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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 | 연재 [수요포럼]
자서전, 가족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매개체
172회 수요포럼
(2017-06-30 15:33:21)




일시 5월 17일(수) 오후 7시 30분
장소 전주 한옥마을 공간 봄
주제 내 인생을 돌아보는 책 만들기
연사 노항래 은빛기획 대표



'당신의 삶을 기록해 드립니다', 협동조합 은빛기획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은퇴는 삶의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됐다.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협동조합 은빛기획이다. 은빛기획은 자서전, 개인 문집, 유고집 발간, 노년층ㆍ청소년 대상 글쓰기 교육, 조문보 발행 등의 활동을 하며, 품위 있는 노년문화와 '삶'을 기록하는 문화 확산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희 은빛기획에는 자서전을 만들고 싶은 본인이 써온 글을 교정하는 프리랜서 작가가 있습니다. 작가에게는 원고료를 주고 살아온 이야기를 받습니다. 잔치 때 주위 사람들과 나눠 볼 수 있는, 살아온 이야기들을 기록하죠"
우리나라에 있는 출판사로 등록되어 있는 곳은 4만 여개로 아주 많은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내는 출판사는 5~6천개 정도에 불과하다. 노항래 대표는 그 책 중 절반은 '자서전' 일 것이라고 말한다.
"1년에 책 한권이라도 내는 출판사를 기준으로 단언컨대, 가장 많은 장르는 '자서전'입니다. 대부분의 책이 출판사에서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을 통해 나오는데, 집필하는 이들 거의 대부분이 자기 전문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을 주저리 주저리 풀어놓은 것이 절반입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종류는 자서전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책들은 서점에서 팔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팔리죠. 그 경쟁은 치열하기도 해요. 홍보 전략이 최적화된 출판사들이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며, 자서전을 내겠다하는 사람을 다루는 거죠. 하지만 이런 일들의 경우, 힘도 많이 들고 부가가치도 적아요. 또 하나의 맹점은 자기가 글을 쓰지 않고 글을 맡기면 몇 백 만원이 들어요. 원고 400매, 500매 정도 쓴다고 하면 원고료가 4~500만원 정도 되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은빛기획이 자서전 사업에 뛰어들게 됐죠.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서전을 낼 수 있게 말입니다. 뭐 이 역시 힘은 들지만 수익은 많지 않아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어르신에게 자서전을 안겨드린 적도 있어요. 한국전쟁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거의 80세를 넘기셨어요. 보통 85세에서 90세정도 됩니다. 언젠가 국방부 전사 자료실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많은 책을 남겨놓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사실상 70세 넘으신 어르신들에게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들의 삶을 들어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하고, 이런 일들을 자치단체에서 한다면 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그 어르신들에게도 매우 득이 될 겁니다. 또 국방부에 책을 납품한 적이 있어요. 북에서 포로로 잡히고 이런 이야기들을 채록하고, 문학적으로 가공한 그런 책이 국방부에 추천도서로 선정돼 5천 권씩 납품하게 됐습니다. 그 시절 어려웠던 저희에게는 사업이 무너지기 직전 한줄기 빛이었죠"


복지관에서 연 '글쓰기 교실'
자서전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글쓰기'다. 은빛 기획에서는 몇 해 전부터 자서전 사업과 함께 글쓰기 교실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서울시에 의탁을 받아 서울시 소재의 복지기관을 방문해서 글쓰기 교실을 연 적이 있습니다. 20~30명 정도 모인 교실에 가서 남이 쓴 글도 읽어보고, 직접 써보기도 하는 프로그램을 열었죠. 300자 원고지 기준으로 30매에서 40매정도 쓰면 책으로는 10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로 책을 만들면, 그 사람의 가족들을 초청해서 조촐한 출판 기념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중에서 시판되는 책은 아니지만 굉장히 감동적인 이벤트였죠. 긴 글은 아니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자기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들어간다는 것이 충분히 감동적이죠"
은빛기획이 대중화 시키려 노력하는 자서전 쓰기는 지금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실은 자서전 쓰기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책을 만들면서 우리가 아닌, 다른 복지관한테도 보게 되고, 전북 전주 이런 데에서도 지금도 이미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문화가 활성화 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에요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세대 갈등 등 인식차이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4년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세대 갈등을 좁히기 위해서도 잘 모시는 게 우리 사회의 품위를 높이고, 너그럽고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지관에서 여는 글쓰기 교실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교실에는 글쓰는 데 모두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살아온 길 역시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복지관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실을 진행하고 오면 에너지를 쫙 빨리고 오는 느낌이더라고요. 30명 중에 절반 정도는 글을 못 쓰시는 분들이 있죠.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글쓰기 교실을 여는데 고등학생은 달라요. 글쓰기가 힘든 사람은 있어도, 못쓰는 사람은 없죠. 중·고등학교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세요. 사생대회, 백일장 등에서 글을 쓰지만 실제로 긴 글을 써본 경험이 많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달라요. 요즘 고3 학생들, 자기 소개서 쓰려고 몇 십 만원씩 대필하는 곳도 많아요. 원고지 5매를 쓸 수 있는 학생, 어르신 등... 글을 쉽게 써내려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그게 큰 어려움이죠"

