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1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도시는 숨을 쉰다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휘현(2018-02-07 17:23:58)



지난 해, 전주역 앞에 ‘첫마중길’이라는 공간이 생겨났다. 꽤 넓었던 도로의 차선이 좁아지고 또 구불구불해졌다. 대신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도로 한 가운데에 제법 넓게 생겨났다. 그런데 그 공간에 대해 불평이 많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특히 운전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의 불평이 장난 아니라고 한다. 그 불만 이해한다. 쌩쌩 달리던 도로를 뜬금없이 거북이 운행으로 감내해야 하다니…. 하지만 내 이해는 딱 거기까지다.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익숙함으로 바뀐다. 하지만 하나의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그것도 첫 이미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직 콘텐츠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 인적이 뜸한, 그래서 그 옆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운전자들이 저주를 퍼부어대는 그 공간을 보며, 나는 이 도시의 희망을 본다. 그리고 그 희망의 근거로 ‘유현준’이라는 고유명사 하나를 덧대어 본다.

유현준이라는 이름의 건축가를 알 게 된 건 순전히 TV 덕이다. 즐겨보는 프로그램 목록 중에 <알쓸신잡>이 들어가 있는데, 시즌2를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나는 그의 이름을 내 뇌 속에 저장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내가 이런저런 다양한 분야의 책에 손을 댄다고 남들에게 제 아무리 뻐겨도 차마 건축이나 도시공학까지는 독서의 영역을 넓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전문분야(?)라는 생각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공학’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 앞에서 항상 작아져버리는 내 소심증 탓도 클 것이다. 그런데 그 높고 두터운 경계를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한 방에 깨준 것이다. <알쓸신잡> 제작진에게 박수를. 짝!짝!짝!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그의 첫인상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스펙도 있고 그럭저럭 인물도 괜찮은, 거기다 언변도 좋아서 TV 프로그램에 섭외되었을 거라는 정도의 느낌?
그런데 그런 첫 느낌도 잠시였다. 다른 분야의 출연자들과 마주 앉아 조곤조곤 건네는 그의 건축과 도시 이야기에는 무언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서서히 빨려들게 하는 마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건축이나 도시공학이 그냥 단순한 공학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인문학의 스펙터클한 정점이라는 사실을 그는 역설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 꽤나 설득력 있으면서도 재미있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런 유현준의 지성미를 흠뻑 들이킬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나는 며칠 전 오후 서점에서 들고 나온 이 책을 그날 늦은 밤까지 쏙 빠져 읽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내 머리 속뿐만 아니라 심장 속까지 꽉 찬 만족감으로 넘쳐났다. ‘행복한 책읽기’란 이런 순간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물론, 유현준의 문장이 유려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지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담백한 필치로 풀어낼 뿐이다. 투박한 문장들이 무시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허나 그러면 어떤가.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부제로 풀어내는 그의 글에는 진심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그 따뜻한 진심이 투박한 문장들을 감싸준다.

도대체, 도시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이용하는 하나의 방편이거나 혹은 투자와 시세 차익을 통한 투기의 대상일 뿐인가. 매일 새롭게 올라가는 높은 빌딩 숲 아래에 묻어두었던 것은 비단 우리의 초라하고 비루했던 과거일 뿐인가.
도시는 생물과 같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죽고 또 다시 부활하는 과정이 도시 곳곳에서 반복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과연 누구를 위해 진행되어 가고 있느냐’에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지난 세기에 빠른 속도의 삶을 살아왔다. 서구가 겪었던 수백 년 근대화의 풍경을 단 몇 십 년 사이에 그려 나가며 고도성장의 광휘를 만끽했다. 이 모든 성장 이데올로기의 이면에는 시간의 의미를 오로지 속도전으로 올인한 ‘빨리빨리’ 문화가 자리해 있다. 아울러 초라했던 과거는 모두 잊고 오로지 찬란한 미래만 보며 달리자는 ‘새것 콤플렉스’가 작동해 왔다. 대한민국의 도시는 그렇게 빠르게 변해왔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다. 이 숨 가쁜 속도의 풍경 속에서 건축학자 유현준이 조용히 말을 건다. 이제 잠시 가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유현준은 아파트 복도에 공간을 빼앗겨 버린 골목길의 기억을, 마천루에 빼앗겨 버린 파란 하늘의 풍경을,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리를 잃어버린 주거 다양성의 심미안을 마음 아파한다. 공산품처럼 개성 없이 찍어내는 도시 풍경에 고개를 내젓는다. 무엇보다도 그 새것 콤플렉스에 덕지덕지 붙은 욕망을 경계한다. 그리고 욕망을 통해 심화되는 양극화를 한탄한다.
그가 전 세계 유명 도시들을 예시 삼아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비단 공학도로서의 전문성만 묻어 있는 게 아니다. 그 도시를 둘러싼 사회, 정치, 역사, 예술, 심리, 환경 등등이 유기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그의 글에 설득력을 더한다. 유현준은 건축학자이고 도시공학자이지만, 사실 그를 ‘통섭’의 인문학자라 불러도 무방한 이유다.
그렇게 수많은 도시를 거울삼아 그가 비추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터전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잘 사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정말 살만한 곳일까? 이 단순한 물음에 우리가 쉽게 답을 내뱉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도시를 바라보며 갖는 욕망이 여전히 뒤틀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는 공동체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는 단순한 욕망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의 관계와 시간과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생명과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유현준의 이야기에 우리는 이제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도시를 갈아엎기보다는 도시에 말을 걸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다행히 근자에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과거 퇴락의 상징이었던 공간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옥마을이 각광받는 관광지가 되었고, 구도심의 후미진 골목길이 젊은이들의 발걸음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어가고 있다. 다만, 약삭빠르게 움직이며 도시재생의 인문학적 가치까지 선점하려 하는 ‘업자’들의 속된 욕망이 걱정될 따름이다. 이에 관한 깊은 고민은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아참, 전주 첫마중길의 기획자가 유현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실험이 과연 전주에서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나는 종종 시간이 날 때 그 곳을 찾아 발걸음을 보태볼까 한다.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 있는 한, 그 도시의 희망은 쉽사리 잠들지 않는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