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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 | 연재 [수요포럼]
부산 산복도로에서 전주의 미래를 보다
168회 수요포럼
(2017-03-07 12:40:33)



도시재생의 개념은 재건축, 재개발과 다르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전면 철거와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도시재생은 재활용과 보전, 재생을 기본으로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막대한 비용과 환경 파괴의 우려가 있다면, 도시재생은 생기를 잃어가는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고 그 안의 사람들을 품어낸다. 마치 사람 하나를 다시 살리는 것과 같다.
도시재생 전문가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은 원래의 것들을 존중하고 다시 살려가면서 힘을 북돋우고 활성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산을 중심으로 30년 가까이 도시를 살펴온 그가 ‘부산 산복도로 모퉁이에서 전주를 바라보다’를 주제로 수요포럼을 찾았다. 원도심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하고자 하는 전주에게 그는 어떤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역자산과 공공의 역할
21세기 주목받는 도시는 다음과 같다. 내부혁신을 끊임없이 거듭하는 도시, 쇠퇴하던 도시를 창조적으로 회복시킨 도시, 원(原) 역사와 경제를 연결하며 경제 성장을 이루어 가는 도시, 환경을 테마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저감시대를 리드하는 도시. 강동진 교수는 “전주는 원래의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이를 새로운 경제 시스템과 연계해 나간다는 점에서 세 번째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도시들의 공통점은 강한 도시라는 점”이라며 “객관적으로 타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전주는 분명 강한 도시”라고 덧붙였다.
“도시는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 하지만, 반면에 우직한 고집 같은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재생은 지역자산과 공공역할, 이 두 가지 논점이 중요합니다. 지역자산을 소중히 생각하고 앞서나가는 도시들을 보면 복원과 회복, 보호와 재활용, 치유와 도닥거림, 자기혁신과 재창조, 이런 개념들이 개발이나 신축, 개개발이나 재건축 보다 훨씬 당연한 말로 사용됩니다.”
지역자산은 문화재, 근대건축물, 산업유산, 기념적 장소, 흔적 등으로 구성되는 물질유산과 인물, 기억, 사건, 분위기, 맥락, 활동 등을 포함한 비물질유산이 있다. 강 교수는 “지역자산은 그 지역에서 지켜나가야 할 것, 다른 도시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라며 “그 지역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자산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자산으로 돈을 벌기 보다는 문화를 통해서 경제를 연결시키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로 봐야 합니다. 역사․문화를 화석화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마케팅을 하고, 경제적 효과를 얻는 거죠. 당장은 지역자산으로 인한 변화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차이가 많이 벌어질 것입니다.”
공공의 역할은 좀 더 명쾌해질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공공이 지나치게 비대하며, 더 큰 문제는 공공이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왕 중심의 국가였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공공이 너무 강합니다. 리더의 권한을 축소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강 교수는 1997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취임하면서 국가 이미지전략으로 제시한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를 예로 들었다.
“‘쿨 브리타니아’ 캠페인은 일종의 멋진 영국 만들기입니다. 하드웨어 중심이 아니라 문화사업, 정보산업으로 가야한다는 거죠. 그래서 ‘텔레토비’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올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을 통해 영국의 산업 시스템이 전환되는 계기가 됐죠.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개관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쿨 브리타니아’의 대표적인 성공사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1980년 이후 기능이 정지된 화력발전소로, 이 일대는 심각한 오염지대였다. 영국 정부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멈추던 발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밀레니엄 브릿지라는 보행교를 놓았다. 그 결과 ‘세인트 폴 대성당-밀레니엄 브릿지-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세계적인 관광코스가 됐다. 다리 하나가 지역을 바꾼 것이다.
“우리도 똑같이 보행교를 만들지만, 지역은 바뀌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밀레니엄 브릿지는 보행자 전용 다리로, 도시 안쪽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단순히 땅과 땅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공간을 결합시켜 주는 거죠. 부산도 보행교를 2개나 만들었지만, 육교 역할만 할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보통 하천관리과에서 다리를 만들죠? 협의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집단이 모여서 토론하고 협상해야 는데, 담당 과에서는 예산을 빨리 집행해야 하니까 담당 공무원 한두 명이 일을 끝내는 게 현실이죠.”
강 교수는 “공공은 작아지고, 그 대신 명쾌하고 강해질 필요가 있다”며 “공공의 역할이 줄어들면 NGO(비정부기구), NPO(민간 비영리 단체), 일반 시민들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익적인 일을 많이 하는 시민계급의 숫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현실은 공공이 모든 걸 결정하고, 공공에 의해 도시가 움직이죠? 만약 공공이 작아지고 민간이 커지면 그만큼 시너지 효과는 늘어날 것입니다. 그 시너지 효과를 잘 모르고 산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에요.”


