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6.12 | 연재 [백제기행]
‘거대한 틈’, 지금을 따라 여행하며 들을 수 있는 귀
180회 백제기행_도시문화기행 열 여덟 [순천]
(2016-12-16 16:13:46)




저 사람은 나에게 흑두루미처럼만 살다 가자 했다

매서운 시베리아 벌판을 날더라도 굴하지 않고

먹고 사는 일보다 더 커다란 날개를 지녀보라고

저 사람은 나에게 흑두루미처럼만 위풍당당하게

이 땅의 고뇌를 내려놓고 살다 가자, 살다 가자 했다


안개가 자욱했지. 전주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순천행. 흑백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 모든 색 있는 시간들이, 그리고 공간이 안개에 젖어 들어가 희부윰해지고 있었어. 나는 하늘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중이라고 여겼지. 그래, 하늘도 말을 하곤 해. 비나 벼락, 천둥, 무지개, 바람, 혹은 구름과 이슬, 혹은 우박, 서리, 싸락눈, 안개…… 등의 형태로. 그 메시지를 듣는 귀를 우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 자기 안의 '거대한 틈' 속에 말이야.

틈을 열어 우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순천 드라마 촬영장>이었어. 십일월 비 끝에 여전히 안개는 자욱했고, 자욱한 안개 속에서 사람들이 '재구성해놓은' 과거의 시간이 우리를 끌어들였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순천 읍내 거리, 그 시대 봉천동이라고 하는 서울 변두리 달동네에 당도한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공간을 실컷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어. 까끌한 안개가 흑백의 시간과 공간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것 같았지.
순천시 비례골길에 있는 촬영장은 제법 그럴싸했어. 추억의 음악실 '고고장'과 이발소 등. 오밀조밀하니 추억의 공간들이 참 '볼 것 있게' 펼쳐져 있는 거야. 빛바랜 상점 간판과 담벼락을 지나가다 보면 세월의 온기가 전해져왔지. 구경에 나서기 전 관람객들은 입구에서 교복과 학생모를 빌려 입을 수 있게 되어 있었어.
그래서인지 오래된 거리와 골목을 누비는 나이 든 학생들이 어디서나 눈에 띄었지. 교복을 입지 않은 우리는 같은 관람객이면서도 관찰자 시점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입장이어서 더 흥이 났지. 공간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이 공간 안의 시간은 멈춰 있지만, 이 곳을 다녀가는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게 해주거든.
소도읍 거리를 지나 언덕 위 봉천동 가파른 달동네로 올라갔어. 서울 산동네 서민의 삶이 이곳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었지. 어쩌면 좁다란 계단을 따라 그들의 꿈과 야망, 하루치의 목숨을 움켜쥐고 있었을 슬픔도 함께 옮겨졌는지도 모르겠어. 사람이 살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조그마한 단칸방들에서 가슴 한 켠이 찡해지는 것이 있었거든. 투박한 낙서가 새겨진 계단과 연탄재가 있는 골목길, 한 평 남짓한 마당 빨랫줄에 걸려 있는 몇 빨래들. 그래, 모두가 한 평이었어. 어쩐지 비어드는 빛도 한 평, 목숨도 한 평, 사는 길도 한 평뿐이어서 배고픔도 한 평, 눈물도 한 평, 영원히 사랑하자는 맹세도 한 평일 것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한 시대를 뒤로 하고 우리는 또 <문화의 거리>로 발길을 돌렸어. 봉천동의 한 평짜리 하늘과, 한 평짜리 빗방울이 내내 따라 붙는 것 같았지. 순천부 읍성이 있던 자리에 자리잡은 <문화의 거리>에 도착했을 때, 안개는 이미 걷혀들고 있었어. 대신 사람냄새 가득한 거리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진풍경이었지. 골동품이 가득한 상점이라든지 아기자기한 가게들, 앨리마켓들이 즐비한 거리, 어딘지 서울 인사동과 비슷하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황금빛 은행나무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좌우로 숨은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있어 실로 '호남 사거리'라고 불릴 만했지. 주변에는 향교와 서원이 순천의 역사를 간직한 채 숨을 쉬고 있는 곳. 
한창 역사와 문화를 꽃피우는 거리에서 우리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공동체 <디투>를 만날 수 있었어. 문화 소외지역의 골목길과 원도심 활성화 방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실질적인 활성화가 될 수 있게끔 방법을 모색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디투. 작은 한옥집을 수리해 만든 문화 공간이었어.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어 예술 공연을 할 때 처음엔 주민들과의 불화가 심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사람됨'의 노력을 보이므로 해서 지금은 되려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는군.
디투는 지역과 공간, 환경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제안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며,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추구해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거야. 2015년에는 대한민국 공간 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도 해. 지역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비롯해서 주민들과 커뮤니티 할 수 있는 공간. 좀더 친근하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화 예술을 경험하며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거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뜻일 테니까. 그것은 '흐름'이야. 나에서 우리로, 그리고 전체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의.

