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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 | 연재 [수요포럼]
내 공간 속의 인문학, 기억이 건축이 되다
건축과 인문학
(2018-05-03 11:04:38)



건축에 인문학적인 접근방법이란 무엇을 말하는것인지궁금했다. 건축가 백희성의 이번 강좌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는깨달음을찾아가는여정이었다. 기억을 재료로 형상화하는 그의 건축방식이 무엇보다보다인간의본질에집중한다는사실을확인하면서'기억이 건축이 된다'는그의고집과 확신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다.
15년 동안 건축을 해온 백희성 대표는 자신의소신대로고집대로살고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어차피 제 인생 아닐까요 나중에끝나더라도남들에게탓하고싶진않아서남들이하지않는생각을했습니다."'집을 건축가가 아니라시는 사람들에게 돌려 줘야하는시대가되었다'는그의주장에 건축계는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반응을응을보이고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접했던 건축가들과 좀 다른생각을가지고있었다.
건축가가 집을 본격적으로 지은 역사는 200년도 되지 않았다 한다. 이전에는 살집을 직접 짓는 일이 흔했다. 실제 91세인 그의 할머니도 첫 집을 직접 지으셨다고한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건축가는사회공공시설이나공적인건축물을담당해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할머니가 경험에서 얻은 지혜는 건축학자들조차놀랄만한것이었다. 옛날궁궐에서 설치했던 구들장은 그 깊이가 1m가 넘어 일반주택 30-40㎝에 비해 배 이상 깊었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권력의 크기에 따라고들 장의의깊이가달랐을것이라고추정했다. 하지만 구들을 직접 설치했던 그의 할머니는난방용으로만사용했던궁궐의구들장과달리삼시세끼밥을지어야했던일반주택에깊은구들을파면열기가모여구들장이과열돼깨진다는사실을알고있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요? 사는 사람만큼 집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집을 직접 짓는 일은 과거 공동체문화에서 나가능한이야기지만그만큼집을지을때그곳에사는사람입장에서생각이나철학을담아내는일이중요하다는의미로읽혀진다.


기억을 재료로 건축을 하다
백희성 대표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많다. '기억이 건축이 되는 시대'라고 믿고 그의 건축은'기억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되였다. "건축가들이 집을 지을 때 편리함, 쾌적함, 기술, 기술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그 집에 사람들이이산다는걸까먹게됩니다"그가 프랑스에서 오래된 저택들을 답사할 때 겪은몇가지사례는그곳에사는사람의기억과추억이중요하다는걸깨닫는계기가되었다. 낡아서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소리, 벽에 남겨진 시커먼 손때 얼룩은 누군가에게 더럽고고나쁘고불편해서지워야할흔적이지만다른누군가에게는돌아가신할아버지가편히쉬던안락의자를추억하게하는사랑스러운가족의흔적이고소중한기억과추억이될수있다는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그 마룻장은 뜯겼을 것이고 얼룩이묻은벽면은페인트로덧칠해추억과함께묻혔을것이다.
그래서 그는 집을 짓기 전 건축주들과 충분히소통하는것을중요하게생각한다. 집을 설계할 때 먼저 도면을 그리거나 스케치를하지않는다. 제일 먼저 하는 게 클라이언트의 기억을 찾는일이다. "사람들은 자신한테 제일 적합한 공간이 뭘까? 궁금해합니다." 그물음에그는"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었던 기억, 그 기억 속 배경이 얼어 분에게 가장 적합한공간입니다"라고 명쾌하게 답한다. 이 기억을 찾기 위해 길게는 1년 넘게 아니, 짧게는 두 달 만에 기억을 다 소환하는 경우도있다. 이 과정을 답답해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중에는기억을하나라도더건지려고애쓰게된다고한다.
옛날 어릴 적자 집 대청마루 아래에서 고무대야에에물받아언니랑자신을씻겨주던어머니와의추억을말하며그때바라본하늘의모습에서행복한순간을찾는다는클라이언트를위해다시뜯어낼각오로욕조위에큰천장을내주었다. 욕실에 유리 천장은 물방울이 생겨 불편하지만고객에게는불편을감 수할만큼충분히의미있는공간될거라는확신이옳다는것을확인하는데그리오래걸리지않았다. 그 장소는 고객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행복한공간이되었다고한다.