전주에서, 부산을 보다
“부산과 전주는 성격이 좀 다르죠. 부산은 역사적으로, 도시지형적으로 약간의 조각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왜구를 막았던 호국도시, 군사도시였고, 한국전쟁의 역사를 품은 피란수도였죠. 35만이었던 부산이 전쟁이 끝나고 나니까 100만이 넘었습니다.”
항구가 있어 건장한 아버지는 지게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 어머니는 빨간 고무다라이만 있으면 자식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 또 공장이 많아 매달 5만 원씩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그 많은 수가 먹고 살아야 하니,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혼란과 복잡함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부산은 혼종성이 강하고, 도시가 조각보를 닮았다고 합니다. 부산 사람들 보면 시민운동도 세게 하는 반면에 보수적인 사람도 많아요. 여러 사람이 섞여서 여러 가지 색을 내는 거죠.”
그는 “부산의 구성과 변화가 피동적이었던 능동적이었던 간에 분명 부산은 21세기 대한민국 발전의 근거이자 기반을 제공했다”며 “그 속을 새로운 에너지와 발상으로 채우기 위해 창조와 재생을 택했다”고 말했다.
광복로 시범 가로조성사업은 부산 최초의 지역민과 함께 한 공공사업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문화관광부 거리 문화․공간 디자인 개선사업에 선정돼 당초 옥외광고물 교체가 목적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들 지적에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일자형태의 도로를 S자 형태로 바꾸고 일방통행으로 바꾸면서 도로 폭을 줄이고 인도를 늘렸다. 광복동 일대 400여 명의 점주들이 참여하는 ‘광복클럽’도 생겨나 광복로 활성화에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과 벽화가 시작된 마을이나 마찬가지인 안창마을, 전국 최초의 만화거리로 조성된 보수동 헌책방골목 등도 도시 재생의 성공모델로 여겨진다.
그러나 구도심이 문화예술로 활성화되면 점포의 임대료가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기존의 주민들을 몰아내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은 부산에게도 고민이다. 낡은 목욕탕을 대안문화공간으로 활용해 화제가 됐던 광안동의 대안공간 반디는 건물이 재개발업자에게 팔리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어느 곳이나 고민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스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신 공공이 나서서 협정을 맺는 등의 형식으로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요. 문화예술가들이 한 공간을 활성화시키고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 점차적으로 도시 전체가 문화화되고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규제와 방치가 도시를 살린다
“제가 부산에 가서 맨 처음 보존운동을 한 게 영도다리입니다. 영도다리가 도개(跳開)를 할 때 2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다리를 드는 곳이 몇 군데 없어요. 영도다리를 드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인데, 그걸 인식하지 못하죠. 저는 고철도 역사적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산에 우리나라 최초 기술로 제작한 크레인이 있습니다. 기계유산이나 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큰데, 혹시라도 고철 덩어리로 여기고 녹여버릴까봐 걱정이에요. 역사라는 것은 남기면 남길수록 장점입니다. 10, 20년 된 거, 무엇이든지요.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가진 후대가 재활용했을 때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미군 부대인 하야리아 부대가 사라지고 탄생한 부산시민공원은 90년대 초반부터 건축물 보존운동이 있었다. 원래 계획은 건물 하나만 남기고 없앨 계획이었지만, 시민들의 움직임으로 설계를 변경해 30동 정도의 건물을 남겼다. 그는 “현재 모든 문화사업이 보존된 건물 일대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자칫 전국에 있는 초지가 있는 공원을 만들 뻔 했지만, 다행히 정체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주가 고도제한지구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도시는 규제가 무척 중요합니다. 당장은 재산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미래를 내다볼 때 사실 그렇지 않아요. 전주도 옛날에 지구단위 계획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한옥마을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도시재생이라고 하면 공공이 내려주는 돈만 가지고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이름만 재생으로 바뀐 거지 옛날의 재개발, 재건축과 같아요. 그렇다면 돈 없는 재생 방법은 없느냐?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옥보존운동은 한옥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한옥을 지키는 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뭔가 자정운동이 있지 않으면 진짜 재생은 일어날 수 없어요.”
그는 “도시재생은 자생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자각이나 재발견으로 일어나야 한다”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 도시는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주가 가야할 방향, 미래적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도시든 재생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하는 개발은 금방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도시 미래를 번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덧붙여 차별성은 보편성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하는 순간, 그 지역이 가진 스타일은 없어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전주는 전주가 가진 것, 전주만의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주가 가진 신의 한수는 한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버려 둬야 한다고 말했다. 생각이 날 때까지 방치하라고 했다. 시간을 벌어주는 것. 그것이 재생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했다. 묵혀둔 장이 맛있듯이, 묵혀두면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자본,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시대에 맞는 것들로 채워갈 것이다.


과거 도시개발이 가난극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시기가 있었다. 개발지향적인 도시개발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도시를 다루는 데 있어 배려와 절제는 없었다.
그는 “도시재생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방치는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다. 지켜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시대에 맞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든 사람이 입 모아 말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바로 이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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