소통의 매개체, '가족의 생애사 쓰기'
자서전 사업을 주로 해온 은빛기획은 주로 50대 이상들이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족을 위한 글쓰기를 시도하면서 삶을 기록하는 글쓰기는 어린 학생부터 젊은 청년층에게 까지 확대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족에 대한 자서전 쓰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글쓰기 교육을 한 다음, 가장 기본적인 인적사항 인터뷰 요령을 알려주죠. 원고지 30매 분량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게 하고 '너도 이렇게 쓰는 거야' 하고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어르신보다는 훨씬 더 글을 잘 써오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기 가족의 생애사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그 아이들이 쓴 글과 사진으로 책을 만들었어요. 요즘엔 가족 간에 대화를 길게 나눠볼 일이 흔치 않잖아요. 자서전이 가족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는 거죠. 가족의 삶을 이해하는 한 단면이 되는 겁니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에도 좋죠. 어느 날에는 가평에 있는 시골 고등학교에 가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가 방송에 출연했어요. 마을 기념회부터 시작해서, 학교 동창회와 위원회, 지역사회 유지 등 마을이 들썩였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전주에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으면 해요"


죽음에 대한 관심, '조문보'로 이어지다
"서점에 가보면 죽음에 관한 책이 참 많아요. 고령화 사회가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요즘 노년에 관한 책이 엄청 많이 나옵니다. 이를 테면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들을 던지는 책들이 말이죠. 제 와이프는 죽음을 이해해야 삶을 잘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책을 많이 봤는데, 정말 이거다 설명할 수 있는 건 없더라고요.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잘 사는 것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요"
자서전, 글쓰기 프로그램 등의 프로그램을 하던 그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조문보 사업을 시작했다. "알던 친구가 다 같이 의기투합해서 조문보를 만들었죠. 장례식에 와주신 분들이 조문보를 소중히 가져가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장례식을 일 년에 한 20번은 갑니다. 매 번 장례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의 장례 회사는 천편인률적인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인사하고, 조의금 내고, 음식 나눠먹고 돌아오죠. 심지어 몇몇은 고인이 생전에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조의를 표하죠. 이정도의 문명을 이뤄내는 데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된 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있어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하죠. 하지만 요즘에는 그 옛날의 추모 문화가 전부 없어졌어요. 은빛기획은 그것을 다시 살리고 싶은 거고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친절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 70, 80세 넘으신 어르신들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물어보면 누군가에게 받은 친절, 혹은 선생님 등 그 말 한 마디, 따뜻함들이 삶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되더라고요. 짧은 글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살펴보는 것이지만 내가 잘 살아야겠구나 내가 내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삶을 기록하다. '엔딩노트'
특별히 주변에 프로그램이 있거나, 혹은 지도해 줄 사람이 있지 않는 이상 스스로 삶을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생노트'가 있다면 다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기록해야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인생노트'이다. 인생노트에는 자기 삶 돌아보기부터 사전장례의향서, 버킷리스트 작성 등 남은 삶을 알차게 살아낼 수 있도록 이끄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된 일본에 가보니 엔딩노트라는 것이 아주 보편적인 상품이었습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를 앞서가고 우리는 그를 뒤따라서 가고 있죠. 일본은 노인이 이미 4명중에 1명일 정도예요. 고령화 시대의 현상 중 하나인데 일본에서는 한 3~4년부터 엔딩노트가 아주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어요. 사실 책들이 많을 뿐이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는 노트였죠. 세계적으로 일본이 기록하는 문화가 잘 발달 되어 있는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역시도 앞으로 고령화 사회를 맞게 될텐데,  자기 삶에 품위를 지키고 자기 삶을 기록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 들을 돌이켜 보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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