<순천만>은 참 광활했어. 남해안으로 돌출한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있는 만이야.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해안하구의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어 있는 곳이기도 해. 이 곳은 수많은 철새와 갯벌에 사는 작은 생명들의 보금자리로, 우리나라 연안습지로는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었어. 한마디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지.
순천만은 문화의 거리에서 본 은행나무와는 또 다른 황금빛이 펼쳐져 있었지. 갈대들 말이야. 용산 전망대까지 올라가 바라본 갈대밭은, '하늘의 정원'이라는 별칭답게 정말 멋진 곳이었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넓은 면적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 아마. 순천에 도착해서부터 내내 함께 동행해준 김성호 교수님의 찬찬한 안내를 받으며, 간만에 긴 갈대밭 걷는 일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시간이야.
아! 정말, 나・를 내・려・놓・았・어. 사실 우리는 누구나 다 본래 그대로 놓고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놓고 쉬고, 그리고 편안하다는 것까지도 다시 놓고, 나중에 놓는다는 것까지도 놓게 되면 그것이 최고의 평화가 아닐는지. 가질 것이 없으니 벌릴 것이 없고, 버릴 것이 없으니 가질 것이 없는 것. 순천만의 갈대밭이 내게 그 평화로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었나봐.
하구 염습지와 갯벌로 이루어진 순천만 일대에 갈대밭만 무성한 건 아니야. 멀리서 보면 갈대밭 일색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물억새, 쑥부쟁이 등이 곳곳마다 크고 작은 무리를 이루어 자리잡고 있어. 흑두루미뿐만 아니라 흰뺨검둥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검은머리물떼새, 재두루미 등 국제적인 희귀조이거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들이 날아드는 곳으로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 조류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 희귀조류 외에도 도요새, 청둥오리, 큰기러기, 혹부리오리 등 220여 종류의 새들이 이곳 순천만 일대에서 월동하거나 번식한다는군.

이학박사인 김성호 교수님은 어쩌다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만났다고 했어. 머리는 흰데 몸체와 날개는 검은 색을 띠고 있는 흑두루미. 독수리처럼 위용이 있으면서도 격조가 있는 겨울 철새에게 마음을 빼앗겨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와 순천만에서 살아온 게 십 년이 다 되어간다고. 그래서 그런지 흑두루미에 대해 얘기하는 교수님의 어투에는 약간의 흥분과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었어. 십여 년 동안이나 함께 해온 새에 대해 하나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사랑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었지. 저렇게 온 세월로.
흑두루미는 가족애가 무척 강하다는군. 서너 마리로 구성된 가족들이 모여 오십여 마리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생활을 한다나봐. 시베리아에서 살다가 겨울이면 순천만으로 건너온다는데, 그 먼 여정을 죽지 않는 한 단 한 마리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지켜서 끌고 온다니! 흑두루미의 건장한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나는 그 끈끈한 가족애에 홀딱 반하고 말았어. 갯벌의 갈대밭, S자형 수로를 다 안고 있는 순천만에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지.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과 S자형 수로는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지.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일이 매우 중요하듯 받아들이고 경계를 놓는 일, 쉬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해. 여여하게 먹고, 여여하게 배설하고, 여여하게 잠자듯 순천만은 모든 것을 여여하게 받아들이고, 여여하게 놓고, 여여하게 살고자 하는 것 같아. 사람들이 단순히 갈대밭만 보고 갈 때에도 원만하고, 자연스럽고, 깊고, 아름답고, 진실하고, 이익되게 참 많은 생명들을 보듬어안고 있으니 말이야.

