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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다시 <혼불>을 꺼내들며
이휘현(2017-12-11 13:27:18)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가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있던 시간이어서 추위의 기억이 더욱 생생하리라. 1년 반 가까이 만났던 여자와 헤어지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어져버린 비루한 청춘. 마음의 상처를 핑계로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허무하게 내 젊음의 시간들을 탕진해 버렸던 걸까. 1998년의 끝자락, 그렇게 내 스물다섯의 나이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고 혹여 누굴 만날까 싶어 대중교통도 전혀 이용하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유일하게 내가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찾은 발걸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산(生) 자가 아니었다. 나와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신문기사로 접하게 된 어느 작가의 죽음.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나는 학교 가까운 건지산 근처 망자가 묻혔다는 무덤을 찾아가보리라 다짐했더랬다. 그냥 막연하게 그를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결심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목적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 해 겨울, 건지산 이 구석 저 구석을 헤매다가 나는 결국 허탈함만 잔뜩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작가 최명희와의 인연은 그렇게 나의 헛걸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년 후, 대하소설 <혼불>을 1권부터 차례차례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어느 새 내 이십대의 추는 후반기로 급격히 기울어 갔다. 그 때 나는 무슨 걸신들린 듯 수많은 책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 혹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 지천에 널려있었고,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내 독서 레시피 목록에 오르던 와중 <혼불>도 슬쩍 끼워들게 되었던 것이다.
호기심 반 의무감 반! <혼불>을 처음 펴들었을 때 내 마음은 딱 그랬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아서 한 권의 책을 길게 잡고 늘어질 여유가 없었다. 후다닥 해치우고 다른 책들을 정복(!)해야 했다. 그렇게 <혼불>도 내 '후다닥 독서'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한 달도 안 되어 10권의 책 중 9권을 읽고 나니 마음 한 구석에 허탈함이 몰려들었다. 뭔가 작가에게 죄짓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속도로 독파한 대하소설이어도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장길산>을 읽었을 때와는 기분이 많이 달랐다.


'이 소설은 이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


<혼불> 마지막 권을 사러 서점에 가야하는 데, 새삼스런 자책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빈손으로 집에 향하는 길. 나는 이런 다짐을 했더랬다.


'1권부터 꼼꼼하게 다시 읽고 작가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좀 떳떳한 마음이 생기면 마지막 권을 사서 읽기로 하자!'


내 서재 속 <혼불>은 그렇게 아홉 권인채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다.
2001년 봄, 나는 우연히 작가의 무덤을 발견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당시 기숙사생활을 했던 나는, 아침 6시면 어김없이 덕진공원 쪽으로 나가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나름 꽉 짜여진 스케줄로 일상이 채워져 있었는데, 그 날은 유독 그 팍팍함에 지쳐 매번 밟던 동선을 어기고 무작정 다른 길로 산책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기숙사에서 걸어 5분도 안 되는 공간에 작가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숲길을 걸어 비탈진 경사면 위로 다가가자 작가의 무덤이 보였다. 주변에는 고즈넉한 벤치들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작가의 문장들이 군데군데 바위에 새겨 있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고요했고, 그 적막의 틈새로 이름 모를 산새들이 재재거렸다. 나는 순식간에 그 장소에 매료되었다. 그 날 이후 내 일상의 시간표는 바뀌었다. 아침 6시 기상 시간은 같았지만, 기상의 목적은 운동이 아니라 산책이고 사색이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씩 책을 옆구리에 끼고 나는 작가의 무덤으로 향했다. 그 곳은 나에게 최고의 망명처였다. 혼불문학공원의 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있으면 세상 시름이 금세 쓸려나갔다. 혼불문학공원과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으로 시작되어 아주 긴 시간 지속되었다. 내 이십 대의 여분은 이 곳 작가의 무덤에서 숨고르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나이 서른이 넘어 고달픈 백수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십 대 때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자존감이 순식간에 무너져갔다. 세상이 인정하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른 둘의 나이에 다행히(?) 직장인이 되었고, 발령지인 전주에서 다시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내게 익숙한 공간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보다는 혼불문학공원에 자주 가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산책이나 사색의 여유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여유 없는 삼십대의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2008년 겨울, 다큐멘터리를 하나 제작했다. 작가 최명희의 삶과 작품을 조명한 <혼불 최명희, 어둠은 빛보다 어둡지 않다>가 그것이었다. 그 기획은 내가 방송국에 몸담게 된 순간부터, 혹은 훨씬 그 이전부터 어떤 형식의 장르로건 한 번 쯤 정리해보고 싶은 내용이었다. 내 청춘의 한낮에 편안한 그늘이 되어준 혼불문학공원. 그 공간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될까?
작가의 살아생전 지인들과의 인터뷰,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 작가가 직접 작성했던 노트 등을 매만지며 나는 작가의 삶과 문학적 고민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하소설 <혼불>의 집필 과정은 작가에게는 치열함 그 자체였다는 것도 구체적 사실로 알게 되었다. 그 고뇌와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작가의 마음 한자락 간절함은 내 심장에도 잔상처럼 남아있게 되었다. 작가의 죽음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건, 애석함의 눈물이 아니라 그가 남기고 간 작품을 치열하게 읽어주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도 거기까지. <혼불>을 다시 제대로 읽어보리라는 2008년 겨울의 다짐은, 다짐인 채로 또 긴 시간 동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새 2018년이 다가온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되는 때. 나는 또 마음에 천근만근의 빚이 들어앉아 <혼불>을 다시 꺼내든다. 이번에는 작가가 서운한 마음 가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또 치열하게 읽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혼불>의 첫 페이지에 눈을 맞춘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 <혼불> 제1권 -


어느 새 내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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