아픈 기억의 공간을 치유의 공간으로
"기억을 건축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데 기억이반드시좋은것만있는것은아닙니다. 나쁜 것도 슬픈 것도 있고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작은시골마을에있는그저그런 9평짜리 안경원은 그의 회사에서 했던프로젝트중가장작은것이었지만가슴뭉클한감동을주는이야기이다. 'GD Glasses'빅뱅 구성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안성시에 있는공도라는지명을딴이름이다. 이곳의 안경사가 9평짜리에 삼각형인 공간을 의뢰하러 그를 찾아왔다왔다. 거절해야겠다 맘 먹고 제일 소중한 재료가 뭐냐고물었더니그안경사는자신을굽은손을보여주었다. '손이 제일 중요하다'는그의말에끌렸다. 9평짜리. 무엇을 하기에 모호한 공간에서 자신은 혼을 다쏟아붓는다고했다. 최선을 다하는 걸로도 부족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로안경을고친다는데. 조그마한 안경원에 뭐가 있겠느냐며 무시하고 자기눈엔예술작품인데사람들은그렇게생각하지않는데서오는괴리감이너무커안경점을닫겠다결심한순간, 백희성의 책을 읽고 무작정 찾아왔다. 백희성은 안경 만드는 작업이 귀하다는 것을사람들에게보여주기위해안경사의작업하는손은보이되밖에서구경하는사람들과서로시선이마주치지않도록작업대앞에작은창을냈고예술작품인안경을전시품처럼소중하게보여주는미술관처럼설계했다. 망해가던 안경원은 매출이 5배나 늘었고 부활했다. 대기업으로부터 프랜차이즈발매제안을 받았지만만거절했다는 GD 안경원. 건축가는 '아픈 기억의 공간'을'아픈 기억을 치료하는 공간'으로 바꾸어주었다.



시대를 앞선 건축철학에서 찾은 의미
그의 프로젝트가 모두 채택되는 건 아니다. 비록 떨어졌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서울시청 앞앞성공회성당근처건물을허물고문화시설을기획하는설계공모와프랑스장누벨사무소근무당시프랑스아미양지역의레오나르도다빈치가개발했다는별모양성곽을캠퍼스로설계하는프로젝트를꼽았다.
 "그곳은 약 100년 전부터 사람들이 뭔가 한가지 목적을달성하기위해목소리를냈던공간인거예요"시민의 목소리가 모였던 공간. 3.1운동과 4·19혁명, 6월항쟁, 2002월드컵 응원과 촛불의 염원이 모여 있는 곳. "우리 모두가 어떤 한 공간에서 공통된 기억을가지고있는게도시의기억입니다." 사람만기억이있는것은아니다. 도시도 기억이 있다. 조금 더 확장해서 얘기하면 도시의 역사이다. 도시의 기억을 건축으로 바꾸는 방법을 제안한 첫프로젝트였다. "공간의 입면이 시민들에 의해서 구축되고 만들어지고지고없어지고하는세상에서유일한프로젝트입니다."이 건축물은 건축가들이 디자인 하기불가능하다는평가를받았다.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공간을 구축한다고 생각해요요"그래서 빈 상자에 메시지를 채워 넣고 서로 공통된의견을찾는시민들에의해서구축되고만들어지고없어지는공간으로설계된이프로젝트는인정받지못했다. 프랑스의 아미 양 캠퍼스설계는 원래 주인 사람별모양성곽을최대한살려주고새로짓는캠퍼스건물은숲으로가려눈에보이지않게디자인했다. 원래 있었던 유물과 건축물을 최대한 유사하게디자인하고최대한보이지않게설계했다. 눈에 잘 안 띄게 한 캠퍼스설계는 당선되지 못했고 2등을 했는데 그는 이것 역시 굉장히 의미가 있는프로젝트라고생각한다. 왜냐하면 원래 땅에는 주인이 있고 그 주인의기억을살려주는일이건축이라고생각하기때문이다.
 "때로는 그 어떤 디자인도 하지 않는 게 답이 될수도있거든요. 기억이라는 단서로 건축을 하다 보니 아직은 시대가가저희를읽어주지못했다고판단을했고그렇다고저희가틀렸다고생각하지는않습니다. 10년 안에 저희가 생각하는 이 흐름이 세상을지배할거라고확신합니다"
그가 말하는 땅의 주인은 역사 콘텐츠 즉 그공간만가지고있는특징을말한다다른곳에서는볼수없는것. "그걸 잘 활용하면 자손 대대로 지역사회가 백 년, 오백 년 아니 천 년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다른 곳에서 파리를 찾을수없기때문이예요"기억을 단서로 건축을 하면 비교할 대상이 없어지기기때문이다. 이 말을 꺼내며 그는 우리나라 특히 지자체에서즐겨사용하는'견주기'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갯벌로 유명한 지역에서 조형물에 대한 자문을 하러러갔다가갯벌에한 10m 되는 큰 장화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듣고충격을받았다. 콘텐츠를 그대로 가공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이것을은유적으로한번재해석하는게필요하다고강조했다.