<마당>의 11월 '백제기행'으로 순천에 다녀온 건 참 잘한 일이야. 순천만 갈대밭에 꼭 그 빛깔로 내리비치던 늦가을 햇빛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는 순천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나마 가슴에 안고 갈 수 있다는 것도 참 뜻깊고 의미가 있어. 
그래, 안개는 걷힌 지 오래였지만, 흑두루미의 양 날개를 스치고 갔을지도 모를 햇빛과 바람이 우리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옛 사람도 따로 없고, 옛 물도, 옛 산도 따로 없는 거라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육신을 기준으로 옛날과 지금과 미래를 규정하는 말들을 해놓은 것일 뿐. 해서 우리는 오직 '지금'이라는 역사 속에 살 수 있는 거야. 흘러가는 것도 없고 흘러오는 것도 없어. 그저 어제의 역사와 내일의 역사를 지금이라고 하는 역사 속에 두고 있는 거겠지. 마음이 그대로 묵묵히 작용하면서 모든 생명의 실상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일 테니 말이야.
  인간과 문화, 그리고 자연이라는 것. 벌레의 세계든 짐승의 세계든, 인간의 세계든 우주든 그 섭리의 살림살이는 다 똑같을 거야. 자기 안에 '거대한 틈'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지금'을 따라 여행하며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거야. 오늘 우리가 들어갔다가 온 순천의, 백제의 '지금'을 말이야.


전남 순천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순천종합버스터미널로 갈수 있다. 하지만 중간 경유지가 많아서 소요시간이 길고 요금 또한 비싸다. 기차 이용을 추천하며 무궁화호의 경우 1시간 15분, ktx는 55분에서 1시간, 새마을호는 1시간 5분정도가 소요된다.


먹을거리
순천엔 남도음식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메뉴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 많다. 꼬막이 나오는 벌교가 근거리에 있어 '꼬막정식'이 인기가 많다. 또 순천의 청정 갯벌에서 서식하는 '짱둥어탕'도 순천에서 즐길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 갈대촌 : 메인 메뉴는 물론 모든 반찬까지 국내산을 고집하는 건강한 음식점으로 '짱뚱어탕'과 '꼬막정식' 모두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순천만국가정원 입장권 할인업소로 입장권을 제시하면 좀 더 저렴한 할인가로 맛 볼 수 있다.
전화 : 061)741-2009
주소 : 전남 순천시 대대동 1062
영업시간 : 매일 09:00~21:00 연중무휴


‧ 원조동경낙지 : 순천 문화의 거리에서 가깝게 위치한 동경낙지는 낙지전골만을 파는 가게이다. 낙지전골을 시키면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비빔그릇과 함께 밥을 준다. 김 가루를 넣어 비벼먹고 후식으로 나오는 식혜까지 마시면 든든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전화 : 061)755-4910
주소 : 전남 순천시 행동 91-1
영업시간 : 11:00~21:30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 순천만국가정원 :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한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 도사동 일대 정원부지 112만㎡(34만 평)에는 나무 505종 79만 주와 꽃 113종 315만 본이 식재됐다. 순천만 정원과 순천문학관 구간(4.64㎞)을 오가는 소형 무인궤도 열차(PRT)도 운행한다.
문의 : 1577-2013
주소 : 전남 순천시 국가정원1호길 47(오천동)
이용요금 : 어른 8,000원 / 청소년, 군 · 경 등 6,000원 / 어린이 4,000원


‧ 낙안읍성민속마을 : 순천시에서도 내세우는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지역명소로 삼국시대 이전 마한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며 토성을 쌓았던 곳이다.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석벽으로 개축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옛 동헌과 객사를 비롯해 수백가구의 주택들이 온전히 남아 있다.
문의 : 061-749-8850
주소 :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30(낙안면)
이용요금 : 어른 4,000원 / 청소년, 군 · 경 등 2,500원 / 어린이 1,500원


‧ 선암사 :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선암사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연과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에 속한 보물급 문화재만 해도 승선교·삼층석탑·대각암 부도·대웅전 등 총 9개나 이를 정도다. 사찰풍경사진으로 자주 접하는 커다란 무지개 모양의 보물 400호 승선교와 선암사 강선루에 이르는 숲길 양옆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들어서 있어 사시사철 운치를 더해준다.
문의 : 061-754-5247
주소 :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802
이용요금 : 어른 2,000원 / 청소년 1,500원 / 어린이 1,000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