현안과 공명한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성과주의는 계급사회를 추동하기 위한 훌륭한 채찍이다. 감독은 간첩 조작 사건을 들춰내며 이념갈등에 편승한 국정원의 만행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추악한 원리를 밝혀낸다. 계급사회를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은 그 바닥을 지키며 맹목적인 성과주의의 먹이가 될 힘없는 타자를 호명한다.

이상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전말로, 국정원의 그 모든 조작 행위를 밝혀내는데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영화의 감독이자 '뉴스타파' 기자인 '최승호'이다. 그는 그 사건과 관련된 이들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중국 연길까지 가서 유우성의 지인을 만나거나 공안국에서 검찰이 제출한 문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다.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국정원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법원 근처에서 잠행하고, 자신을 외면하는 그들에게 끝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며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한편, 유우성에 이어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던 탈북자 '한준식'은 자살을 하고, 국정원은 더 이상 항변할 수 없게 된 그를 간첩으로 규정해버린다. 나아가 그는 과거로 돌아가 1974년에 벌어졌던 재일교포 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과 통시적으로 겹쳐 놓으며, 이 문제가 비단 오늘날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정부가 수 십 년간 자행해온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양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감독은 유우성 사건 당시 국정원장으로 복무했던 '원세훈'과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책임자였던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기춘'에게 그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한다. 심지어 원세훈은 웃어넘긴다. 그냥 '미안하다'라는 말 한 마디 하는 게 그들에게는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한국과 같은 계급사회에서 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이들은 자신보다 '아래' 계층에 있는 누군가에게 사과를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온전히 복속되지 못한 채 변방 중에서도 변방에 머물러 있는 약자인 탈북자일 경우에는, 그 요구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음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사과와 용서는 서로가 서로를 대등한 인간으로 마주할 때에만 가능한 정서적 교류이다.

한준식과 함께 조사를 받았었던 친구가 익명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감독과 인터뷰를 한다. 더 이상의 개입을 주저하는 그는 국정원 직원들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그들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남긴다. 조작 책임자들은 사과를 회피하지만 오히려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탈북자는 그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뜻하지 않게도 그 친구는 이 한국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국정원 직원들은 행여나 있을지도 모를 간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 국정감사에서 어느 국회의원은 고정 간첩 2만 명 설을 제기하며 법무부장관을 채근한다. 장관은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한다.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눈의 띠는 성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조작도 불사한다. 이 지점에서 간첩 조작 사건은 정부의 '성과 연봉제' 시행이라는 동시대의 논란 많은 현안과 공명한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성과주의는 계급사회를 추동하기 위한 훌륭한 채찍이다. 감독은 간첩 조작 사건을 들춰내며 이념갈등에 편승한 국정원의 만행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추악한 원리를 밝혀낸다. 계급사회를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은 그 바닥을 지키며 맹목적인 성과주의의 먹이가 될 힘없는 타자를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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