한강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백 대표는 한강 예술공원프로젝트에 참여해'한강 기억미술관'을 설계했다. 예정한 강의기억은 거대한 백사장이었다. 10km가 넘는 게 다섯 개가 있었고 잠실도다백사장이었다. "만약 도시프로젝트가 백사장에서 1km 만 뒤에서 이뤄졌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거대한백사장을가지고있는최첨단도시가될수있었을지도모른다"며그넓은백사장이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했다. "한강의 잃어버린 기억을 통해서, 어쩔 수없이 잃어버린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지금우리가다른것들을지킬수있다면지금이돔공간처럼지킬수있다고하면의미가있지않을까싶어서했었던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한강 한가운데 바지선을 띄우고 그 위에한강의기억을간직한조약돌모양을한돔형태의미술관을만들고바닥에는모래를깔았다. 그 안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다 보면 해설이 흘러러나와혹시나지금도우리모르게훼손되거나없어지는우리소중한유산이나자연환경이없는지되돌아볼것을권하는독특한미술관이다.



백희성 대표는 전남 화순 5만 평의 부지에 식품공장단지를 설계했다. 규모가 워낙 큰 프로젝트라 망설였지만 공장단지를를짓는다는일이내키지않아처음엔거절했었다. 하지만 회사대표는"건축가들이 공장을 안 만드니 공장이 이 모양이꼴아닙니까?" 라며강력하게항의하고네덜란드에데려가계사사(닭 사육장)가혐오시설이아닌친화력있는시설이되었는지를직접보여주며설득했다. 정말로 네덜란드의 닭장은 너무 쾌적하고 깨끗했다다. 어느 누구도 집 근처에 닭장이 오는 것을 반대하지않았다한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에 공장도공장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공장이라는 기억을 걷어내고 땅이 원래 가지고있던기억과공장에서일하는노동자들의고충이나아픈기억들을공간으로바꾸면좋은포인트가될거라고판단했다. 보통공장은 '육중하고',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답답하고', '시끄럽고', 그래서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제일 힘들었던 기억이 뭐냐'물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그리고 들어가서 일할 때 기계처럼 반복되는 작업이이너무싫다'고했다. 반면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야유회에 갔던 기억'이라는 말을 듣고자 연속에 노출되는 공장이면어떨까싶어공장을 4등분으로 자르고 그사이에다 숲길을 만들었다. 작업한다고 개만 돌리면 숲이 보이도록 설계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숲이니까 산을닮아야겠다해서이렇게디자인했다. 이 포인트를 본고장직원들이 빨리 지어달라고 난리가났다.
그가 짓고 있는 공장은 놀라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란색부터 빨간색까지 10가지 빛깔을 그라 국가로 설계한 벽돌까지공장이라기보다마치복합문화공간이나테마파크를연상시켰다. 벽돌을 재료로 선택한 이유는 공장대표사직원한 분한분한분을보석처럼여기고그들을위해투자를아끼지않는다는사실을확인했기때문이다. 재료 중에 각각의 개성 있는 재료들이 모여 큰힘을발휘할수있는게뭘까고민하다벽돌을찾게되었다. 실제로 이곳은 공장인데도 시민들을 위한문화시설이나예술가를위한공간이생긴다. 멀티플렉스 CGV 가입 점하고 화순 지역의 아픈 기억 인근현대사희생자들을추모하는공간도자리잡을예정이다.


기억을 재료로 하는 그의 인문학적인 건축방식이효율성이좀떨어지지않을까라는판단은기우였다. "저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다시 뒤집고 거꾸로로간적이없습니다"왜냐하면 충분히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았고하나하나검증해서나아가기때문에후퇴하지않는다는거였다. 그래서 백대표회사에서는 야근이 없다고 했다.
그가 기억에 대해 거듭 말하는 건 비단 집뿐만이아니라우리들이쓰는방이나거실이런공간에도사는사람들이흔적이남기때문이다. 그 흔적을 통해서 나와내 공간에 대해 깨달아야한다고말한다. 그래서 맞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자기에게 맞는공간을찾으려면연습이필요하고관찰이필요하다. 백대표가공 간을 관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은 여러분을 닮은 여러분의 성격을 갖고 있는일종의옷같아요""그래서 공간을 보면 여러분들을 스스로 알아갈 수있는단서가됩니다." 이런고민들속에서본인도모르는자아를찾을수있다수있다. 건축설계가 일종의 심리적인 자아관찰이라고 그는는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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