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5 | 연재 [수요포럼]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
171회 수요포럼 : 강우근 생태연구가
(2017-05-19 14:50:29)



이번 수요포럼은 단순히 놀이보다도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연과 더불어서 생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강우근 자연놀이 연구가는 하나의 단서로 들꽃을 이야기한다. 들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강우근 씨. 너무 쓸모있는 것들만 찾는 요즘, 들꽃이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하나하나 풀어나가 본다.



자연을 회복시키는 첫 단추, 잡초
이야기는 갈퀴덩굴을 브로치처럼 옷에 붙인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시작됐다.
“갈퀴덩굴은 주변에서 흔히 자라요. 그런데 우리는 자연을 슬쩍 지나치기 때문에 모르죠. 하지만 이걸 옷에 딱 붙이는 순간 ‘저건 뭐지?’라는 호기심과 함께 생각이 한순간에 바뀌게 되요. 이렇게 자연에는 감춰진 것들이 많아요. 자연놀이는 바로 그것을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숲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훈장처럼 갈퀴덩굴을 붙여준 사진이에요. 아이들에게 일상의 세계에서 놀이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하나의 표시가 되는거죠."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감이 되어주는 잡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잡초는 야생화와 비교해볼 수 있다. 야생화는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식물이자 사람이 간섭을 하면 살 수 없는 식물이다. 반면 잡초는 대게 한국이 고향이 아닌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전 농사를 시작하면서 농작물에 묻어 넘어오거나, 교역과정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이젠 쉽게 볼 수 있는 토끼풀과 개밥풀은 구한 말 일본을 통해 들어온 풀이다. 더불어 잡초는 사람이 간섭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사람이 개발한 곳에서만 들어와 살 수 있다.
“마치 잡초가 땅을 망가뜨리고, 토종을 몰아내는 주범이 되는 것 같지만 인과관계가 바뀐거죠. 토종을 몰아낸 것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개발로 망가뜨린 땅에 들어와 자라는게 잡초, 들꽃인거죠. 그러기 때문에 들꽃은 항상 사람들 주변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사람에 의해서건, 자연 재해에 의해서건 파헤쳐져 망가진 땅들에 처음 자라는 식물이 잡초다. 잡초는 바로 ‘천이’의 첫 출발점인 셈이다. 잡초가 들어와 자란 땅에는 몇 년 후 키 작은 나무들이 들어와 살고, 조금 지나면 소나무들이 들어와 자란다. 그러면서 서서히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자연 스스로 회복되는 첫 단추를 꿰는 것이 잡초다.
“풀은 무성하게 자라는 힘이 있죠. 그게 바로 자연을 회복시켜나가는 첫 역할을 한 겁니다."


소나무재선충과 솔수염하늘소
“우리는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를 소나무의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소나무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한반도는 소나무가 일상적으로 자라날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그런데 왜 소나무가 무성했을까요? 끊임없이 교란되었던거죠. 나무를 베서 집을 짓고, 에너지로 이용하고, 숲에 불을 질러 농사를 했죠. 훼손이 계속되다보니 자연은 소나무 숲 이상으로 천이되지 못한 것 같아요. 요즘 국립공원같은 경우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참나무 숲으로 바뀌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소나무재선충은 1988년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다.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발생지역이 광범위해지고 있다.
“하지만 소나무재선충은 건강한 나무에서는 잘 번식하지 못해요. 숲의 천이가 진행되는 과정에 있는 나무가 쉽게 감염되죠.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은 솔수염하늘소에요. 솔수염하늘소는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살았어요. 이 곤충은 숲에서 죽어가는 나무, 혹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를 분해시키는 역할을 하며 살았어요. 숲을 건강하게 해줬죠. 그러던 어느날 재선충에 감염된 목재가 들어오면서 해충을 매개해주는 역할을 맡게 된거죠. 그 바람에 솔수염하늘소는 박멸당해야 하는 곤충이 되어버렸어요."
재선충의 매개충이란 이유로 솔수염하늘소 박멸에 몇 백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모습들을 보며, 강우근 연구가는 과연 그러한 노력이 의미있는 것인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대로 두면 소나무는 천이의 과정에서 바뀌어가지만 이를 거스르면서 소나무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방식이 아닐까.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인 만큼 자연을 바라보는 생각을 새롭게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진달래와 개나리를 통해 바라본 문화
진달래는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다. 우리는 예부터 봄에 핀 진달래로 꽃전을 부쳐 먹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삼월 삼짇날 주로 꽃전을 부쳐 먹었어요. 화전놀이라고 하죠. 삼짇날은 당시 여성의 날이었어요. 일년에 딱 하루 여성들이 즐길 수 있었던 날이었던거죠.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곧 농사가 시작될테고, 대개 힘든 밭일은 주로 여성들이 했어요. 그래서 고단한 밭일을 시작하기 전 자유를 누린 거죠. 꽃전과 함께 일 년의 고달픔을 견디는 그런 날이었던 거에요. 물론 365일 중 단 하루였지만, 여성의 삶을 생각하는 날이 있었다는 것은 변화의 씨가 될 수 있었다고 봐요."
진달래와 함께 개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흔한 꽃이다. 가지만 땅에 꽂으면 쉽게 자라는 개나리는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한 꽃으로 민중의 문화를 대변해 준다.
“개나리를 노래한 시나 문학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꽃으로서 대접을 받지는 못했죠. 조선 후기 원예전문서인 유박의 『화암수록』에는 꽃에 대해 격을 매겨놨어요. 1품부터 9품까지 있지만 개나리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개나리가 포함되지 않는 것을 당연시 여겨요. 왜냐면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고, 가지는 흐느적거리며, 꽃은 왜 그렇게 다닥다닥 많이 피는지, 선비들이 사랑했던 매화와는 정반대되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당시 민중의 문화는 개나리의 문화였죠. 어느 봄날 세상을 바꿀 것처럼 화들짝 피어나니까요. 이것은 선비의 문화의 배척에 있는 민중의 문화를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어요."


