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9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추모를 뒤로 한 채 호명된 소시민적 영웅
<택시 운전사>
김경태(2017-09-19 11:08:07)



장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는 1980년 5월에 발생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점은 광주가 아니라 서울이다. 심지어, 서울의 택시 기사 '만섭(송강호)'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에 도달했을 쯤에는, 이미 군경의 시민을 향한 살상이 시작 된 후였다. 즉, 그들은 자세한 내막도, 전개 과정도 모른 채 참혹한 사건의 정점에 뛰어든다. 관객들은 광주와 관계없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대학생들의 대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평범한 소시민인 만섭에 시점에서 사건을 접한다. 광주 항쟁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해가는 양상에 관객들은 공감할 것이다. 관련자들 다수가 생존해 있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현대사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천 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그 외부의 시선을 경유한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 두고 온 딸을 걱정하며 사건에 휘말리기를 두려워했던 만섭은 피터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차츰 광주 시민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광주를 빠져 나온 만섭은 어느 식당에서 국수를 시킨다. 손님들과 식당주인은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을 벌인다. 그는 언론의 거짓 뉴스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 앞에서 차마 진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묵묵히 국수를 먹는다. 아는 척 하는 순간, 그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식당주인이 건넨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며 광주에서 시위대가 건네 준 주먹밥을 먹었을 때처럼 맛있다고 말해버린다. 예의 그 유사한 감각 앞에서 그의 침묵은, 그의 다짐은 무너져 내린다. 그는 광주로 되돌아간다.

만섭은 자신의 선행을, 광주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그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직업 윤리로 포장한다. 그는 자신이 태워주기로 약속한 손님을 데리러 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그에게는 결정을 내리기가 더 수월하다. 그것은 피터의 기자로서의 직업 윤리, 즉 어떤 위협이 있더라도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소명 의식과 조우한다. 그들의 행동은 고민 없이 명령에 따라 광주 시민들을 공격하는 군경 및 진실을 은폐하는 어용 언론인과 대립된다. 단순한 직업 논리가 진지한 직업 윤리로 진척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영화는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진영 논리를 떠나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군경의 잔인성을 상세히 묘사할 뿐이다. 광주 대학생인 '재식(류준열)'조차 우리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역시 어떤 투철한 정치 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이다. 나아가 영화는 저들 중에 정말 '빨갱이'이가 섞여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설사 만의 하나, 빨갱이가 맞더라도 그들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행과 살상은 옳지 못하다. 만섭의 상식 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시민의 구출에 동참하도록 유도한 도덕적 판단 기준도 더도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류애적 공감대이다. 목숨을 걸고 광주를 빠져 나온 뒤, 만섭은 피터에게 '김사복'이라는 가짜 이름과 연락처를 남긴다. 만섭이 차마 피터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과 연락처를 줄 수 없었던 것도, 그가 영웅 대접을 받으며 진영 논리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꺼려해서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실제 피터가 등장해 김사복과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2015년에 진행한 인터뷰 영상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가 현실 속에서 그대로 재단해온 영상은 그것뿐이다. 피터가 당시 광주에서 촬영한 참혹한 모습들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광주 시민이 아니라 만섭/김사복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영화의 시간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과거가 추모의 시간이라면 미래는 기대의 시간이다. 따라서 영화는 과거사의 깊은 반성을 통해 역사적 비극의 반복을 막아야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피터의 입을 빌려 언제고 다시 그런 불의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을 곁에서 지켜줄 수 있는 또 다른 만섭을, 또 다른 소시민적 영웅을 호명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