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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불협화음 속에서 사랑을 조율하다
<라라랜드>
김경태(2017-01-20 11:16:14)



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라라랜드'에 정착한 '미아(엠마 스톤)'는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하며 좌절한다. 재즈의 인기가 시들어버린 시대를 한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돈벌이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내키지 않는 캐롤송을 연주하며 자괴감에 빠진다. 그 둘은 우연인 듯 필연처럼 몇 번의 까칠한 만남을 거듭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그 완벽한 우연은 조금씩 운명이라는 외양을 띠기 시작한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꿈을 독려하는 과정 중에 단단해진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직접 쓴 극본으로 연극 무대에 오를 것을 조언하고, 미아는 정통 재즈를 고집하는 세바스찬의 열정에 감탄하며 그가 자신만의 재즈바를 운영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처음에 미아는 편안한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재즈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세바스찬의 표현대로, 원래 재즈는 악기들끼리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며 그러다가 어느새 타협하며 조율을 하는 불편한 음악이다. 재즈는 절대적 화음이라는 명목으로 악기들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는다. 악기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재즈와 닮아있다. 사랑은 결코 달콤하거나 안락하지 않다. 사랑 안에서 연인들은 각자의 차이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충돌을 회피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의 지난한 반복 속에서 운명이 되어 간다. 알랭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르는 이행의 과정"이기에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다.

세바스찬은 자신의 오랜 꿈을 접고 친구의 밴드에 키보디스트로 합류해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투어를 다닌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이에 미아가 강한 실망감을 드러내자 그 선택은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현실 순응적 행복이라는 미명하에 서로를 서로의 삶 속에 구속시켜서는 안 된다. 사랑은 불확실한 미래를 감내하면서 서로의 꿈을 위해 현실을 견뎌내야 한다. 때마침 야심차게 준비한 일인극마저 관객들의 혹평을 받자 미아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서로가 꿈을 포기하는 순간, 사랑마저 끝을 향한다. 사랑의 첫 번째 선언이 종결된다.

캐스팅 관련 전화를 받은 세바스찬은 황급히 미아를 찾아가 설득한다. 미아가 꿈을 되찾자, 그들은 서로를 언제나 사랑할 것이라고 수줍게 고백한다. 사랑의 두 번째 선언이다. 그러나 5년 후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헤어진 채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유명 여배우가 된 미아는 세바스찬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해 한 아이를 키우고 있고, 세바스찬은 혼자 지내며 재즈바를 운영한다. 과연 이후에 그들은 몇 번이나 더 사랑의 선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뮤지컬이라는 이 영화의 정체성은 마지막 시퀀스에서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미아는 우연히 남편과 함께 세바스찬의 재즈바를 방문한다. 피아노 앞에 앉은 세바스찬은 미아와 눈이 마주친다. 조명이 하나 둘씩 꺼지며 그 둘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화면 속에서 사라진다. 이제 그 둘만을 위한 사랑의 무대가 펼쳐진다. 그가 그녀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멜로디를 연주하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간다. 후회와 미련이 남아 있던 함께 한 순간들이 그 음악에 맞춰 하나씩 다르게 쓰인다.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수정된 추억들은 지난 사랑을 아름다운 춤의 향연 속에서 가슴 시리게 애도한다. 동시에 완벽한 화음이라는 이상적인 사랑은 오로지 뒤늦은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헤어진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중한 꿈을 찾아줬기에 웃을 수 있다. 서로를 운명이라 믿은 그들은 사랑을 선언하고 또 선언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에 도달했다. 거기에 방점을 찍는다면, 비록 운명이 되는데 실패했더라도 새드엔딩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의 우선적 목적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불협화음을 겪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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