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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사랑과 인권을 넘어 공동체의 의미를 묻다
<위켄즈>
김경태(2017-03-15 09:42:34)



이동하 감독의 <위켄즈>는 창단 10주년을 맞이한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G-Voice'의 공연준비 과정을 중심으로, 그 단원들의 커밍아웃과 연애라는 내밀한 이야기에서부터 인권운동과 연대라는 정치적 화두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는 게이 다큐멘터리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합창단을 다룬 영화인만큼 그들이 직접 만든 곡들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뮤지컬 장면들이 등장하며 정서적 몰입도를 높인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지보이스를 하나의 견고한 공동체로 엮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영화는 혈연과 지연, 학연이라는 귀속적 특징에 속박된 채 운신의 폭이 좁아진 공동체의 본래적 의미를 탐구한다. 그런 차원에서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2011)보다는, 차라리 <우리 학교>(2006)나 <60만번의 트라이>(2014)와 같은 재일 조선인 공동체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닮아있다. 이 두 영화는 일본에서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정도로 민족성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조선인 학교 학생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들이 정작 그 민족성에 점차 둔감해져가는 고국의 젊은이들에게 뉘우침을 주려는 것은 최종적 의도가 아니다. 대신 그러한 공동체의 출발점은 민족주의라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지금 내 옆을 지키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위켄즈> 역시 동성애자의 인권을 넘어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성정체성은 선택이 불가능하지만, 동성애자들은 민족 공동체처럼 출생과 동시에 동성애자 공동체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특정한 동성애자 공동체를 선택해야만 그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더욱이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은 스스로 사회적 약자, 즉 소수자로서의 집단적 가시성에 몸을 맡기는 용기를 요구한다. 결국 지보이스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게이'라는 공통점으로 결집된 하나의 소수자 공동체이다. 그 소수자성을 기반으로 집단적 목소리를 내며 그것이 유발하는 모든 사소한 감정들이 그들의 결속을 돕는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게이다움'을 규정하고 그것을 공유하며 가르친다.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겨울에도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으며 민족성을 지켜내고자 하듯, 지보이스의 게이들은 여장을 한 채 춤을 추거나 게이들의 일상과 역사가 담긴 노래들을 함께 부르며 그 게이다움을 지켜낸다.

지보이스의 외형은 다층적인 결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우선 노래를 부르는 취미 공동체이자, 그 안에서 커플이 함께 하거나 같이 김장을 담그기도 하는 가족 공동체이며, 연습에 지각하면 꾸지람을 받는 훈육 공동체이자, 호모포비아에 맞서며 집회 현장에서 연대하는 정치 공동체이다. 어느새 그 게이 공동체를 이끄는 동력은 게이보다 공동체에 방점이 찍힌다. 게이와 노래라는 공통점으로 묶였지만, 그 본질은 이해관계를 떠난 서로를 향한 진심이다. 하물며 진부한 커밍아웃 스토리가 재차 유효성을 찾는 것도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보이스는 너무나 원시적인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아련한 공동체의 향수에 젖는다. 누군가에는 실제로 자신이 속해 있는 어느 공동체와 겹쳐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실존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다. 그동안 공동체적 유대감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던 이들에게도 유사한 효력을 발휘한다. 공동체는 언제나 상실해버린, 그래서 되찾아야만 하는 낙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속 깊은 감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은 동성애자들이 소수자로서 받는 사회적 억압의 불합리함에 대한 공감을 넘어 순수한 공동체에 대한 본원적 갈망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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