흙과 함께 하기
강우근 연구가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그런 그에게 흙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흙이라는 건 문방구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몇 년 전만해도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모래는 최근 잔디나 우레탄으로 덮어졌다. 강우근 씨는 아이들과 함께 집 주변에서 흙을 찾아 놀면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제안한다.
“점토성분이 많은 흙은 붉은 색을 띄어요. 이런 흙을 가지고 점토놀이를 할 수 있어요. 흙으로 놀다보면 비로소 아이들이 흙이라는 것이 주변에 항상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흙이 지저분하다는 인식은 근대화가 이뤄지던 시기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위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흙장난은 더럽다고 말하셨죠. 하지만 흙은 아이들에게 여러모로 굉장히 좋습니다."
실제 영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는 흙의 성분을 연구하여 흙 속의 대다수의 균이 사람에게 이로운 균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그 중에도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마이코박테리움 백케이라는 균은 몸에 세라토닌을 분비하게 해서 기분을 좋아지게 해준다.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듯 흙놀이를 하면 즐거워진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런데 흙으로부터 멀어진 아이들은 어떻겠어요? 흙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실내에서만 노는 아이들은 이를 모르는거죠. 흙놀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그냥 흙에서 노는 것. 전래놀이의 70% 이상이 흙에서 노는거에요. 다른 재료 없이 흙에 그림을 그려 노는거죠."


벌레, 우리의 그림자
강우근 연구가는 최근 도시 생태를 읽는 또 다른 부분으로 벌레에 관심을 갖고 있다. 벌레는 들꽃과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들꽃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많이 풀린 반면, 벌레는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다. 그는 벌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람들의 삶의 궤적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여름만 되면 집안에서 극성을 떠는 빨간집모기가 있죠. 빨간집모기는 300년 전만해도 사람과는 아예 접촉을 하지 않았어요. 아프리카 밀림 깊숙한 곳에서 조류나 포유류의 피를 먹으며 살던 종인데, 이게 300년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우리를 잠 못들게 만들고 있는거에요. 이렇게 된 것은 다 사람들이 만든 결과에요.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선을 타고 유럽과 아메리카로 넘어갈 때, 배 밑창에 고인 물 속에서 빨간집모기가 실려 다닌거죠. 벌레를 잘 보면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혐오라는 것에는 사람들의 그림자, 어두운 측면, 감추고 싶은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어요. 혐오란 모습을 당당하게 마주봐야만이 우리의 삶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변화했을 때 우리의 그림자인 벌레들을 조금 더 다른 지점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름에는 다른 것보다도 벌레를 관찰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가 될 수 있다. 유리병이나 플라스틱통같이 입구가 큰 병을 이용해 풀에 앉아있는 벌레를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잡은 벌레는 관찰 후 뚜껑만 열어주면 쉽게 놓아줄 수 있다. 야행성인 땅 속 벌레들은 벌레함정을 파놓고 며칠 후 다시 찾아보면 관찰 할 수 있다.


낙엽과 가로수
가을이 되면 우리 주변은 열매와 곡식들로 풍성해진다. 횟수로 8년 정도 마을 걷는 모임을 하고 있는 강우근 연구가는 가을에는 아이들과 가까운 숲을 걸으며 다람쥐 밥상 차리기 놀이를 한다. 다양한 열매들을 주워와 깍정이를 그릇삼아 담아 놓으면 보기만 해도 재밌고 행복해질 수 있다. 더불어 가을의 낙엽은 다른 계절과는 달리 나무에게 미안함 없이 놀 수 있는 좋은 장난감이다. 버즘나무같은 큰 낙엽잎들은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 때 낙엽은 한번 물에 담궈 놓으면 시간이 지나도 바스러지지 않아 놀이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버즘나무는 서울에서 예전에 가로수로 많았어요. 나무에 대한 글을 쓰신 임경빈 선생님은 버즘나무, 플라타너스는 가로수를 위해서 신이 만들어준 나무인 것 같다고 말하셨죠. 공기정화능력도 뛰어나고, 여름에는 주변을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추위에 강해요. 어디에 심어도 잘 자라는데다 기르기 마음대로 변형이 가능한 나무죠. 그런데 언제 부턴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버즘나무에 문제가 있다며 다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었어요. 어떤 곳은 소나무를 심었는데 사실 소나무는 가로수로서의 역할은 거의 못해요. 단지 도시 경관을 위해서 심었을 뿐이죠. 다양한 나무를 심는 다는 것은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과연 그게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
강우근 연구가는 중요한 것은 자연놀이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도 우리 주변에 숨어있는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바쁜 사람들은 발견할 수 없어요. 하지만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속에 감춰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김용택 시인이 왜 시인이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요. 심심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 같아요. 우리 마음 속에는 자본이 쳐놓은 불안이 있어요. 거기에 파묻혀서 앞만 보고 가고 있죠. 빨리 돌아가는 엄청난 속도에 휩쓸려가고 있어요. 우리 스스로 조금 속도를 늦추고 주변도 돌아보다 보면 재밌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될 겁니다. 그렇게 놀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 더 재미있는 세상으로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