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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익숙한 가족과 낯설게 마주하기
<토니 에드만>
김경태(2017-04-28 10:24:56)



독일에 사는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우스꽝스러운 가짜 치아를 끼며 처음보는 택배 기사까지 놀릴 정도로 장난을 좋아한다. 또한 늙고 병들어 걷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반려견이 집밖에서 잠들자 그 곁에 누어 지켜줄 정도로 정이 많다. 반면에, 루마니아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빈프리트의 눈에는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오로지 업무에만 매진하는 딸이 그저 안쓰럽다. 그는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딸을 만나기 위해 루마니아로 온다. 그러나 때마침 중요한 계약의 성사를 눈앞에 둔 이네스는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딸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을 고용해야겠다는 농담을 하며 일에 파묻힌 그녀의 삶을 비꼬는 농담을 던지며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결국 매사에 부딪히던 그들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헤어진다.

이네스는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무적으로 대한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루마니아의 고질적인 빈부격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는 의뢰 회사의 요구에 따라 자동화 시스템을 위한 불가피한 대량 해고를 해야 하는 악역을 대신 맡아야만 한다. 그녀에게 그것은 자신의 당연한 업무이므로 윤리적인 고민 따위는 안중에 없다. 한편,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빈프리트는 가발을 쓰고 예의 그 가짜 치아를 끼운 채 '토니 에드만'이라는 가명으로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다. 이네스는 얼떨결에 그 역할 놀이에 동참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직업을 인생 코치에서 독일 대사로, 또 딸의 사업 파트너로 바꿔가며, 무겁고 부담스러운 아버지의 이름을 버린 채 딸의 일상에 개입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입장에서 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그는 담담한 그녀와 달리, 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것도 큰 부침으로 다가온다.

이네스는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가식적인 삶이 짓누르는 한계에 직면한다. 힘겹게 등 지퍼를 채웠던 드레스가 갑갑해서 벗으려고 하지만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초인종이 계속 울리자 그녀는 상반신을 노출한 채 급히 문을 연다. 결국 속옷까지 모두 벗어 던지며 그 파티의 콘셉트를 나체로 만든다. 충동적이고 일시적일지라도, 그 모든 겉치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애달픈 몸부림이다. 그것은 그녀의 견고했던 세계가 아버지로 인해 조금씩 침식해 들어간다는 신호이다. 맨 먼저 찾아 온 친구에게 옷을 모두 벗지 않으면 파티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친구는 옷을 벗는 대신 그녀의 집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그 친구는 아직 그 속물적인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대한 털로 뒤덮인 누군가가 찾아온다. 그가 뒤집어 쓴 것은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의식에 사용되는 불가리아의 전통 가면이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그 털복숭이는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나간다. 다른 이름과 얼굴로 딸의 세계에 들어왔던 아버지는 이제 얼굴조차 없는 완전한 타자가 되어 침입해 온 것이다. 이네스는 그가 아버지일거라고 직감하며 뒤따라간다. 그녀는 거리로 달려가 그 털복숭이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안긴다.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은 거기에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속 깊은 포옹을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이네스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독일로 돌아온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대화 도중에, 그의 주머니에서 가짜 치아를 꺼내 자신의 입안에 넣는다. 그것은 인생을 즐기며 여유롭게 보내기 위한 장난감을 넘어, 친숙한 자신을 스스로 낯설게 하는 도구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부녀 사이의 관성적 친밀함은 그렇게 서로를 낯설게 하면서 재고된다. 그럼으로써 관습화된 역할과 의무를 강조하는 기존의 가족을 다르게 이해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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